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인력 확보를 위해 임직원 처우 개선에 열을 올리는 동시에 눈치 작전이 치열하다. 경쟁사의 처우가 향상된 것에 맞춰 비슷한 수준의 혜택을 주는 식이다.

하지만 경쟁사의 임금·복지 수준을 처우 개선의 지표로 활용하다 보니 아이러니한 상황도 펼쳐진다. 임직원 입장에선 자사뿐 아니라 경쟁사의 실적도 향상하며 성과급 등 처우 개선이 이뤄져야 더 큰 수혜를 누릴 수 있게 됐다. 경쟁사 실적이 부진해 처우가 후퇴할 경우, 오히려 자사 처우 개선에 대한 기대감은 떨어질 수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 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 삼성전자
23일 증권가 전망을 살펴보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업황 부진 심화로 올해 4분기와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가 전년 대비 각각 30% 가까이 감소한 7조 7000억원, 33조 6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SK하이닉스보다는 상황이 낫다.

SK하이닉스의 향후 실적은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올 4분기와 내년 각각 7101억원, 2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망대로라면 지난해부터 이어진 양사 간 성과급, 초임 인상 경쟁이 내년에는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적어도 경쟁사에 맞춰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임직원들의 목소리가 힘을 싣기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양사 임직원들은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임금과 복지 혜택 비교에 적극 나선다. 1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취임 후 특별 보너스 제공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어떤 공지도 나오지 않자 일부 직원들 사이에선 "SK하이닉스에서 갑자기 성과급이 나오지 않는 이상 자체 보너스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 사장은 올해 1월 삼성전자 DS부문이 경쟁사인 SK하이닉스보다 낮은 성과급을 책정한 것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임직원과 즉각 소통에 나선 바 있다. 경 사장은 1월 중순 열린 위톡에서 "특별성과급 등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추가 보상에 대한 대책 마련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전자는 며칠 뒤 DS부문 직원들에게 최대 300%의 특별보너스를 추가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 한 직원에 따르면 당시 회사가 책정한 300%의 보너스를 합한 성과급은 SK하이닉스 직원들이 초과이익분배금(PS)으로 받은 기본급의 1000%보다 수십만원쯤 더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최근 DS부문 대졸 신입사원(CL2) 초임 연봉을 SK하이닉스와 동일한 5300만원으로 인상했다. 기존 5150만원에서 2.9% 인상된 것으로, 11월 급여부터 반영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임직원 모두를 만족시키진 못하는 분위기다. 연봉이 5320만원인 2021년 입사자와 신입사원 간 격차가 단 20만원으로 좁혀지면서 내부에서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삼성전자 직원 A씨는 최근 직장인 커뮤니티를 통해 "2020년도 하반기 입사자인데 현타(현실자각 타임) 온다. 요즘 2021~2022년도 입사 후배들 곁에 과외 선생처럼 붙어서 알려주고 있었다"며 "실수해도 내가 당했던 거 대물림하지 말자는 마음 하나로 보살처럼 좋게 알려주고 있었는데 얘들과 이제 연봉 차이는 20만원뿐이다"라며 씁쓸해했다.

이어 "자존심 상하고, 내가 얘들을 왜 챙기고 있나 싶다"며 "나 자신이 이렇게 속 좁은 인간이었나 싶으면서도 현타가 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