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업비트의 개발자 컨퍼런스 UDC는 시장이 가장 어두울 때, 행사를 가장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이른바 ‘루나(LUNA)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고 국내외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내로라하는 업계 최고 개발자들이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을 한 자리에서 고민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업비트라서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나무 인력의 팀워크도 한 몫했는데요. 최근에 두나무에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었죠. 새로운 인력이 스킨십을 넓히고 생태계를 파악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했을 텐데, 행사를 이렇게나 완벽하게 치뤄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번 행사는 가장 추운 날 ‘불을 지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곧 동이 튼다는, 그래서 지금 가장 어두울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전달된 듯 현장에는 희망에 부푼 열기와 에너지가 엿보였습니다. ‘블록체인 겨울이 지나 봄이 올 것’이라는 송치형 두나무 회장의 발언도 이를 잘 나타내죠.

2022년 9월 22일부터 23일까지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BPEX)에서 두나무가 주최한 ‘업비트 개발자 컨퍼런스(Upbit Developer Conference·UDC)’ 현장 / 두나무 제공
3000명이 넘는 관람객, 국내외 전문인사 50여명, 이날 행사에 참여한 기자는 총 100여명에 달합니다. 단순히 수치만으로 실감이 나지 않겠지만, 당시 부산역 일대는 UDC 로고가 새겨진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가방을 맨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요. 동질감을 넘어 ‘우리가 이 겨울을 버티고 있다’는 자부심도 느껴졌습니다.

조금씩 진화하며 실생활에 스며드는 블록체인 기술이 다양하게 소개된 점도 고무적입니다. 대표적으로 솔라나는 대체불가능토큰(NFT) 태그를 이용해 지갑을 다운로드 받지 않고 바로 NFT를 받을 수 있는 프로토콜을 개발 중이라니 기다려 집니다. 더 샌드박스는 연말 메타버스 내 공연을 시작으로 결혼이나 현실 이벤트를 열 수 있도록 가상 공간도 준비한다고 하네요.

카르다노는 개념 증명(proof of concept) 들고 나왔습니다. 블록체인을 이용해 와인의 품질을 인증하는 건데요. 다양한 정보가 담긴 메타데이타로 인증 과정을 줄여 주목을 끌었다는 발언이 인상 깊었습니다. 코인을 발급받거나 NFT를 발행하고, 게임에 참여하는 등 부스 분위기도 활기찼습니다. 몇몇 부스는 인산인해를 이뤄 취재기자가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였죠.

이석우 두나무 대표가 2022년 9월 22일부터 23일까지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BPEX)에서 두나무가 주최한 ‘업비트 개발자 컨퍼런스(Upbit Developer Conference·UDC)’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두나무 제공
이석우 두나무 대표가 말했듯 UDC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섯살이 된 UDC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건강한 성인기를 맞이하려면 해결할 숙제가 있어 보이는데요. ▲대중성 ▲확장성 그리고 ▲진정성입니다.

UDC는 명실상부 국내 최대 블록체인 개발자 행사입니다.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시장의 국내외 플레이어와 코인 투자자에게 그야말로 ‘필참’ 행사가 됐는데요. ‘전문성’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대중에게 블록체인 기술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건 아닌 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시장이 더욱 커지려면요, 코인 투자에 관심은 있지만 방법을 모르거나, 투자 여력이 있지만 정보가 없어 망설이는 40·50대의 눈길을 끌어야 합니다. 우선 영어로 가득한 블록체인 용어에 대한 합의된 정의, 그리고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교육과 안내가 필요해 보입니다.

행사를 열기 전에 기자를 대상으로 용어집을 배포한다거나, 블록체인 전문 통역사를 육성하는 것도 방법이겠고요. 한번에 하나씩, 단계적으로요. 두나무 측은 이같은 지식 격차를 좁히기 위해 기술과 투자 교육을 다방면으로 고민 중이라고 하니, 업계 일등 사업자의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두번째는 확장성입니다. 연사와 부스 참여 대부분이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기업에 한정돼 자칫 ‘그들만의 잔치’로 보여질까 우려되는데요. 어두울 때 일수록 함께 갈 우군이 많으면 좋겠죠. 앞으로는 가상자산이나 블록체인 사업을 겸하거나 신사업 진출을 꾀하는 전통 산업군 기업들도 참여해, 업비트의 플레이 그라운드에 함께 하면 더욱 든든하지 않을까요.

송치형 두나무 회장이 2019년 그랜드하얏트 인천에서 열린 UDC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 UDC
마지막으로는 진정성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UDC 행사는 송치형 회장 2심 공판 다음날 열렸는데요. 업비트는 자연스럽게 재판에 대한 이목을 UDC 행사로 끌어오는 ‘일석이조’ 효과를 누렸습니다. 우연이라면 운이 좋은 것이고 연출이라면 탁월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있죠. 남에게 의심받을 언행은 아예 삼가라는 의미인데요. 송치형 회장은 형사 재판 뿐만 아니라 국정감사 증인 채택이라는 악재를 안고 있습니다. 이날 송치형 회장은 신사업 확장을 이유로 미국에 거주해 부득이 UDC에 직접 모습을 나타내지 못했는데요. 결국 UDC에서 국정감사 불출석 이유를 알린 셈이 돼 행사의 순수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나옵니다.

국정감사가 무탈하게 지나가고, 송치형 회장을 포함해 핵심 인사가 UDC 행사에서 업계와 소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사가 되겠죠. 그럴 수 있는 규제 환경이 마련되면 더욱 좋겠고요. 그렇다면 UDC는 개발자 축제를 넘어 시장 육성과 저변 확대라는 ‘실리’와, 규제 당국을 설득하고 소통 접점을 늘리는 ‘명분’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