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큼 인터넷 환경에 진심인 나라도 없을 겁니다. 한때는 가장 빠르고, 가장 보급률이 높은 인터넷을 가진 나라였으니까요. 그 열망은 무선 인터넷으로까지 넘어갑니다. 겨우 고정된 장소에서만 일부 사용했던 무선 인터넷을 이동 중에도 사용할 수 있는 한국을 만들자는 열망을 가지게 됩니다.
2005년 세상은 와이브로가 무선 인터넷의 신세계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던 듯 합니다. 마소 2005년 3월호에는 ‘언제 어디서나 즐기는 인터넷 세상 와이브로’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습니다.
마소 매거진에는 "와이브로의 성공적 사업화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국민경제에 22조원의 생산 유발 효과, 10조원의 부가가치 유발, 33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가입자 예상치도 눈에 띕니다. 당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자료에 따르면, 서비스가 상용화 되면 가입자는 900만 ~ 1050만 명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와이브로는 그러한 전망과 기대의 방향대로 흘러가지 못했습니다. 실제 가입자는 2006년 6월 30일 상용화를 시작한 후 2012년 10월이 돼서야 100만 명을 넘겼습니다.(100만5399명 - KT 93만8308명, SK텔레콤 6만7091명)
와이브로는 왜 긴 생명력을 유지하지 못했을까요. LTE(Long Term Evolution)에 밀렸다는 이유를 첫 번째로 듭니다. 그리고 통신사업자(KT, SK텔레콤)가가 서비스 확대를 위한 투자에 소홀했다는 점도 이유로 듭니다. 실제 ‘수도권 및 광역시를 비롯한 전국 84개 지역 와이브로 망 구축’이라는 안내와는 달리 실제 인터넷이 끊기는 구간이 많았습니다.
마소 매거진에서도 마냥 ‘장밋빛 전망’만을 내놓은 것은 아닙니다. 와이브로의 시장 전개 상황에서 중요한 사안은 유사 통신 서비스 간의 관계라고 언급됩니다. 그리고 통신사업자는 유사한 통신 서비스를 도입해 수익성을 올리고 그와 동시 기존 통신 서비스로 얻는 수익도 그대로 지켜야 하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와이브로에 올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덧붙입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그래도 만약 와이브로의 실패 원인을 정반대로 설정했다면 성공했을까요. 그것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데 있어 큰 만족을 느꼈다면 충분히 성공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소비자(가입자)의 선택을 못받은 것이 가장 큰 실패 원인이었으니까요.
와이브로 서비스는 2018년 9월 30일 종료됐습니다.
조상록 기자 jsro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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