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건 사고의 비극이 휩쓸고 간 뒤 2023년 가상자산 시장은 ‘재편성’의 시간을 가질 전망이다. 가상자산 거래소를 비롯해 프로젝트들의 신뢰도 제고 노력이 이어지고, 시장 질서 정비를 위한 규제기관들의 움직임도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규제 초석 다지는 원년 될까…미카 발효・증권형토큰 분류 가시화

"테라-루나, 위믹스 사태 등 여러 사건사고는 오히려 시장의 회복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레온 퐁 바이낸스 아태 대표가 지난 15일 IT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던진 제언이다. 시장이 겪은 우여곡절을 교훈삼아 올해 글로벌 규제당국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규제의 판을 짜고 교통정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이 구상한 가상자산 규제 미카(MICA)는 오는 2월 최종 투표를 앞두고 있다. 미카는 가상자산을 크게 일반 가상자산과 자산 준거 토큰, 전자화폐 3종으로 구분하고 공시와 백서 공표의 의무를 부여한다.

피터 컬스튼스 EU 집행위원회 고문 / IT조선
피터 컬스튼스 EU 집행위원회 고문 / IT조선
피터 컬스튼스(Peter Kerstens)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고문은 지난 15일 IT조선과 인터뷰에서 "미카는 검토 작업이 끝나고, 번역작업에 들어가 오는 5월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에 시행될 미카1는 소비자 보호, 시장강령 등 필수 요소가 포함돼 있어 시장 질서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미국에서는 가상자산의 ‘증권’여부를 가리는 SEC(증권거래위원회)와 리플사간의 소송이 결론날 예정이다. 앞서 SEC는 리플을 증권으로 간주, 지난 2020년 미등록증권 발행 혐의로 리플사를 기소했다.

해당 소송에서 리플사가 승소하면 리플을 비롯한 여러 알트코인들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관할에 놓이게 된다. 반면 SEC가 승소할 경우, 자본시장법의 감시를 받게 돼 공시와 불공정거래 규제를 받게 된다.

업권법・가이드라인 준비 완료…과세는 또 유예

국내 규제당국 또한 증권형토큰의 발행과 유통체계를 정비할 가이드라인 준비를 거의 마쳤다. 이동엽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과장은 지난 15일 열린 IT조선 포럼에서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과장은 정부에서 금융시장 상황에 맞게 가상자산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제들을 하고 있고, 확대해나갈 예정이다"며 "증권형 STO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연초에 나올 것 같다"고 전했다.

이동엽 금융위 금융혁신과장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IT조선의 핀테크・블록체인 컨퍼런스 Fin:D 2022에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 IT조선
이동엽 금융위 금융혁신과장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IT조선의 핀테크・블록체인 컨퍼런스 Fin:D 2022에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 IT조선
투자자보호를 위한 ‘업권법’ 제정은 해를 넘겼다. 현재 국회에는 14개의 가상자산 관련 업권법이 발의돼 있다. 윤창현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과 최근 발의된 백혜련 정무의원장의 법안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빗썸경제연구소는 ‘2023년 가상자산 정책 전망’ 보고서를 통해 "내년초 발표될 ‘증권형 토큰 가이드라인’을 통해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 기준과 발행, 유통체계에 대한 정책 방향이 명확해질 전망"이라며 "증권형 토큰으로 분류된 가상자산은 '자본시장법', 비증권형 가상자산은 새로 제정될 '디지털자산기본법'의 규율을 받으며 정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 예상했다.

가상자산 과세 역시 미뤄졌다. 가상자산 과세안은 지난 2021년부터 두 차례 연기를 거쳐 2023년 1월 시행될 예정이었다. 국회는 지난 23일 본회의에서 과세 시점을 2025년까지로 2년간 연기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기획재정부는 과세 시행 이전 투자자보호를 위한 법안과 보호장치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봤다.

‘신뢰 잃은 시장’ 투자 혹한기…디파이・다오 부각 가능성도

가상자산 시장은 전반적으로 투자 침체기를 겪을 것이란 전망이다. 위험성 높은 가상자산보다는 신뢰도와 투명성을 갖춘 프로젝트로 이목이 쏠리고, 실사용례 증명에 대한 요구도 높아질 것으로 보여진다.

미국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2023년 가상자산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가상자산 시장의 자정 기회이자 더 질 높은 서비스와 자산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 다오(DAO)가 또다시 부각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FTX거래소와 같은 중앙화 거래소의 실패를 겪은 시장 참여자들이 블록체인 상에서 투명한 거래가 가능한 디파이와 다오로 눈을 돌릴 것이란 전망이다.

가상자산 리서치 기업 메사리(Messari)는 ‘2023년 크립토 논제’ 보고서에서 "2023년 크립토 자산운용사들은 투자의 초점을 다오로 옮길 것"이라며 "다오는 향후 몇년 동안 경제, 정치, 사회 등 무수한 영역을 변화시킬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시자 / 테크크런치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시자 / 테크크런치
디파이와 다오의 터전이 되는 이더리움의 입지는 자연스레 더욱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더리움은 지난 9월 PoW(지분증명)에서 PoS(작업증명) 합의 알고리즘 전환을 완료했다. 오는 3월에는 이더리움2.0으로의 여정 중 하나인 상하이 업그레이드를 시행한다.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시자는 "이더리움 기반 애플리케이션은 시장에서 더 많은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경쟁 심화와 시장의 성숙으로 격차를 메울 기회는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