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철만 되면 흔히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경영환경 악화 상황에서는 핵심 경영진을 쉽게 교체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실상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한 삼성의 올해 사장단 인사에도 이런 분위기가 작용할 전망이다.

그동안 재계 안팎에서는 이재용 회장 취임을 맞이한 삼성이 장수를 교체(인사)하기 보다 사령부(콘트롤타워) 재창설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능한 장수가 있어도 이를 통솔할 지휘 조직을 갖추지 못하면 ‘오합지졸(烏合之卒)’을 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삼성 내부에서는 미래전략실(미전실)과 같은 ‘콘트롤타워’를 복원하지 않을 것이란 소식이 들려온다. 5년여간 미전실을 대체해온 태스크포스(TF) 3곳만 운영해도 충분하다는 이재용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 그룹의 콘트롤타워인 미전실 폐지 후 주력사업별로 삼성전자(사업지원TF), 삼성생명(금융경쟁력제고TF), 삼성물산(EPC경쟁력강화TF) 등 3사에서 TF를 운영 중이다.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끄는 사업지원TF가 주요 현안 결정의 중추 역할을 했고, 박종문 삼성생명 부사장과 김명수 삼성물산 사장이 각각 금융경쟁력제고TF장, 삼성물산EPC경쟁력강화TF장을 맡아 미전실 공백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TF는 말그대로 임시 체제일 뿐이다. 이재용 회장이 부회장이 아닌 회장 자리에 올라 ‘뉴삼성’ 비전 선포를 가시화 한 것처럼, 콘트롤타워 역시 대체 조직이 아닌 정식 조직으로 자리잡는 것이 순리라는 얘기다.

LG와 SK 등 주요 기업도 콘트롤타워를 통해 그룹을 진두지휘 하고 있다. LG는 지주사인 주식회사LG가 콘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지주사를 통해 그룹의 의사결정 사안을 계열사에 안정적으로 전한다. SK도 SK수펙스추구협의회를 통해 계열사들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삼성은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경기 침체 한파로 위기를 맞았다. 2030년까지 1위 달성을 주창한 비메모리 사업은 갈길이 멀다. 대형 인수합병(M&A) 추진도 2017년 하만 이후 제자리다.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주체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그룹 주도의 중장기 전략에 속도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주요 사업 간 시너지를 강화하는 명분만으로도 기존 TF 3곳 역할을 한데로 모은 콘트롤타워 재건은 불가피한 조치로 풀이된다.

새 술을 꼭 새 부대에 담을 필요는 없다. 다만 누군가의 말처럼 TF의 보전이 뉴삼성의 가치보다 우선되진 않아야 한다. 이재용 회장과 함께 뉴삼성 비전을 구체화 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콘트롤타워의 주인공이 과거 미전실 출신이던, 새 얼굴이건 중요치 않다. 신구(新舊)가 조화를 이뤄도 될 일이다. 삼성이 전쟁 중 장수를 바꾸지 않더라도, 사령부 창설 만큼은 외면하지 않고 재검토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