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모바일 운전면허증·신분증에 더해 쿠폰, 결제수단 정보를 저장한다. 공문서를 떼러 관공서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 은행권이 블록체인,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내놓은 디지털 지갑을 사용했을 때 취급 가능한 서비스다.

현재 KB국민은행, 우리은행, NH농협, 신한은행 등이 실물지갑, 공공기관 전자문서, 신분증명을 대체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이 굳이 왜? 업계 관계자는 "향후 디지털 지갑 안에 블록체인 기반의 각종 디지털 자산까지 취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은행권 "디지털 지갑, 블록체인 기반 기술로 안전"

30일 금융업계 및 블록체인 업계 따르면 최근 은행들이 디지털 월렛(지갑)을 속속 출시하며 블록체인 비즈니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상자산 업체가 내놓는 가상자산 보관용 서비스와는 차이가 있다. 결제수단이나 디지털 신분증을 저장하는 용도의 온라인·모바일 서비스다.

국민은행은 ‘KB 월렛(Wallet)’을 출시했다. 신분·증명·결제와 같은 실물지갑 대체 서비스, 공공기관 연계 서비스를 제공한다. 구체적으로 전자증명서, 국민비서, 쿠폰, 전자문서, 전자영수증, 학생정보, KB페이, 인증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국민은행 계좌를 보유하지 않아도 KB스타뱅킹이나 모바일웹에서 이용 가능하다.

우리은행은 모바일 앱 우리원(WON)뱅킹에 ‘디지털 자격증명 전자지갑’ 서비스를 내놨다. 전문직 종사자가 자신의 자격증을 전자화해 발급, 활용하는 서비스다. 이용자가 자격증명서를 발급 받으면 본인 휴대 전화 안전 영역에 직접 저장된다. 증명서 위·변조에 안전한 블록체인 DID(Decentralized Identifier·탈 중앙화 된 신원 증명)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NH농협은행은 전자문서지갑 플랫폼을 모바일 앱인 NH스마트뱅킹에 도입했다. 이용자는 금융거래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전자증명서 형태로 은행에 제출할 수 있다. 필요 시 공공기관, 타 금융기관에 제출 가능하다. 발급된 전자증명서는 클라우드 기반 자기정보 저장소에 암호화된 형태로 보관된다.

신한은행은 금융자산, 전자문서, 모바일 신분증을 관리하고 결제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는 ‘쏠(SOL) 지갑’을 출시했다. 신한은행 모바일 앱 신한 쏠의 첫 화면에 있는 아이콘을 누르면 이용할 수 있다.

/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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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인효과’로 블록체인 기반 자산거래 선점

은행권이 디지털 지갑에 열중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확장성이다. 일단 구축해두면 각종 블록체인에 기반한 디지털 자산을 보관하는 용도로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한 가상자산 업체의 최고기술경영자(CTO)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일반인들에게 친근한 가상자산을 보관하는 용도로도 대응이 가능하다"며 "여기에 NFT(대체불가능토큰)와 STO(증권형토큰)까지 취급할 수 있다"고 했다.

아직 ‘금산분리법(금융과 산업을 따로 떼어 내 각자의 자본이 서로를 지배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법)’으로 인해 은행이 가상자산 사업을 직접 영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는 디지털 화폐와 디지털 자산이 국내 정착될 미래를 미리 대비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다른 가상업체 대표 역시 "대기업, 타 금융권까지 모두가 관심이 많은 상황이라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먼저 받고 만들기 시작하면 늦는다"며 "그래서 일단 먼저 만들고 승인 받으려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은행권은 이미 현재 기능에 더해 다른 디지털 자산을 취급할 수 있는 기능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며 "PoC(Proof of Concept·개념증명)가 끝나 이제 오픈을 준비하는 곳도 있는데,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다 뛰어들 기세"라고 했다.

이는 일종의 락인(Lock-in)효과를 염두한 움직임이다. 다른 디지털 지갑 플랫폼이 나와도 기존 플랫폼을 계속 사용하게 되는 효과를 노린 것. 한 시중은행 디지털 관련 부서 관계자는 "가상자산이나 가상화폐가 보편화 되면, 가상자산 거래소 등에 패권 뺏길 수 있으니 지금 디지털 지갑 구축해 기존 고객들 계속해서 끌고가려고 개발하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