홍석철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IT와 의료시스템이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이 둘을 결합한 것인데 이러한 기술 경쟁력을 발판삼아 글로벌로 가야 합니다. 국가성장 동력이 될 것입니다."

KB손해보험,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교보생명 등 국내 다수 보험사가 디지털 헬스케어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고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KB손해보험과 신한라이프는 각각 KB헬스케어, 신한큐브온 등 헬스케어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IT조선은 이달 초 국내 최고의 건강 경제학자로 불리는 홍석철(사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만났다. 홍 교수는 지난해 ‘웰시콘’이라는 헬스케어 관련 데이터 스타트업을 창업한 CEO이기도 하다.

홍석철 교수는 보험사의 헬스케어 진출에 앞서, 보험의 개념에 대해 다시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전통적인 건강보험이 병원비 등의 재무적 손실을 보장하는 개념이었다면 헬스케어 산업은 보다 적극적으로 건강 위험을 사전에 관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조속히 관련 규제를 풀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나 의료계 등이 보험사의 헬스케어 시장 진입에 반발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라면서도 "의료계를 설득하든 시민단체를 설득하든 그 안에서 충분한 논쟁이 있어야 한다.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길을 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무엇보다 보험사의 디지털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업적 필요성이 높아지는 반면, 정작 보험사들이 규제를 핑계로 준비에 소홀하다는 것이다. 그는 "보험사들은 금융권에서 가장 디지털화라든가 혁신이 덜 된 영역"이라며 "디지털 헬스케어를 위한 준비가 아직 덜 돼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금융회사인 보험사가 헬스케어 사업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뭔가.

"현재 보험사가 추진하고 있는 헬스케어 사업은 크게 두 개다. 하나는 건강관리, 또 하나는 진료·처방 등 의료영역.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후자만 얘기했는데 최근 건강관리도 주목받고 있고 점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보험사 헬스케어 서비스는 사전 관리 서비스를 제공해 의료 이용을 줄이고 손해율을 낮추기 위한 취지로 시작됐다. 더 나아가 신사업으로 확장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여러 보험사들이 앞다퉈 서비스 출시에 나서고 있다."

―아직 보험사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헬스케어는 결국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서비스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관리 식품 판매 등 직접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전부다 막혀있다.

정부는 현재 부수업무로 보험회사의 헬스케어 진출을 일부 허용하고 있다. 다만 금산분리처럼 현 규제를 완화하지 않는다면 보험사 또는 금융사들이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4차산업내 다양한 산업간 장벽을 허물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특성들을 이해해 새로운 서비스나 상품에 대한 공급이 가능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현재 10여개 보험사에서 서비스를 출시해 ‘과도한 경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수요에 비해 너무 많은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헬스케어 시장의 잠재력을 생각했을때 오히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다. 헬스케어 산업의 수요는 크게 기업과 개인, 두 분류로 나뉜다. 우선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 되면서 기업은 임직원 건강 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법적인 책임을 져야할 수도 있다. 이에 최근 관련 수요가 늘고 있다.

두 번째는 B2C(기업소비자간 거래)인데 나이 드신 분들은 사전적 관리보다 치료 목적으로 병원에 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건강관리 관심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어 수요는 충분하다."

―핀테크 업체들이 최근 보험 비즈니스를 시작하면서 헬스케어에도 관심을 보인다. 보험사와 핀테크 헬스케어 각각의 강점은 뭐라고 보나.

"보험사는 기존 보험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있다는 게 강점이다. 개인 실손보험, 건강보험, 기업 상해보험, 이런 사업들을 해왔기 때문에 풀(pool)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를 제대로 하려면 고객 분석이나 니즈 파악이 필요한데 적어도 보험사는 건강 관련 정보들을 계속 수집해왔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핀테크의 장점은 고객 접점이 아주 좋다는 거다. 고객은 어떤 사고나 무슨 일이 터져야만 보험사 플랫폼을 들어가본다. 반면 핀테크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송금도 하고 저축도 하고 돈도 빼고 하면서 매일매일 가서 본다. 보험사들은 어떻게 고객들의 플랫폼 유입을 만들어낼까 고민이 큰데 핀테크는 그런 면에서 이미 강점을 가지고 있다."

