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사이퍼(Decipher): 난해한 문장의 뜻을 판독하다. 암호를 해독하다.

1940년대 미국 플로리다에 오렌지, 자몽 등 감귤류 농장을 가진 윌리엄 존 하위(W. J. Howey)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하위씨는 농장의 반은 자신이 경작하고, 나머지 반은 다른 사람들에게 쪼개 팔기로 했다. 에이커마다 동일한 가격을 책정하고 대금을 지급한 매수인들에게 양도증서를 발급했다.

매수인들은 분양 받은 농장을 다시 하위인더힐스(Howey-in-the-Hills)라는 이름의 회사와 운영계약을 체결해 임대를 줬고, 운영계약에 따라 회사는 농장을 전적으로 점유, 경작하면서 여기에서 생산된 감귤류 판매 권한 일체를 가졌다. 매수인들은 농장을 점유하거나 출입할 수 없었고 생산된 감귤류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없었다. 단지 운영사로부터 수익 분배만을 받을 수 있었는데, 대부분 다른 주(州)에 살며 농업에 대해서는 지식이나 경험이 없었다.

하위는 위와 같은 사업을 본인 소유 리조트나 메일을 통해 홍보했다. 미국 SEC는 위와 같은 사업방식이 증권에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신고가 없었다는 이유로 이를 금지하기 위한 소송을 제기한다.

1946년 미국 대법원은 위 사업상의 권리가 증권에 해당된다고 판단, 투자계약이 증권이 되기 위한 요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 투자자의 투자가 있을 것 ▲둘째, 투자가 이루어진 방식이 공동의 사업(common enterprise)으로 기능할 것 ▲셋째, 공동사업의 수익이 주로 투자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노력으로 인해 발생할 것.

위 요건이 바로 그 유명한 하위 테스트(Howey Test)다. 어떠한 사업상의 권리가 증권법의 규율을 받아야 하는 증권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위 판결 이후 전세계에 적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 기존의 증권거래법을 자본시장법으로 재편하면서 이러한 미국 판례법상의 투자계약(investment contract)을 받아들여, ‘투자계약증권’을 증권의 한 종류로 규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를 새로운 증권 형태처럼 규정하다 보니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도입한 것으로 오해되고 있는데, 이는 사실 미국 어느 증권법 교과서를 보더라도 가장 첫 부분에 나오는, ‘증권이란 무엇인가’라는 증권의 본질에 관한 기준이다. 즉, 투자의 대상이 되는 증권이란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나는 돈만 투자할 테니, 불리는 것은 네가 해 다오"라는 약속인 것이다.

이후 미국 대법원에서는 수많은 판결을 통해 공동 사업의 범위와 해석 등 위 기준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다 세분화했다. 이 기준이, ‘증권이 무엇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법이 되다보니, 가상자산이 시장에 처음 나와 이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각국이 골머리를 앓았을 때도 싱가포르나 스위스 등 선제적 규율을 도입한 국가들은 그때 이미 하위 테스트를 가상자산에 적용,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고 기초적인 규제를 다듬어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시장법에서 투자계약증권을 처음으로 규정한 이후 최근까지 무엇이 투자계약증권에 해당되는지, 실질적 판단이 이뤄진 사례가 거의 없다. 최근 의미있는 결정이 하나 나왔는데 음악저작권 투자 플랫폼인 뮤직카우 관련, 증권선물위원회가 뮤직카우의 음악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을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증선위는 이 사례가 투자계약증권의 첫 적용사례로 뮤직카우의 위법 인식과 고의가 낮고 다수 투자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일정한 조건 하에 금감원의 조사 및 제재절차 개시를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투자계약증권 개념이 그만큼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론이다.

한편, 얼마 전 가상자산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겨준 테라·루나 사태와 관련해 그 핵심인물인 권도형씨에 대해 검찰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인터폴에 수배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면 이를 투자계약증권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만일 검찰이 이를 투자계약증권으로 보았다면, 우리나라에서 특정 가상자산을 투자계약증권으로 판단하고 이를 근거로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입건하는 첫 사례가 된다.

범죄인에게 혐의가 있다면 이를 엄벌에 처하는 것은 당연하다. 단, 하나 걱정이 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법리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는 투자계약증권을 구체적 적용기준 없이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고 이를 근거로 형사책임까지 문제 삼았을 경우, 실제 법원의 판단이 달리 나올 가능성도 상당할 뿐더러 현재 성장하고 있는 가상자산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세기 중반, 증권의 본질에 관해 미국에서 고안된 투자계약증권이 싱가포르와 스위스 등 전 세계를 여행한 후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을 위한 기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시장참여자들이 예측할 수 있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이 정립돼, 바람직한 증권과 가상자산 규제의 초석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IT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정희 디코드 대표 변호사 jhcho@dcodelaw.com
법무법인 세종 등에서 기업, 부동산 자문과 거래를 18년간 담당했다. 여러 IT기업들과 스타트업을 대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 테크놀러지법 분야를 개척해온 변호사다. 현재 법무법인 디코드(D.CODE)의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