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국 반도체 때리기 수위가 갈수록 격해진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는 ‘반도체와 과학법’과 ‘칩4’ 동맹 추진에 이어 조만간 추가 제재안을 내놓을 전망이다. 미국산 기술을 사용한 첨단 반도체 제품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다는 게 이번 제재의 골자다. 국내 반도체 업계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전체 시장에서 고성능 반도체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적은 만큼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란 공통의 입장을 보인다. 아직 제재 범위와 대상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라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칩을 들어보이는 모습. / 조선일보DB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칩을 들어보이는 모습. / 조선일보DB
5일 반도체 업계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이번주 중으로 슈퍼컴퓨터와 AI, 데이터센터 등 고성능컴퓨팅(HPC)에 필요한 미국의 기술과 제품의 대중 수출을 막는 방안을 발표한다. 중국이 첨단기술 개발에 필요한 반도체를 확보하지 못하게 하려는 조치다.

제재 방식으로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명 ‘화웨이식 제재’라고 불리는 FDPR은 미국 밖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도 미국의 소프트웨어나 원천 기술이 사용된 경우 미국 정부가 제3국 수출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미국은 2020년 화웨이에 FDPR을 적용해 반도체 수출을 차단했다. 당시 화웨이는 제재 후 승승장구하던 스마트폰 사업 존폐 위기를 겪었다.

이번 제재안에 FDPR이 적용되면, 중국 반도체 산업은 큰 타격을 입는다. 미국을 비롯해 한국, 유럽 기업의 첨단 반도체 제품은 대중 수출에 어려움이 생긴다. 현재 첨단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미국 기술이나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와 함께 미국산 반도체 미세 공정 장비의 대중 수출 제한, 중국 데이터센터 등에 대한 미국산 첨단 반도체 공급 차단 등을 검토 중이다. 이후 법안이나 행정명령 등으로 명문화하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의 추가 제재안 발표를 앞두고 촉각을 곤두 세운다. 반도체 산업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규제 대상과 범위에 따라 대응 난도가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고성능 시스템반도체를 요구하는 AI와 슈퍼컴퓨터에만 제재가 적용되면 국내 기업들의 매출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데이터센터까지 포함되면 영향권에 포함될 수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은) 기초적인 부품을 생산하는 A업체부터 A의 제품을 활용해 모듈을 생산하는 B업체, A와 B 제품을 토대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C업체 등 산업 구조가 복잡하고 또 다양하다"며 "규제가 어느 선까지 적용되느냐에 따라 대응 시나리오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제재안이 아직 발표되지 않아 영향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제재 대상에 데이터센터까지 포함될 경우 국내 기업도 일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PC가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며 "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수출하는 국내 반도체 기업에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