―보험사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진출, 원격의료 등을 놓고 의료계나 시민단체의 반발이 적지 않다. 어떻게 해소하면 좋은가.

"의료인들은 비전문가들이 헬스케어 영역에 들어왔을때 전문성이 없어 위험하다고 본다.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을 지냐는거다. 그런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보완이 될 것이라 본다.

원격의료도 마찬가지다. 심각한 질환까지 할 수는 없지만 만성질환자의 모니터링이나 경증환자에 대한 진료는 시작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갈등의 본질적인 문제는 경제적인 것이다. 다른 영역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에 상당한 경계와 견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의 반발은 다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시민단체는 보험사가 고객 건강정보를 활용해 고객에게 불이익을 줄 것을 우려한다. 예를 들어 건강관리를 잘 안 하는 사람의 보험료를 높인다거나 보험 인수심사 단계에서 거절한다거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문제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반발하는 측면이 있다.

결국 경제적인 인센티브가 중요하다. 의료시장의 참여자도 결국 다 민간이기 때문에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인센티브 구조를 어떻게 잘 만드느냐에 따라 의료계와 소비자 모두에게 편익이 돌아갈 수 있다."

벤치마크로 삼기 좋은 디지털 헬스케어 강국이 있다면.

"미국이다. 미국의 민간 보험사는 연속적인 건강 관리가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어 냈다. 관리를 받다가도 아프면 병원을 예약하고, 병원 갔다온 뒤에도 프로그램을 통해 사후 관리를 받을 수 있다. 이런 기능들을 보험사가 모두 커버할 수 없어 스타트업들이 등장했고 각각의 기능에서 전문성있는 영역을 구축해 왔다. 민간 보험사가 특정 기술을 가진 회사를 인수합병하거나 하거나 밸류체인(가치사슬)을 엮어서 하나의 디지털 헬스케어라고 하는 커다란 산업을 만들어 왔다고 보면 된다."

ㅡ우리가 미국보다 출발이 늦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는 공공보험이 건강보험제도를 타이트하게 관리해왔다. 이 영향으로 실손보험이 뒤늦게 생겼고 손해율 개념도 뒤늦게 도입됐다. 헬스케어 수요가 생긴게 10년 정도밖에 안된 것도 규제 때문이다. 미국은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플랫폼이 있는데 우리는 규제 때문에 민간 보험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적다. 하지만 결국 수요가 늘어나면서 정부도 마냥 묶어 놓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디지털 헬스케어가 원격의료 수준까지 가 있다. 어떤 편익이 있는가.

"원격의료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중요한 영역 중 하나다. 코로나19가 공교롭게도 그 편익을 보여줄 수 있는 근거가 됐다. 무엇보다 공간, 시간 제약을 없앤다는 측면이 있다. 환자가 병원에 가서 예약하고 대기하고 이런 시간을 이제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거다. 이밖에 지방과 수도권의 의료격차 해소, 만성질환 관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핵심은 데이터다. 아직 국내 보험업계에는 ‘공공부문 건강·의료데이터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건강관리공단이 자료제공 여부를 놓고 심의위원회를 열었는데 반대의 가장 큰 이유로 보험사가 이 데이터로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하는거 아니냐라는 점을 거론했다. 실제 사례가 있다. 과거 심사평가원이 보험사에 제공했더니 일부 회사가 이를 활용해 특정계층의 보험료를 올렸다. 당시 국회에서 난리가 났고, 그래서 꽤 오랫동안 중단됐다. 의료계나 시민단체 볼 때는 과거 경험들이 또 다시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거다."

