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이하 IRA) 대응, 신차 출고 등 현안을 앞에 두고 있는 기아가 노조와 단체협약(이하 단협)에 발목을 잡힌 모양새다. 신차 할인을 두고 노사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완성차업계에서 유일하게 파업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3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기아 노사는 최근 단협과 관련한 12차 교섭을 진행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렬됐다. 기아 노사는 8월 무분규로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도출한 바 있다. 다만 임금협상은 조합원 투표에서 가결됐지만 단협은 부결됐다.

쟁점은 ‘평생 사원증' 혜택이다. 기아는 25년 이상 근무한 퇴직자에게 2년마다 30% 할인된 가격에 차량을 구매할 수 있는 평생 사원증 제도를 운영 중이다. 기아는 올해 임단협에서 해당 제도의 적용 연령을 75세로 연령을 제한하고 할인 폭도 25%로 낮추기로 했지만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된 것이다.

EV6 생산라인. / 기아
EV6 생산라인. / 기아
사측은 12차 교섭에서 해당 문제를 차후에 논의하자고 전했지만 노조는 대안을 요구하며 강경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 노조는 소식지를 통해 "정상적인 노사관계를 원한다면 차기 교섭에서 현장이 동의할 수 있는 전향적인 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무조건적인 ‘안돼’ 입장보다 대안 제시로 해결 의지를 보여야 노사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노조는 사측을 압박하기 위해 지난달 26일 쟁의대책위워회를 소집해 특근거부를 결정했다. 또 12차 교섭에서 사측이 만족할만한 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파업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도 예고한 바 있다.

만약 노조가 파업을 단행한다면 기아가 올해 완성차업계에서 유일하게 파업을 한 사업장이 된다. 앞서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한국GM, 르노코리아자동차(이하 르노코리아) 등은 무분규로 올해 추석 전 임단협 타결을 도출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기아의 노조리스크가 산적한 현안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IRA 시행으로 미국 전기차 사업에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미국 현지공장 조기 착공 등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데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

기아 화성 오토랜드 전경. / 기아
기아 화성 오토랜드 전경. / 기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등으로 신차 출고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노조가 특근 거부에 파업까지 단행하게 된다면 신차 출고가 더욱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재 기아 인기 차종의 출고 기간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스포티지 하이브리드와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18개월 가량 대기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카니발도 16개월 가량 기다려야 차량을 받을 수 있다. 전기차 EV6는 16개월정도 대기해야 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평생 자동차 할인 혜택이란 단협에 대해 많은 소비자들이 공분하고 있다"며 "해당 혜택들에 대한 부담은 소비자가 지는 것이다. 소비자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국GM, 르노코리아 등 상황이 어려운 업체도 합의를 통해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했다"며 "기아 노사가 조그마한 문제로 갈등을 빚고 파업까지 가게되면 큰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IRA, 신차 출고 등 산적한 현안이 많은 상황이다"며 "단협에 대한 비판, 현안 등에 대한 부담이 있기 때문에 파업까지는 가지 않고 합의를 통해 단협을 도출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조성우 기자 good_sw@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