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르면 10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나 영국 반도체 팹리스(설계) 기업인 ARM 공동 인수합병(M&A)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할 전망이다.

보름간 중남미와 유럽 출장을 마치고 21일 오후 6시께 김포공항에 도착한 이 부회장은 인수 가능성이 거론된 ARM 경영진과 접촉했느냐는 질문에 "만나지 않았다"면서도 "다음 달에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 회장께서 서울에 오신다. 아마 그때 무슨 제안을 하실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조선일보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조선일보DB
ARM은 스마트폰의 두뇌로 불리는 AP 설계 분야에서 핵심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세계 모바일 반도체 90% 이상이 ARM의 IP를 사용하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은 ARM의 지분 75%를 보유한 대주주다. 2020년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ARM을 매각하려 했으나 규제 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ARM은 삼성전자가 올해 초 대형 M&A 계획을 공식화한 뒤 유력 후보로 거론돼 왔다. 이번 이 부회장 발언은 ARM 관련 M&A 논의를 본격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경쟁사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할 가능성을 예상한다. 현재 ARM 인수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곳은 SK하이닉스와 미국 퀄컴 등이다. 인텔도 ARM 인수에 흥미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연내 회장 승진설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그는 '연내 회장 승진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회사가 잘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답했다.

8·15 광복절 특사로 취업제한에서 복권된 이 부회장은 국내외 삼성 사업장을 잇달아 방문하며 그룹 총수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재계에선 이를 두고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이 임박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 부회장은 2012년 12월 44세의 나이에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10년째 자리를 유지 중이다.

그는 출장 소감에 대해 "이번 출장은 오지에서 회사를 위해, 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근무하고 있는 임직원들 격려하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2030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특사로 임명받아 런던에 가려고 했는데, 여왕께서 돌아가셔서 일정이 조금 바뀌었다"며 "존경하는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진 못했지만, 같은 도시에서 추모할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 부회장은 22일과 23일 각각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혐의 재판에 출석할 예정이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