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억원대 89인치·101인치 가정용 마이크로 LED TV를 연내 출시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으로 TV 시장 침체하면서 새로운 사이즈의 제품을 내놓기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30일 삼성전자 내부 정보에 정통한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4분기 TV 수요 증대 및 수익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인 만큼 마이크로 LED TV 사이즈 다변화 전략은 우선순위에서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110인치 마이크로 LED TV 수요가 건재한 만큼 89·101인치 제품이 연내 출시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더 퍼스트룩’에 전시된 마이크로 LED TV 110·101·89인치 3종 / 이광영 기자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더 퍼스트룩’에 전시된 마이크로 LED TV 110·101·89인치 3종 / 이광영 기자
마이크로 LED는 가로 세로 100㎛(마이크로미터, 1=100만분의 1m) 이하의 LED 소자를 활용한 디스플레이다. 각각의 LED 칩이 하나의 픽셀 역할을 하는 자발광 방식이다. 초소형 LED 칩을 기판에 촘촘하게 배치해야 하는 공정상 한계로 생산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LED 칩을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크기나 형태에는 제약이 없다. 기존 LCD 대비 ▲명암비 ▲응답속도 ▲색 재현율 ▲시야각 ▲밝기 ▲해상도 ▲수명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성능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하반기 TV 수요 부진에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는 ‘비상사태’다. 내부적으로 세운 네오 QLED, 8K TV 등 판매목표 달성은 물건너갔고, 판매대수보다 수익성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압박이 커졌다.

이같은 분위기는 차세대 TV인 마이크로 LED 제품군 확장 시점에도 영향을 줬다.

삼성전자는 1월 열린 CES 2022에서 기존 110인치 마이크로LED TV 외에 89인치와 101인치 제품을 공개했다. 여기에 114인치 제품을 더해 3종류의 새 마이크로 LED TV를 출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장비 수급 문제와 수율(전체 생산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 등 문제로 생산이 차일피일 미뤄졌고, 최근 TV 시장이 경기침체 직격탄을 맞으면서 연내 새 마이크로 LED TV 출시는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삼성전자 모델이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삼성 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에서 네오 QLED 98인치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 삼성전자
삼성전자 모델이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삼성 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에서 네오 QLED 98인치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 삼성전자
89·101인치 마이크로 LED TV의 경우 기존 85·98인치 네오 QLED 제품과 수요가 겹친다는 우려도 있었다. 초대형 TV 대중화를 선도하는 입장에서 1억원대 프리미엄 TV를 동시에 출시하는 그림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11월부터 네오 QLED 98인치를 국내뿐 아니라 북미, 유럽, 중동에서도 출시하며 초프리미엄 시장 확대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업계에서는 11월 카타르 월드컵과 블랙프라이데이, 12월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연말 특수’에도 침체된 TV 시장이 회복되기엔 역부족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TV 시장 출하량이 1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2023년엔 더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옴디아 역시 올해 글로벌 TV 출하량이 2021년보다 2.2% 줄어든 2억879만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010년 이후 12년 만에 가장 낮은 규모다.

삼성전자가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통해 시장에서 터닝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TV 사업은 상징적인 판매 목표나 신제품 출시 시점에 신경쓸 여력이 없을 만큼 심각한 위기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며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철저한 수익성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꾸려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사활을 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