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인수된 후 적자에 시달려온 배달의민족(배민)이 경영 상태 개선을 위해 광고비 확대 카드를 꺼내들었다. 앱에서 ‘주문 많은 순’ 등으로 정렬 필터를 설정해도 주문 건당 6.8%를 내는 ‘오픈리스트’ 광고 상품에 가입한 가게를 상단에 노출하기 시작했다.

기존에는 소비자가 ▲배달 빠른 순 ▲배달팁 낮은 순 ▲주문 많은 순 ▲별점 높은 순 ▲가까운 순 ▲찜 많은 순 등을 골라 정렬할 수 있었지만, 특정 광고에 가입한 가게가 먼저 노출되도록 바꾼 것이다.

27일 배달업계에 따르면, 배민은 최근 음식 카테고리 내에서 ‘주문 많은 순’ 등 정렬 필터를 설정하더라도, 오픈리스트 광고 상품에 가입한 가게들을 최상단에 노출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바꿨다.

배민이 최근 공지없이 앱 카테고리 내 가게 노출 기준을 변경했다. ‘주문 많은 순’ 등으로 필터를 설정해도 오픈리스트 광고에 가입한 가게들이 최상단에 노출된다. / 배민 앱 갈무리
배민이 최근 공지없이 앱 카테고리 내 가게 노출 기준을 변경했다. ‘주문 많은 순’ 등으로 필터를 설정해도 오픈리스트 광고에 가입한 가게들이 최상단에 노출된다. / 배민 앱 갈무리
오픈리스트는 카테고리 최상단에 가게 3곳을 무작위로 노출시켜주는 광고 상품으로, 주문 건당 6.8%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울트라콜은 오픈리스트 바로 아래 노출되는 광고 상품으로, 월 8만8000원을 낸다.

배민이 공지없이 가게 노출 방식을 바꾸면서 자영업자와 소비자 모두의 질타를 받고 있다.

주문 수에 따라 광고비가 다르게 적용될 수 있지만, 자영업자들은 정률제 광고 상품인 오픈리스트에 대한 부담이 큰 상황이다.

예를 들어 월 매출이 3000만원인 가게가 울트라콜 광고로 ‘깃발’(울트라콜 광고료)을 10개 꽂으면 광고비로 총 88만원이 나간다. 반면 오픈리스트 광고에는 수수료 6.8%가 붙으니 204만원이 나가는 셈이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훨씬 크다.

