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배터리를 순환 자원으로 지정한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K배터리 3사는 폐배터리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며 시장 확장에 나선다. 배터리 생애 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타 업체와 협력하거나 수직계열화 하는 방식으로 폐배터리 사업을 추진한다.

얼티엄셀즈가 생산하는 전기차 배터리 팩. / LG에너지솔루션
얼티엄셀즈가 생산하는 전기차 배터리 팩. / LG에너지솔루션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9월 초 규제혁신 차원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순환 자원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연내 마련하기로 했다. 배터리가 순환 자원이 되면 더이상 폐기물관리법상 규제를 받지 않고, 운반·보관·사용에 대한 제한이 사라진다. 폐배터리 사업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지는 셈이다.

K배터리 3사의 경우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과 유럽연합(EU)의 배터리 여권 도입 등으로 배터리 원재료 공급망을 투명하게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과정에서 폐배터리는 안정적으로 소재를 확보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기업 입장에서 폐배터리는 탄소배출 감축이라는 친환경 타이틀과 함께 안정적인 소재 확보 및 원가 절감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 꼭 잡아야 하는 사업이다.

‘도시 광산’이라 불리는 폐배터리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재사용하거나, 분해 후 리튬·코발트·니켈·망간 등을 추출해 배터리 소재로 다시 사용할 수 있다.

김고운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5일 열린 ‘제11차 대한상의 ESG경영 포럼’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원자재 확보를 모두 이룰 수 있는 순환경제를 기업들이 주목해야 한다"며 "폐배터리 등 재활용 산업은 향후 엄청난 규모로 커질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기차 배터리는 10년 내외 주기로 교체한다. 2013년 테슬라의 ‘모델S’를 시작으로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폐배터리 시장은 이제 막 태동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전세계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2025년 7억 9400만달러(1조 917억원, 26GWh)에서 2030년 55억 5800만달러(7조6423억원, 158GWh), 2040년 573억 9500만달러(78조 9181억원, 1606GWh)로 성장할 것으로 분석했다.

폐배터리 시장에 가장 발빠르게 나선 곳은 LG에너지솔루션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생산과 판매뿐 아니라 수리·대여·재사용·재활용 등 배터리 생애 주기 전반을 포함한 사업인 ‘바스(BaaS : Battery as a Service)’ 사업을 강화한다. 최근 사내 독립기업을 출범해 배터리 생태계 관리에 나선 것도 그 일환이다.

해외 업체들과도 적극적으로 협력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7월 중국 코발트 정련 업체인 ‘화유코발트’와 합작법인을 세워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LG에너지솔루션과 GM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는 2023년 미국 오하이오 배터리공장에 배터리 재활용 설비를 추가한다.

SK온은 포드와 세운 합작법인 ‘블루오벌SK’ 사업장에서 발생한 폐배터리를 재활용업체 레드우드 머티리얼즈를 통해 다시 제품 생산에 활용할 계획이다. SK에코플랜트는 2월 전자 폐기물 업체인 ‘테스’의 최대 주주에 오른 데 이어 8월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 ‘어센드 엘리먼츠’의 최대주주가 됐다.

SK는 그룹 차원에서 SK온, SKC, SK아이테크놀로지 등 계열사를 통해 소재, 셀, 모듈 등과 관련된 배터리 수직계열화를 추진한다.

삼성SDI 역시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집중한다. 삼성SDI는 천안 및 울산 사업장 공장에서 발생한 스크랩을 회수해 재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또 5월 ‘리사이클 연구실’을 신설해 폐배터리 재활용률 및 원자재 회수 향상을 위한 기술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폐배터리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뜨겁다"며 "배터리 기업들은 폐배터리에서 나온 자원으로 다시 배터리를 만드는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방침이다"고 말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