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은 영양가가 많은 과일이다. 비타민 함유량이 많아 피부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단다. 문제는 맛이다. 너무 시다. 잘 모르고 한 입 씹으면 낭패를 당하는 과일이다. 영양가가 많으면 무엇 하는가. 맛이 범접 불가라 사과처럼 껍질을 쓱 씻어 베어 먹을 수 없는 과일인 것이다. 그래서 보통은 비린 생선회를 먹을 때 레몬즙으로 쓰거나 쓴 술을 마실 때 입가심으로 활용하곤 한다.

경제학의 가장 큰 맹점은 그 전제의 완벽함이다. 경제학은 늘 완전할 정도로 자유로운 시장, 완벽한 판단력을 지닌 합리적인 개개인을 기본값으로 설정한다. 그러나 어디 현실이 그런가. 영양가가 있겠거니 해서 레몬을 베어 물었는데 신맛에 이내 뱉어버리는 일이 흔하다. 특히 ‘정보'에 있어서는 ‘비대칭’이 난무한다. 정보를 덜 가진 사람은 손해를 보고 정보를 더 가진 사람은 이득을 본다.

중고차는 믿고 거르라는 말들, 이런저런 제약으로 보험 가입자들을 거르고 또 거르는 보험회사들, 회사 직원을 채용하면서 레퍼런스 체크를 하는 회사 등등 우리 사회에 관습처럼 존재하는 것들도 어쩌면 이러한 비대칭 때문이리라.

주식시장만 봐도 그렇다. 온갖 재무제표를 다 공개하는 전자공시시스템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오죽하면 레몬에 이런 현상을 비유한 조지 아서 애컬로프가 2001년 이 주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겠는가.

최근 FTX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이 시끄럽다. 루나 사태가 할퀴고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업계 3위라던 대형 거래소가 파산 신청을 했다. 알고 보니 대차대조표가 엉망이었다. 쉽게 말해 한 쪽에서 토큰을 찍어낸 다음 그 토큰을 두고 자신의 자산이라고 부풀리기를 한 셈.

FTX 대표인 샘 뱅크먼 프리드는 ‘엄친아’다. 부모가 모두 스탠퍼드대 로스쿨 교수다. MIT에서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주류의 향기가 풍긴다. 비주류로 치부되던 가상자산 시장에 ‘진짜'가 나타났다고 시장은 환호했다. 그 진짜가 시장을 ‘진짜로' 바꿀 것이란 기대도 받았다.

어디 학벌이나 부모의 스펙뿐이었을까. 샘 뱅크먼 프리드는 끊임없이 시장에 ‘난 진짜’라고 ‘신호’를 줬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으로 말이다. 미국 프로농구 마이애미 히트 홈구장의 명명권을 무려 1억 3500만 달러에 사들여 FTX 아레나로 이름을 바꿨다.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던 다른 가상자산 회사들에는 백기사를 자처하며 돈을 투자해줬다.

가짜가 난무하는 세상 속 레몬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 투자자들은 이 신호를 진짜로 받아들였다. 레몬을 판다고 하기엔 감당하기 어려운 투자를 하면서 ‘나는 믿을만하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냈던 것이다. 조지 애컬로프와 같은 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마이클 스펜스는 ‘진짜'가 ‘가짜'가 아님을 증명하는 방법이 ‘이런 가짜가 감당 못 할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 했다. 결국 가짜가 감당하지 못할 신호를 보내던 FTX는 수많은 투자자들의 눈물로 연극을 마무리했다. 진짜라는 믿음 속에 과감하게 리스크를 떠안은 전세계 투자자들에게 돌아온 건 시고 또 신 ‘레몬맛'이다.

투자자가 투자사의 정보를 잘 모르는 한 가상자산 시장에서 좋은 회사는 절대 나올 수 없다. 시장에 레몬밖에 남지 않으면 결국 이 시장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역사는 늘 반복되어 왔다. 과도한 위험자산 투자와 레버리지 광풍, 그리고 공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당장 이번 사건을 두고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회자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금융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역설적으로 신뢰만큼 깨지기 쉬운 것도 없다. 광풍도 전염성이 있지만 공황에도 전염성이 있다.

이 생태계 속에는 레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맛이 근사한 복숭아도, 사과도 존재한다. 가상자산 시장에 레몬이 사라질 순 없을 것이다. 문제는 레몬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 레몬을 알아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있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IT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지은 작가 sjesje1004@gmail.com
서강대 경영학 학사, 국제통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0년 이상 경제 방송 진행자 및 기자로 활동했다. 유튜브 ‘신지은의 경제백과’를 운영 중이며 저서로 ‘누워서 과학 먹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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