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영웅을 필요로 한다. 영화 엔드게임 속, 우주를 위기에 몰아넣은 타노스를 물리치기 위해 갖은 능력으로 무장한 어벤저스가 힘을 모은다.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예방하기 위해 꾸려지는 특수임무 조직은 영화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시초로 한 ‘ARPA 시스템’의 탄생 또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1957년 10월 소련의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으로 큰 충격과 공포에 빠진 미국은 그 이듬해인 1958년 NASA와 더불어 DARPA를 설립하였다. DARPA는 향후 적의 기술적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변혁적 기술 개발을 수행하는 것을 임무로 하며, 이를 위한 자율성, 유연성, 목적지향성 등이 부여된 조직이었다.

이후 DARPA를 통해 개발된 기술들은 국방 목적으로 활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GPS·자율주행차 등의 혁신적인 제품 및 서비스의 개발에 활용된 것으로 널리 명성을 떨치게 됐다.

DARPA의 성공을 바탕으로 ‘ARPA 시스템’은 미국 사회의 굵직한 현안들의 해결책으로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 대응 기술을 개발하는 HS-ARPA가 2002년에 대테러 정보 분석 기술을 개발하는 I-ARPA가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에는 의료보건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ARPA-H가 설립 중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었던 까닭이다.

DARPA가 공공 임무의 달성과 도전적 과학기술혁신의 촉진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임무 중심적 기획과 수행’으로 요약할 수 있다. DARPA는 군(軍) 현장의 현실적 어려움이나 잠재적 위험 시나리오 등을 해소하기 위한 기술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다소 도전적인 목표수준를 달성하기 위해 하나의 사업 내에서 여러 기술 모듈의 개발이 병렬적으로 이뤄지기도 하며, 목표 달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뤄내기 위해 함께 참여하는 연구 수행주체들 간 경쟁이나 협력이 이뤄지도록 사업을 설계하는데 공을 들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임무 중심적 설계와 수행이 이뤄지도록 사업 책임자(PM)에게 자율성과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도 DARPA 모델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진행 중이다. 추격에서 탈추격으로 전환을 모색하는 현시점에 DARPA 모델의 활용은 적극 검토할만 하다.

특히 미국에서 보건의료 분야를 위한 ARPA-H가 새롭게 추진중에 있으며, 국내에서도 한국형 ARPA-H의 필요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DARPA 모델의 일부 특징을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임무 중심’이라는 핵심적 성공요인을 우리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DARPA의 임무중심적 접근은 영어로 ‘end-game approach’로 표기되곤 한다. 한국형 ARPA가 우리 사회의 현안을 해결하고 또 미래의 위협을 예방하기 위해 국가적 능력을 결집할 수 있는 어벤져스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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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성(사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학사), 서울대학교 기술경영경제정책(박사)을 전공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R&D혁신연구단 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타당성심사팀 전문위원을 역임한바 있다. 데이터 기반의 성과 평가 분석 및 혁신적인 연구 조직의 특성에 관한 연구 등을 수행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