ㅡ보험사의 책임도 일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로운 데이터 활용을 위해 보험사들이 향후 노력해야할 점이 있다면.

"5개 민간 보험사가 자료요청을 하면서 제출한 연구계획서를 읽어봤는데 실망스러운 측면이 있다. 한마디로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이 자료로 뭘 하려는 건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냥 한번 보자 하는 뉘앙스다. 당연히 거절될 수밖에 없다.

공단입장에서는 정부차원에서 공공데이터를 열어주자는 분위기인데 계속 안 주기도 부담스럽다. 이 때문에 현재 보험과 무관한 헬스케어 이런 영역에서는 자료를 단계적으로 먼저 열어주고, 문제가 없으면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중재안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중이다.

올 하반기에 결론이 날 거다. 보험사도 소비자에게 불이익 주는 방향으로 공단의 자료를 연구하고 활용하면 향후 공단 자료 활용은 어려울 거다. 소비자 편익이나 이득을 위해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 그게 헬스케어 산업이 지향하는 바다."


―보험사의 헬스케어 참여가 공적인 측면에서도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우선 국민건강 측면에서 효익을 예상해볼 수 있다. 사전적인 건강관리를 통해 만성질환 발병률이나 의료비가 지출이 줄어들 것이다. 덩달아 국민 건강이 향상되면서 생산성도 함께 높아져 소득 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성장동력 차원에서 헬스케어 산업을 활용할 수 있다. 헬스케어는 미래 가장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산업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세계 1등 IT기술과 의료시스템을 갖춘 나라다. 이 두 개를 결합해 글로벌 강국으로 가야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부가가치가 높고 동남아나 이런데 곳들도 시장규모가 크다. 국가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당국이 보험사의 헬스케어 자회사 설립을 허가했는데 실질적인 효과가 있나.

"헬스케어 자회사 설립 허가는 필수다. 부서를 두고 하는 건 한계가 있다. 보험사의 기존 사업들과 한 발치 떨어져서 혁신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글로벌 기업들을 보면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이지 보험 플랫폼이 아니다. 국내 보험사는 고객 유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헬스케어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거다."

―정부가 최근 규제완화 기조를 보이고 있다. 실질적인 제도완화는 언제쯤으로 보는지.

"디지털 헬스케어가 정부 국정과제로 들어가 있다. 올 하반기부터 복지부가 인증제 등을 실시한다고 하는데 순차적으로 길을 열어줄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가 규제를 풀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거 못지않게 보험사 혁신도 필요하다. 정부가 규제를 다 푼다고 했을 때 보험사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국내 보험사들을 보면 ‘다른 곳 다 하니까 흉내나 내자’ 수준이다. 그나마 제대로 하는 곳은 일부 대형사 정도다."

ㅡ어떤 점들을 보완해야 하는지.

"건강관리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관심을 갖고 기꺼이 돈을 지급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 보험사가 이걸 어떻게 끌어낼지 모른다. 결국 고객에 대한 이해와 행동과학이 중요하고, 이를 분석해야 한다. 이걸 제대로 하는 회사가 아직 없다."

원격의료 가상이미지 / 아이클릭아트
원격의료 가상이미지 / 아이클릭아트
―보험사 가운데서도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른가.

"생보나 손보사나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본다. 다만 생명보험사 상품은 장기위주, 손해보험사 상품은 단기위주였기 때문에 손보사가 새로운 사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헬스케어를 포함한 플랫폼 금융서비스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복지부와 협의 서비스 범위를 늘리겠다고 한다. 실효성이 있나.

"결국 제대로 하려면 의료행위가 헬스케어 서비스에 들어가야 한다. 다만 의료 영역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병원과 연계하는게 필요하다. 보험사는 아직까지 별 움직임이 없지만, 빅테크는 병원도 설립하고 의사를 CEO에 앉히는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아마 보험사도 병원설립에 많은 관심이 있을 거다."

공준호 기자 junoko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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