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화일약품 화재가 제약 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해당 업체로부터 원료의약품을 공급받던 일부 제약업체의 수급문제가 가시화되는 한편 제약업계 최초로 중대재해법 적용 사례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된다.

경기도 화성시 상신리에 위치한 화일약품 공장 화재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4일 합동감식이 실시됐다. / 조선DB
경기도 화성시 상신리에 위치한 화일약품 공장 화재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4일 합동감식이 실시됐다. / 조선DB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향남 상신리에 위치한 화일약품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관할 소방서 인력 전체가 출동하는 경보령인 대응 1단계를 발동, 사고발생 4시간여만에 진화 작업을 마쳤지만, 이 불로 1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 당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화재 발생 당시 주변 생산공장 근무자까지 느낄 정도의 강한 폭발이 일어났으며, 인근 공장으로 폭발 잔해물이 날라가기도 했다. 사망한 직원은 올해 7월 경력직으로 입사한 20대 남성으로, 입사 2개월만에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4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유관기관과 합동감식을 진행, 여기에 상신리 공장과 동일한 설비를 보유한 사업장들에 대해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긴급 점검을 지시하면서 제약업계 전반에 후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초 발화 지점과 원인을 찾는 데에 초점을 맞춰 감식을 진행 할 예정이다"며 "오늘 합동감식의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예정이다"고 말했다.

원료의약품 수급 차질 불가피…화일약품 "반월, 하길 공장 최대 활용"

화일약품은 주요 국내 원료의약품 공급업체로, 다양한 제약사에 원료약을 공급하고 있다. 화일약품은 2020년 매출액 기준 국내 원료의약품 기업 중 대웅바이오, 경보제약, 유한화학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매출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1069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전체 매출 80% 이상이 원료의약품에서 발생한다.

이 회사는 생산공장 3곳을 가지고 있다. 화성 향남에 상신공장과 하길공장이 있으며, 안산 반월에도 공장 1곳이 있다. 향남에서는 원료의약품을 주로 생산하며, 반월에서는 항생제가 주력이다.

이로 인해 화일약품에 원료를 공급받는 제약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도 중공업 산업체들과 유사한 생산·공급 위수탁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번 화재로 원료의약품 공급이 불안해지면 일부 제약사들의 생산에도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근 의약품 위수탁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공급 거래처를 쉽게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화일약품이 공급하고 있는 주요 원료약은 EDST(진해거담제), TRPR(진경제), ACCL(진통소염제), LVSP(위기능조절제) 등이다. 사건 조사가 끝날 때까지 사고 수습이 지연되기 때문에 언제쯤 공장이 정상 가동될지도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피해 규모에 따라 이전에 가동하던 원료 생산시설 복구가 불가능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식약처 GMP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는데, 최소 1년 이상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국내 원료약 시장에 큰 타격이 올 것이란 전망이다.

화일약품은 하길공장과 반월공장을 최대한 활용해 매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번 화재가 발생한 상신공장의 연간 가동률이 두 공장을 합한 값보다 높기 때문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제약업계 최초 중대재해법 적용 확실시…노동부, 주변 공장 긴급 점검 돌입

화일약품은 공장 소실로 인한 금전적인 손실이 예상되지만, 화재로 인한 피해는 대부분 보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화일약품 상신공장은 화재보험에 가입돼 있으며, 보험가입금액은 241억에 달한다.

다만 ‘중대재해법’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법은 중대한 인명 피해를 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이 강화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개인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 확보 의무 등에 소홀했다는 점이 드러나면 유력한 처벌 대상이 된다.

현재 중대재해법은 ▲사망자 1명 이상 ▲동일사고로 6개월 이상 장기부상을 당한 부상자 2명 이상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에 적용된다.

화일약품은 50인 이상사업장으로 이번 화재에서 사망자 등 18명의 사상자가 발생되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화일약품 상신리 공장은 지상 5층, 지하 1층의 연면적 5600㎡ 규모로 발화 지점은 3층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아세톤 반응기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점원에 의해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보고있다. 이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번 사고와 관련된 아세톤 반응기를 보유한 사업장에 긴급 점검을 지시하면서, 업계 내에서는 제재를 받는 기업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화일약품은 "소방서와 경찰에서는 화재원인을 조사 중이며, 안전상의 이유로 출입이 제한돼 재해발생금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며 "상기 화재로 인한 손실액은 현재 확인 중이며, 금액이 확인되는 대로 재공시할 예정이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화재가 다른 공장으로 번지지 않았다는 점은 천만다행이지만 공급 문제부터 업계 전반을 흔들 다양한 규제들이 발생하는 등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의 판단을 기다려봐야겠지만 제약 업계 최초 중대재해법 적용은 유력해 보여 업계 전반이 긴장하고 있는 점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