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래퍼의 필로폰 사건이 터지면서 국내 마약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관리해야 할 자리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윤석열 정부가 작은 정부론을 주장한 탓에 2019년 임시조직으로 출범한 식약처 마약안전기획관 조직의 정규화가 불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의료용 마약류 관리 및 불법 마약류 단속,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운영, 마약 법령 제개정 등의 전반적인 업무를 전담해온 ‘마약안전기획관’이 해체 기로에 서있다. / 아이클릭아트
의료용 마약류 관리 및 불법 마약류 단속,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운영, 마약 법령 제개정 등의 전반적인 업무를 전담해온 ‘마약안전기획관’이 해체 기로에 서있다. / 아이클릭아트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정부가 마약안전기획관에 대한 행정안전부 평가를 11월에 진행, 12월에 최종결과가 공개될 예정이다. 마약안전기획관은 2019년 4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식약처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 개정령안’이 의결되면서 한시 조직으로 신설됐다.

당시 프로포폴, 졸피뎀 등 의료용 마약류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면서 안전 관리 강화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식약처가 마약류를 안전관리할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기 위해 마약안전기획관을 신설했다.

기존 식약처 의약품안전국에 소속됐던 ‘마약정책과’와 ‘마약관리과’도 마약안전기획관 밑으로 배치됐다. 마약안전기획관은 의료용 마약류 관리 및 불법 마약류 단속,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운영, 마약 법령 제개정 등의 전반적인 업무를 전담해왔다.

또한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과다처방 및 투약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사전적 조치 등도 시행했다.

하지만, 해당 기관이 내년에는 해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 초기부터 정부의 인력과 기능을 슬림(Slim)화 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현재 정부 조직 개편 방향이 공무원 정원 축소와 한시 조직 폐지 등에 무게가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한국에 불법반입하다 적발된 마약이 1만2000㎏에 달하고 2019년부터 3년간 평균 마약사범이 1만6000명에 달하는 등 마약 밀매가 성행하고 있는 최근 상황과는 전혀 맞지않는 행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청이 제공하는 ‘경찰범죄’ 통계에 따르면 마약범죄 발생건수는 2018년에 6513건, 2019년에 9186건, 2021년에 8088건 순으로 발생했다. 최근 4년간 연평균 7.5%씩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최근 들어 대량의 마약 거래와 연예인의 자발적 투약 등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만한 대형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마약의 유통이 다변화되는 현상이 마약범죄의 발생빈도를 높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올 9월에만 다양한 마약사건이 발생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는 9명을 검거했는데, 이 과정에서 97억원 상당의 필로폰 2.9㎏을 압수했다. 이는 9만7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서울노원경찰서는 마약류관리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 작곡가 겸 가수 ‘돈 스파이크(45·본명 김민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4월부터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지인들과 수 차례에 걸쳐 마약을 투약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김씨를 검거할 당시 그가 소지하고 있던 필로폰 30g도 압수했다. 필로폰 1회 투약량이 0.03g인 점을 고려하면 이는 1000회 투약분에 달한다. 돈 스파이크는 마약 간이시약 검사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10대 사망 원인 1위인 일명 무지개 마약 ‘펜타닐’ 역시 국내 유입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2020년 10대 청소년이 펜타닐 패치를 흡입한 상태로 친구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지난해 부산, 경남지역 고등학생 50명이 병원에서 처방받은 펜타닐 패치를 사용하거나 판매해 경찰청에 적발되기도 했다.

문제는 펜타닐이 불법으로 구하는 방식이 아닌 병원에서 패치 형태로 처방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약안전기획관은 이러한 병·의원 내 마약류 오남용 사례를 방지하는 역할 역시 수행하지만 내년부터는 이를 전담할 기관이 사라지게 된다.

익명을 요구한 식약처 관계자는 "현재 마약과 관련된 안전망은 확대해도 모자른 상황이지만 이를 축소한다는 정부 정책은 다소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며 "마약류에 대한 관리감독은 최대한 전문성을 높이며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야 하지만 근 3년간 쌓아온 국가적 역할이 허무하게 무너질 판이다"고 토로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