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미술 시간을 제일 싫어했다. 지금도 손재주가 별로 없어 ‘곰손’이라는 말까지 듣는 필자는 그림 그리기, 만들기가 정말 싫었다. 그래도 한 가지 흥미를 느꼈던 분야가 있으니 바로 상상화였다. 주로 우주나 심해를 그렸다. 잘 그렸는지 보다 뭘 상상했느냐에 중점을 두고 평가를 받았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소재가 뭐 있을까 골몰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렸던 이유는 그 때와 비슷한 상상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재미있는 경험 때문이다. 주말 내내 인스타그램 포스팅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나의 인공지능(?)이 만든 그림이 새겨진 티셔츠를 준다는 AI 제네러티브 아트에 빠져 있었다. 상상을 인공지능에 맡겼더니 생각하지 못했던 그림이 나왔고 꽤 괜찮은 예술작품이 탄생했다. 아마 학교 다닐 때 이런 기술이 있었다면 필자의 상상화는 그때보다 훨씬 더 괜찮은 작품이었으리라.

지난해 일론 머스크가 공동창업한 오픈AI는 인공지능 Dall-E를 공개했다. 그리고 싶은 내용을 텍스트로 입력하면 그림을 그려주는 인공지능 모델이다. 사실 AI 창작은 그림이 다가 아니다. 오픈AI는 코딩을 대신해 주는 코드 생성 AI 코덱스도 공개했다. 사람은 말로 명령하기만 하면 된다. 또 번역과 대화, 작문이 가능한 인공지능 GPT-3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를 제네러티브 AI(Generative AI)이라 부른다. 실존하지 않는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AI다.


제네러티브 인공지능으로 그린 반 고흐 스타일의 일론 머스크 /출처:AIN DAO
제네러티브 인공지능으로 그린 반 고흐 스타일의 일론 머스크 /출처:AIN DAO
여기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겠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생각해 볼 법한 그 해묵은 질문, ‘인공지능이 과연 정말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다.

실제 세계 최대 규모 벤처캐피털인 세콰이어 캐피털은 2050년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전문 아티스트나 디자이너의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뿐인가. 인공지능 코딩 프로그램이 풀타임 개발자보다, 또 전문 작가보다 더 나은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20년 뒤면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아이러니하게 제네러티브 인공지능을 활발히 내놓고 있는 오픈AI의 설립 이념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인공지능 개발이다. 곧 이런 모델들이 널리 퍼진다 해도 인간은 행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 모델은 특정 개인이나 회사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 돼야 한다.

여기서 합의 알고리즘이 필요해진다. 블록체인 기술은 인공지능의 발전에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어쩌면 오픈AI의 설립자이기도 한 일론 머스크가 가상 자산 시장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이 점을 일론 머스크가 모를 리 없다.

마지막으로 세콰이어 캐피털은 말한다. 모바일이 카메라, GPS 등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애플리케이션을 낳았듯, 제네러티브 아트 역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출연시킬 것이라고. 제네러티브AI의 작업은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더 효율적이고 창의적으로 만들 것이고, 수조 달러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더 나은 알고리즘과 더 큰 모델이 문제가 아니라 합의가 문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이 모델이 인간보다 더 뛰어나 우리를 대체하면 어쩌지’가 아니라 어떻게 이걸 잘 사용해야 하느냐에 있다. 제네러티브 인공지능 기술로 그린 근사한 그림을 공유했을 때 행복하고 멋진 그림은 갈채를 받겠지만 파괴적이고 우울한 그림은 외면받을 것이다. 결국 블록체인을 필두로 한 웹3 세상에서 인간이 그 판단을 내릴 것이다. 인간의 몫은 첨단 기술이 내놓는 인간 이상의 것을 가장 평화적이고 인간적으로 이용하고 발전시키면 그뿐 아닐까.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IT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지은 작가 sjesje1004@gmail.com
서강대 경영학 학사, 국제통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0년 이상 경제 방송 진행자 및 기자로 활동했다. 유튜브 ‘신지은의 경제백과’를 운영 중이며 저서로 ‘누워서 과학 먹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