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2013년 대기업의 공공 SW 시장 독과점을 제한하고 역량 있는 중견·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도입한 ‘공공 SW 사업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 영향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는 제도 폐기를 검토 중이다.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은 10일 ICT 분야 규제혁신 과제로 이 제도를 넣었다. 제도 시행 전 대기업의 공공 SW 사업 시장 점유율은 80%에 달했는데, 제도 시행 3년 후인 2016년 7%까지 확 줄었다. 정부는 규제 도입의 취지를 이미 달성했다며 향후 혁파해야 할 규제라고 판단했다. 10년간 토종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간을 줬으니 할 만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 클라우드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는 기존 SW 정책 관련 정책을 펼 때와 달리 초반부터 시장 경쟁의 스케일을 너무 크게 잡았다. 토종 중견·중소기업이나 대기업 간 경쟁 구도가 아닌 세계 시장을 거의 장악한 미국 기업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도 전에 공공 먹거리마저 외산 기업에 내줄 판이다.

애초 정부는 클라우드 보안인증(CSAP)을 획득한 기업만 정부 사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했다. CSAP는 외산 기업의 진입 장벽으로, 수집 데이터를 국내 별도 서버에 저장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외산 기업 중 CSAP를 받은 곳은 없다. 한국에 모든 데이터를 둬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 탓이다. 사업 참여를 검토하는 토종 기업은 정부의 원칙에 맞게 큰 비용을 들여 서버까지 구축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데이터를 해외에 저장해도 된다는 내용으로 고시를 한 후 반발이 컸다. 국회 국정감사장을 비롯해 다양한 토론회에서 정책의 문제점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규제 완화는 곧 민간 클라우드 시장을 거의 장악한 미국의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클라우드 등의 공공 클라우드 시장 독식으로 이어질 수 있는 탓이다.

무엇보다 분단국가인 한국의 공공 데이터를 해외로 반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외산 기업에 한국의 데이터 주권을 주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토종 기업을 향한 역차별 문제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데이터 저장 장소와 관련한 내용은 새로운 고시를 통해 다행히 수정됐다. 하지만, 정부가 충분히 예측 가능한 불필요한 논쟁을 일으킨 의도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기업의 클라우드 분야 경쟁력은 AWS 등 외산 기업보다 많이 딸린다. 시장 경쟁 논리대로 무조건 개방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공공 SW 시장에서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했던 것처럼, 공공 클라우드 분야 역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한국 기업이 체력을 갖출 수 있도록 현명한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인애 기자 22na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