이종민 자영업연대 대표는 "보통 자영업자들은 울트라콜 광고를 이용하면서 오픈리스트 광고에 추가로 가입하고, 오픈리스트 광고만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자영업자 입장에서 오픈리스트처럼 주문건당 수수료가 발생하면 광고비가 더 많이 나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영업자들은 오픈리스트 수수료가 부담돼 ‘별점’, ‘찜’ 등을 늘려 정렬 필터 설정 시 상단에 가게가 노출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는데 무용지물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든 정렬 방식에서 오픈리스트 가게들이 최상단에 노출되고 있기 때문에 주문 수가 줄었다는 불평도 나온다. 결국 가게가 상단에 노출되기 위해서는 오픈리스트 상품에 가입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소비자들도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한 소비자는 ‘주문 많은 순’으로 맛집을 선별해 음식을 주문했는데, 이 순위도 믿을 수 없었던 것 아니냐며 질타했다. 필터를 설정해도 오픈리스트 가입 가게들이 먼저 뜨기 때문에 주문하기가 불편해졌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소비자 단체들은 이용자들에 대한 정보 제공 및 선택권을 저해한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기본적으로 기존에 쓰던 메뉴나 패턴에 대해 달라진 사항이 있으면 소비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고지를 해야 한다"면서 "특히 사용자가 일부러 주문이 많은 순 등 자신이 원하는 카테고리를 지정한 것인데도 특정 광고가 상위 노출되는 것이라면 문제 소지가 많다. 앱 화면에서 어떤 부분까지 특정 광고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소비자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다른 데이터가 우선 노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용자들에게 매우 부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용자들은 대개 정렬 필터 설정 시 특정 광고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이를 교묘하게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방식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았던 네이버 사례와 유사하다는 지적이다. 네이버는 2020년 쇼핑 검색 알고리즘을 변경해 자사가 운영하는 스마트스토어 상품과 서비스는 검색 결과 상단에 올리는 등의 행위로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 265억원을 부과받은 바 있다. 당시 공정위는 "네이버가 쇼핑 검색 결과에 대한 신뢰를 이용해 자신들의 서비스 입점업체를 검색 결과 상위에 올렸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공정위는 배민이 가게 노출 기준을 변경한 것도 네이버와 유사한 사례라고 보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 선택권을 저해했다는 측면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법 위반 소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며 "정렬 필터 설정 시 특정 광고 업체가 표시 없이 상단 노출되는 것은 법 위반 소지가 확실하지만, 표시가 돼 있다면 광고라는 사실을 얼마나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지에 따라 소비자 기만 여부를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또 "특정 광고 영역을 늘리면서 자영업자 전체적으로 광고비 부담이 늘었다면 자율규제 등의 방안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불공정행위 신고 시 시장감시국에서 법 위반 여부를 검토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도 배민이 공지없이 가게 노출 기준을 변경한 것은 문제 소지가 있다고 봤다. 다만, 법 위반 소지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쿠팡과 같은 플랫폼 기업 모두 마찬가지로 앱 내 검색이나 정렬 방식 등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하는 것은 사업 방식을 밝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공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준을 알 수 없으니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면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을 통해 보다 명확한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신동 강릉원주대 법학과 교수도 "이미 다른 광고에 가입해있는 가게들이 별다른 사전 고지 없이 특정 광고 가입 가게에 뒤로 밀려난 경우라면 온플법 규제 대상에 해당된다"며 "현재 논의 중인 온플법은 플랫폼 사업자가 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해 미리 알려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배민 측은 '배달 빠른 순', '주문 많은 순' 등 특정 필터를 적용했을 때 나오는 오픈리스트 가입업소 또한 배달 빠른 순, 주문 많은 순 등의 필터 조건값에 부합하는 식당을 노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오픈리스트 가입업소 노출영역 내에서 각 필터 조건에 맞는 식당을 노출한 것이지, 단순 오픈리스트 가입업소를 무작위로 노출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배민 관계자는 "사용자가 지정한 카테고리 특성에 맞는 식당을 구분하여 노출한 것이며, 기본순 카테고리와 마찬가지로 오픈리스트 광고와 울트라콜 광고는 구분돼 있다"며 "오픈리스트는 상단 3칸 노출이 약관에 의해 보장되는 상품으로 그간 기본형 필터에 적용돼 오다 이번에 다른 필터 화면에도 확대 적용된 것이다"고 반박했다.

배민 오픈리스트 관련 약관문. / 우아한형제들
배민 오픈리스트 관련 약관문. / 우아한형제들
우아한형제들은 2019년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된 후 매년 적자를 내고 있다. 배달앱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종 프로모션 등에 비용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영업적자는 코로나19 특수로 전년(364억2974만원)보다 줄어든 112억2615만원을 기록했다. 2021년에는 영업적자가 대폭 늘어나 전년 대비 5.7배(574.3%) 증가한 756억9556만원을 기록했다.

우아한형제들의 모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DH)도 수익성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2019년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한 후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DH의 2020년 영업손실은 5억9010만유로(8000억원)로, 2019년 4억140만유로(5400억원)보다 적자 폭이 48.1% 커졌다.

한편 배민은 딜리버리히어로 인수 이후 광고·수수료 체계 개편안을 내놓을 때마다 비판을 받아왔다. 2020년 울트라콜 상품(정액제)을 없애고, 오픈리스트(정률제)로 통합하려 했다가 자영업자들의 뭇매를 맞고 계획을 철회했다. 올 3월에는 단건 배달 서비스인 ‘배민1’의 수수료 체계를 개편하면서 자영업자 및 소비자들의 반발을 샀다. 클릭당 과금 방식의 ‘우리가게클릭’ 광고 상품을 선보이면서 수수료가 과도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우리가게클릭은 주문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1회 클릭당 수수료가 200~600원씩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황혜빈 기자 empty@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