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선을 돌파하는 등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K배터리 3사가 촉각을 세우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현지 공장 건설과 인력 확보에 있어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고물가·고금리 상황도 악재로 작용한다. 환율이 오르면 매출이 증대되는 효과도 일부 있지만, 대규모 투자는 신중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정 수준으로 페이스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GM의 합작사 ‘얼티엄셀즈’의 미국 오하이오주 공장 모습(왼쪽)과 SK온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 / 각 사
LG에너지솔루션과 GM의 합작사 ‘얼티엄셀즈’의 미국 오하이오주 공장 모습(왼쪽)과 SK온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 / 각 사
K배터리 3사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미국의 IRA 기조에 따라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합작해 ‘얼티엄셀즈’를 설립하고, 2조 7000억원을 들여 미국 오하이오주에 첫 번째 공장을 세웠다. 제2, 제3 공장도 테네시주와 미시간주에 건설 중이며 제 4공장 추가 건설도 검토한다.

앞서 GM의 메리 바라 회장은 2월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올해 상반기 내에 얼티엄셀즈 4공장 위치를 공개하고, 계획을 발표할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7개월이 지났음에도 일부 외신에서 제4공장 후보지만 거론할 뿐, 양사의 공식적인 발표는 전무하다.

전문가들은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기업이 투자에 속도를 내기보다 숨고르기에 돌입한 것으로 해석한다. 인플레이션으로 건설과 물류비가 급등한데다 원달러 환율까지 강세를 보이고 있어 부담이 가중된 영향이다.

올해 3월 LG에너지솔루션이 발표했던 애리조나주 단독 공장 설립 계획도 여전히 ‘재검토’ 중이다. 발표 번복 당시 회사 관계자는"경제환경 악화에 따른 투자비 급등으로 투자 시점 및 규모, 내역 등을 면밀하게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환율과 물가가 오르면서 당초 1조 7000억원을 예상했던 투자액수가 2조원대로 불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구체적인 투자 진행에 대한 밑그림은 10~11월쯤 이사회 결정을 통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선상에서 삼성SDI와 SK온 역시 기존에 예상했던 투자액이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SK온의 경우 포드와 손잡고 ‘블루오벌SK’를 세웠다. 총 56억(한화 7조 9000억원)달러를 투입해 미국 테네시주에 공장을 세운다. 또 켄터키주에도 2개 공장을 추가 건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스탤란티스와 인디애나주에 첫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해외 투자에서 비롯한 외화 부채는 기업의 성장 동력이기도 하지만, 자칫 속도 조절에 실패할 경우 막대한 손해로 돌아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요즘과 같은 고환율·고금리· 고물가 등 3고(高) 상황에서 더욱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K배터리 3사는 늘어나는 공장만큼 현지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3고 여파로 인건비 부담도 늘어날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얼티엄셀즈의 제1 공장이 800명쯤의 현지 직원을 채용했다. 본격 양산이 시작되면 500명 정도를 추가 고용한다. 블루오벌SK 역시 공장이 가동되는 2025년 세자릿수 규모의 채용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해마다 원자재 가격은 큰 폭으로 뛰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들여오는 양극재 가격은 kg당 42.37달러로 2021년(21.81달러)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삼성SDI가 들여오는 양극재 소재도 kg당 41.83달러로 지난해(26.36달러)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환차로 인한 매출 상승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반대급부로 투자비나 인건비가 증가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 차입금에 대한 환율 고정으로 리스크 헷지, 원자재 상승에 대해서는 원자재 상승분을 판가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리스크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자동차학과)는 "강달러, 인플레이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중장기 플랜을 한번 더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당장 꼭 필요한 진출 외에는 투자나 시기 등에서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기업들은 IRA 등 복합적인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뛰고 있다"며 "배터리는 자동차 등 연결 산업이 많아 중요한 산업인만큼 반도체 특별위원회처럼 정부, 국회, 기업,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배터리 산업 강화 특위를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 광물 확보부터 자원순환 등 전체 생태계 로드맵을 마련하고, 기술개발과 규제개혁 등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