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만의 긱랩’ 코너가 새롭게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루며 살아 온 권용만 기자가 디지털 시대의 삶 속에서 마주한 질문이나 과제들에 대해, 기존의 영역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가는 과정을 담고자 합니다. 엉뚱해 보일지라도, 어딘가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자주]

기억은 순간이지만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고들 한다. 거창하게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에겐 간직하고 싶은 추억과 기록들이 꼭 있을 것이다. 인생에 특별한 순간들은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잊혀지지만, 사진이나 영상 같은 기록들은 순간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게 해 준다.

정보화와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의 ‘기록’ 또한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제 우리는 특별한 날의 기념 촬영을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으로 찍고, PC나 스마트폰에 저장 한다. 이런 디지털 데이터는 언제까지고 영원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상상하지도 못한 ‘디지털 풍화’는 의외로 존재한다. 물론 예전처럼 빛바랜 책이나 사진처럼 화질이 떨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데이터를 담은 미디어가 여러 가지 이유로 열화되면 데이터를 잃어 버리게 된다. 이런 오래된 데이터의 소실은 누군가에겐 재난이겠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해방의 계기일지도 모른다. 이런 ‘디지털 풍화’를 막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고려해야 될 점이 많다.

플래시 메모리는 ‘잠깐 쓰는’ 저장 장치

플래시 메모리의 장기 저장 신뢰성은 ‘낙제’다. /권용만 기자
플래시 메모리의 장기 저장 신뢰성은 ‘낙제’다. /권용만 기자
데이터를 보관하는 ‘저장 매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성’이다. 데이터를 제대로 보관할 수 없다면 저장 매체의 존재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용자들이 저장 매체의 특성에 따른 신뢰성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특히 최근 대부분의 환경에서 사용하는 ‘플래시 메모리’ 기반 매체는 데이터의 장기 저장에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일단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을 언제까지고 그냥 스마트폰 안에만 저장해 두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는 사실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리거나 고장나는 경우 모든 데이터가 함께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별도의 메모리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약간의 여지가 남아 있지만, 여전히 메모리 카드가 갑자기 고장나면 손 쓸 도리가 없다. 메모리카드의 수명은 의외로 짧고, 고장이 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메모리 카드나 USB 메모리, SSD에 소중한 자료를 담고 책상 서랍 제일 안쪽에 잘 모셔 두면 어떨까? 사실 ‘플래시 메모리’는 전기 공급이 끊긴 상태의 장기 저장 용도로 적합하지 않다. 플래시 메모리의 구조상, 외부에서의 전기 공급이 끊기고 일정 시간 이상이 지나면 메모리 셀의 전하 상태가 점차 풀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점점 데이터가 ‘깨지고’, 마지막에는 깨끗이 ‘사라지게’ 된다. 말 그대로 ‘디지털 풍화’ 가 일어나는 셈이다.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하는 저장 장치는 언제나 ‘단기 사용’에 적합함을 명심하자. 혹시 플래시 메모리에 중요한 데이터를 저장했다면, 적어도 몇 달에 한 번 정도는 전원을 넣고 데이터가 잘 있는지 확인하도록 하자. 또한 대부분의 플래시 메모리 기반 저장 매체는 실수로 자료를 잘못 지웠을 때 등의 상황에 복구가 거의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데이터를 여러 종류의 저장소에 보관하는 것은 기본이다.

신뢰성 실험대에 오른 ‘광 매체’

광 매체의 보존성은 제법 뛰어났지만, 이제 실험대에 오를 시기다. /권용만 기자
광 매체의 보존성은 제법 뛰어났지만, 이제 실험대에 오를 시기다. /권용만 기자
1990년대 초중반 ‘멀티미디어’의 상징이던 CD에서부터 시작해 개인 수준에서도 ‘광 매체’를 사용한 데이터 저장이 일반화됐다. 당시 CD는 ‘잘 보관하면 100년 수명’으로도 유명했다. 그 이후 길게는 대략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과연 그 시절 CD로 저장한 데이터를 지금도 잘 읽어낼 수 있을까? 정답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 수준에서 ‘레코더’로 ‘구운’ CD는 지금 읽어낼 수 있는 게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겠다. 먼저, CD-R의 기록면은 디스크 상면에 아주 가깝게 배치된 덕분에 상면의 손상 등에 취약한 구조적 문제가 있다. 덕분에 당시 저가형 CD-R 미디어를 사용한 경우에는 보관 조건에 따라 빠르게는 2~3년만에도 기록면이 녹거나 뜯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런 문제는 DVD 이후에는 기록면이 미디어 중간 정도에 위치하게 되면서 제법 개선됐다. 덕분에 길게는 기록한지 20년 가량 지난 디스크도 대부분은 문제 없이 읽힌다. 블루레이 또한 10여년쯤까지는 대부분 괜찮다. 하지만 가끔 10년 이상 지난 DVD나 블루레이에서 특히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상용 미디어에서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손상 사례가 나오기도 한다.

