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자국 중심 생산을 강조하며 내놓은 ‘바이오 이니셔티브’ 행정명령 시행을 본격화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 가운데, 국내 바이오 업계가 우방국 차별은 안 된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정부가 행정명령 관련 후속 조치로 공개 의견 수렴(RFI)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 제조 바이오 의약품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NBBI)’ 행정 명령에 서명한 이후 180일 안에 구체적 전략을 보고해야 함에 따른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국가 바이오기술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바이오산업까지 자국 중심주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 조선DB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국가 바이오기술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바이오산업까지 자국 중심주의 영역에 포함시켰다. / 조선DB
의견수렴에서 미국 정부는 바이오 기술과 제조의 발전을 위해 어떤 연구개발이 필요하고 미 정부는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지, 자국 내 공급망을 활성화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점과 글로벌 파트너와의 협업 방안 등은 무엇인지 등 24개의 항목에 대해 질의한 상태다.

미국 정부의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은 바이오 의약품 등에 대해 미국 내 생산과 연구를 강조한 행정명령이다. 행정명령에 서명할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에서 발명한 모든 것을 미국에서 만들 수 있게 할 것이다"며 "미국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더 강력한 공급망을 구축할 전망이다"고 강조한 바 있다.

미 정부는 자국 내 바이오 생산기반을 구축하는데 10억달러(1조2350억원)를 투입하고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생산시설을 보호하는 데 2억달러를 쓰는 등 20억달러 이상의 예산을 투입한다. 미국 정부는 올해 3월쯤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미국의 이러한 행동은 중국 견제에서 비롯됐다. 최근 미국은 중국 간에 불신이 깊어지면서 핵심 물품인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미국 정부는 자국에 공급되는 의약품의 제조 시설 대부분이 중국에 있다는 점을 깨달으며 경각심을 갖기 시작했다. 실제 미국의 ‘1차 공급망 안정성 보고서’에 따르면, 의약품 제조시설의 87%가 해외에 있어 필수 의약품에 대한 공급망이 취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모든 국가에 동일한 장벽을 세운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미국에 진출해 있거나 진출할 예정인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당장 삼성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등 미국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는 국내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국내 회원사에 대해 의견 제출을 독려하고, 미국 정부에 "우방국에 대한 차별조치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전달했다.

협회는 의견서를 통해 "(한국의) 기업들이 보스턴, 실리콘밸리 등을 포함한 미국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한국은 미국에 필수적인 원료의약품 및 바이오 의약품 원·부자재 공급망 구축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 미국과 80년 이상 혈맹 관계를 유지해 온 우방국으로, 차별조치가 있어선 안되며 장기적인 글로벌 공급망 안정성이라는 기조에 어긋나서도 안된다"며 "한국은 바이오 산업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제조 인력이 많을 뿐 아니라,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로 선정되는 등 인프라 구축도 잘 돼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미국 정부에 이러한 움직임에 수혜를 입는 기업도 존재한다. SK팜테코의 경우 세포·유전자 치료제 CDMO의 주요 거점으로 미국을 선택, 새크라멘토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 역시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 있는 브리스틀마이어스스퀴브(BMS)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공장을 인수했다.

업계 관계자는 "극히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모든 국내 기업들이 이번 바이오 이니셔티브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초부터 정부와 산업계가 다양한 방법으로 대책을 고심하고 있지만 행정명령이 발동하는 동시에 미국 내 진출 사업에 막대한 어려움이 생길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