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치매약으로 각광 받았으나 부작용 논란으로 사실상 퇴출 위기에 놓인 ‘아두헬름’을 승인한 바 있는 미국 FDA(식품의약국)가 최근 허가 기준을 높이면서 신약 승인이 대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에는 해외 의약품 생산시설을 대상으로 불시 점검까지 감행할 것으로 전해져 강화된 FDA 기준에 맞추기 위해 업계 전체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FDA 전경. / FDA 홈페이지 캡처
FDA 전경. / FDA 홈페이지 캡처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FDA가 승인한 신약은 총 37개로, 6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FDA 허가를 획득 합성의약품 신약(NME)은 22개였으며, 바이오신약(BLA)의 경우 15개가 존재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8개의 바이오의약품의 경우 백신 2개, 세포.유전자치료제 5개, 마이크로바이옴치료제 1개였으며, 지난해 정식허가가 아닌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는 신약 개수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이 같은 배경에 2021년 FDA가 허가했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김지운 선임연구원은 "아두헬름 영향으로 2022년에는 심사를 강화하면서 승인된 약물이 줄었다는 의견이 있다"고 설명했다.

인류 최초의 치매약으로 불리던 아두헬름은 FDA 승인을 받은 이후 의료계에 큰 관심을 받았으나, 머지않아 환자가 사망하는 등 심각한 부작용 논란에 휩싸이며 보험급여 퇴출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심지어 허가 과정에서 아두헬름 개발사인 바이오젠과 FDA 심사역들의 유착관계 정황이 포착되면서 오랜 기간 쌓아온 명성마저 흔들리게 됐다.

이에 FDA는 실패한 의약품을 시장에서 회수하는 것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뿐 아니라 당초 신속승인이 가능했던 기준 사항을 대폭 높이면서 좀 더 까다로운 잣대를 적용하기로 했다.

또한 올해 FDA는 그동안 사전 통지를 통해 실시한 실사가 아닌 사전 통지 없이 해외 의약품 생산시설을 시찰하는 ‘불시 점검 파일럿 프로그램’을 올해 상반기에 진행한다. 이는 기존 사전 통지 실사와 불시 점검을 비교해 규정 위반의 수 및 위반 형태의 차이 등을 평가하기 위함이다.

현재 미국 내 의약품 생산시설 대부분은 불시 점검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 기준을 해외에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프로그램은 지난해 12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1조6500억달러(2041조원) 규모의 2023년 통합세출법에 포함됐다.

올해 FDA 예산은 전년 대비 2억2000만달러(2722억원)가 증가한 35억달러(4조3309억원)로 책정됐다. 이 중 1000만달러(124억원)가 해당 파일럿 프로그램에 사용된다.

미국 의회는 FDA가 통합세출법이 발효된 이후 180일 이내에 프로그램을 개시하도록 하고 있어 빠르면 올 상반기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이며, 늦어도 올해 6월에는 불시 점검이 시행될 예정이다.

FDA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불시에 진행한 해외 실사에 대한 개수와 이를 통해 확인·권고되는 사항에 대한 보고서를 FDA 웹사이트에 게시해야 한다. 또 파일럿 프로그램 종료 후 180일 이내에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간 미국 의회는 FDA가 미국 내 생산시설과 다르게 해외 생산시설에 대해서는 사전 통지 실사를 진행하는 관행에 대해 비판해 왔다. 적지않은 규모의 FDA 승인 의약품들이 해외 생산 시설에서 만들어지는데도 FDA는 그동안 이들에 대해 평가 기준에 관대했다는 지적이다.

FDA 해외 실사 대상 상위 10개국에는 북미(캐나다), 아시아 4개국(인도, 중국, 한국, 일본), 유럽 5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이 포함된다. 특히 의약품 제조시설 의 1/3 이상은 인도와 중국에 소재해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미국 FDA 실사 대상 상위 10개 국가에 포함돼 있어 올해에 시행될 파일럿 프로그램과 이후 사전 예고 없이 상시적으로 진행될 실사에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예상은 했지만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불시 실사가 진행된다고 해 업계 전체가 긴장하는 분위기다"며 "기존 FDA에 보고된 방식 그대로 생산 시설을 관리하면 문제 없겠으나, 사람 일이라는 것이 불시 검문이 들어올 때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