미디어의 손상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드라이브’다. 이미 광 매체의 사용은 사양길에 들어섰고, 지금 사용중인 드라이브들은 제법 노후화됐다. 앞으로 언제까지 신품을 원활하게 구입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미디어가 잘 보존되어 있더라도 소모품의 성격을 가지는 드라이브가 정상이 아니면 데이터를 읽어낼 수 없고, 나중에는 정상 작동하는 드라이브를 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이미 과거 몇 번의 시대 전환기에도 있었던 것이다. 지금 와서 플로피 디스크가 집안 어딘가에서 발견되더라도,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드라이브를 찾는 게 더 어렵다. 그 이전의 테이프 드라이브나 CD 시절에 같이 사용된 추억의 집(zip), 재즈(jaz) 드라이브 같은 건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이런 세월의 흐름이 이제 CD와 DVD에도 찾아온 것 뿐이다.

하드 디스크, 비교적 양호하지만 복병 있어

하드 디스크의 가장 큰 리스크는 ‘모터’와 ‘충격’이다. /권용만 기자
하드 디스크의 가장 큰 리스크는 ‘모터’와 ‘충격’이다. /권용만 기자
자기 기록 방식을 사용하는 하드 디스크는 오랜 시간의 보관에도 비교적 데이터를 잘 지키는 편이다. 실제로 십수 년간 사용하지 않았던 PC를 켜거나 하드 디스크를 다시 연결해도 자료가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부피 대비 용량도 다른 미디어보다 상대적으로 훌륭한 편이다. 덕분에 일부 사용자들은 아예 하드 디스크에 중요한 데이터를 저장한 뒤에 이를 잘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하드 디스크도 언제나 안전하지는 않다. 가장 큰 위협은 하드 디스크에 물리적인 ‘모터’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모든 움직이는 것이 그렇지만 하드 디스크 또한 오래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해서 다시 켜는 순간이 가장 큰 고비다. 너무 오랜 시간 멈춰 있던 모터가 자칫 다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그 때는 끝이다. 한편, 하드 디스크는 자주 껐다 켰다 하는 것보다 한 번 켜면 끄지 않는 쪽이 더 오래 쓸 수 있기도 하다.

사용과 보관 과정에서의 ‘충격’도 문제다. 사실 하드 디스크의 내부 구조는 제법 견고하며 동작 중에는 충격에 취약하지만 멈춰 있는 상태에서는 수백 G(표준 중력가속도)의 충격도 잘 버틴다. 하지만 이 충격의 단위가 일반적인 인식과 상이할 때가 있다. 하드 디스크를 떨어뜨렸을 때 충격량에 결정적인 요인은 순간의 ‘각도’와 땅에 닿는 ‘면적’인데, 때로는 높이가 얼마 되지 않더라도 운이 없으면 치명적인 각도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하드 디스크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도 복병이다. 현재 주로 사용되는 SATA(Serial Advanced Technology Attachment) 방식은 보급된 지 대략 20년 정도됐다. 그 전에는 PATA(Parallel ATA)방식을 썼는데 현재 PC에서 PATA 방식을 사용하려면 별도의 컨트롤러를 사용해야 한다. 워낙 PATA가 구형이다 보니, 현재의 PCIe 방식을 사용하는 컨트롤러를 찾는 것은 큰 일이다. 그나마 USB 방식의 외장 드라이브에 연결하는 것이 가장 편리한데, 이마저도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기록 또한 주기적 ‘갈아타기’ 필요

보통 백업의 정석은 ‘같은 데이터를 세 군데에 복제한다’이다. 일반적인 사용자라면 이 세 군데를 스마트폰의 메모리, PC의 저장용 하드 디스크, 클라우드 서비스 정도를 생각할 수 있겠다. 최소한 두 가지는 갖추고 있어야 하고, 클라우드 서비스는 비용이 들지만 편의성이나 안전성 모두에서 이제는 필수적일 서비스다. 특히 PC가 랜섬웨어의 공격을 받거나, 실수로 데이터를 지워 버렸을 때, 클라우드 백업은 생명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백업에 클라우드 서비스만 믿어서도 안된다. 클라우드 서비스 또한 장애 발생 가능성이 존재하며, 현실적으로는 데이터를 사용할 때의 성능 문제도 있다. 이것저것 잘 따지다 보면,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PC의 하드 디스크에 클라우드의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동기화시키는 것이 제법 합리적인 구성이 될 것이다. 클라우드 서비스 비용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보험’이라고 생각하도록 하자.

플래시 메모리나 광 매체, 하드 디스크에 담아놓은 자료는 이번 연휴에라도 여전히 잘 있는지 확인해 보자. 제일 편리한 방법은 백업된 데이터를 다른 곳으로 복사해 보는 것이다. 이왕이면 믿을 만한 새로운 미디어로 옮겨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혹시 없어지면 안 될 추억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면 다음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반성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세월 앞에 영원한 것은 없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행동이 필요하다.

권용만 기자 yongman.kw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