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 공룡’ 제네시스가 FTX 붕괴 여파로 자금이 마르면서 파산 위기에 놓였다. 제네시스에 고객 자금을 맡긴 고파이(GOFi)도 영향권에 있다. 고파이를 운영하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고팍스는 예치금 지급 불능을 해결하기 위해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4일 고팍스에 따르면 고팍스가 앞으로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고정형 예치 상품’의 가상자산 원금은 23일 오전 11시 30분 고팍스 기준 326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고정형 상품 이자 수익과 지난 16일부터 출금이 중단된 자유형 상품의 원금과 이자수익까지 더하면 상환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고파이는 고객이 맡긴 가상자산을 운용해 예치 기간에 따라 가상자산으로 이자 수익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예치 기간이 정해져 있는 고정형 상품과, 정해져 있지 않는 자유형 상품으로 나뉜다. 원금은 출금 시, 이자 수익은 매일 고팍스 지갑으로 받을 수 있다.

고팍스는 23일 공지를 통해 제네시스 글로벌 캐피털(Genesis Global Capital, LLC)의 상환 잠정 중단으로 네 종류의 고정형 고파이 상품의 지급이 지연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약 48억원 규모다.

당장 131차 상품은 23일 만기가 도래해 24일 원금을 지급해야 한다. 128차 상품 상환일은 25일이다. 이달에만 총 38억원의 상품이 지급 불능에 빠지게 된다. 133차와 135차는 내달 1일과 8일에 원금을 지급해야 한다. 상환 규모는 각각 9억원과 1억원이다.

FTX에 자금 묶인 제네시스, 5억달러 유치도 ‘역부족’

고파이 출금이 정상화되려면 고파이 운용사인 제네시스 글로벌 캐피털(Genesis Global Capital, LLC)이 예치 자금을 돌려줘야 한다. 제네시스는 글로벌 가상자산 대출 기업이다. 모회사는 디지털 커런시 그룹(Digital Currency Group)으로 고팍스의 2대 주주다. DCG는 글로벌 최대 가상자산 매체인 코인데스크의 모회사이기도 하다.

제네시스는 지난 주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인 FTX가 유동성 부족으로 출금을 중단하면서 약 1억7500만달러(2360억원)의 자금이 동결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고객 인출 자금이 제네시스가 보유하고 있는 자금 규모를 넘어서면서 출금과 신규 대출 서비스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이 여파로 고팍스는 지난 16일 고파이 자유 예치 상품 출금을 중단했다.

지난 3분기 기준 제네시스가 대출해 준 가상자산은 약 28억달러(3조8000억원) 규모다. 제네시스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려면 약 20억달러(2조7000억원) 이상이 필요한 것으로 업계는 관측한다. 제네시스는 출금 지연을 해결하기 위해 우선 5억달러(6700억원)의 자금을 유치하고 있지만, DCG가 1억4000만달러(1900억원)를 투입했다는 소식 외에 자금 지원은 없는 상황이다.

제네시스 파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제네시스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당장 파산 신청을 할 계획이 없다"며 "우리의 목표는 파산 신청 없이도 합의를 통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다. 채권자들과 건설적인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며 진화에 나셨다.

자체 자금 마련 ‘역부족’...매출 기대도 어려워

제네시스가 자금을 상환해주지 못할 경우를 대비, 고팍스는 투자자 손실을 막기 위해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체적으로 자금 마련이 쉽지 않은 만큼 외부 수혈이 절실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올라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스트리미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26억원이다. 보유한 가상자산은 92억, 투자 가상자산은 131억원이다.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 예치금은 29억원이다. 이를 모두 포함한 총 자산은 376억원이다.

이 중 투자자 예치금은 고팍스 매매 플랫폼을 이용하는 고객의 자금으로 고파이 상환에 쓰지 못한다. 고파이가 지난 21일 ‘출금 지연은 고파이 상품에만 해당되며, 고팍스 일반 고객의 자신은 100% 이상 보유 중’이라고 안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작년 말 종가 기준 5790만원에서 거래되던 비트코인이 23일 2290만원으로 약 60% 하락한 것을 고려하면 스트리미가 보유한 가상자산 규모도 줄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9월 특정금융법 시행 후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실명계좌) 제휴 실패로 원화 마켓을 7개월 간 중단해 거래량이 줄어든 점도 부담이다. 이후 고팍스 실적은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고파이, 외부 수혈 ‘최선’...SI 가능성도

재무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고팍스는 투자 유치로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고팍스는 23일 공지를 통해 글로벌 최대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과 유동성 공급을 위한 협력 방안의 일환으로 ‘투자의향서(Letter of intend)’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투자의향서란 계약하기 전에 투자 의향을 밝히는 문서로 법적 구속력은 없다. 고팍스는 6주 안에 고파이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투자를 성사시키기 위해 실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30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할 당시 고팍스를 운영하는 스트리미는 기업가치 3700억원을 평가받았다. 스트리미의 최대주주인 이준행 대표가 보유한 지분율은 41.22%, 지분가치는 약 1525억원으로 계산된다. 이준행 대표의 지분을 포함, 구주의 1%만 매각해도 370억원 가량의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

자금만 투자하는 재무적투자자(FI, Finance Investor) 뿐만 아니라 경영에도 참여하는 전략적투자자(SI, Strategic Investor)에게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고파이 정상화를 명분으로 운영에 참여할 여지가 있어서다.

고팍스는 "고파이 고객 자산의 온전한 상환을 위하여 제네시스 및 DCG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으며,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고객님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알렸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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