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에서 ‘을’의 위치에 있던 배터리 기업의 위상이 달라졌다. 전기차 시대 전환으로 완성차 업계는 배터리 생산거점 확보를 위해 K배터리 기업에 손을 내민다.

기업 간 합종연횡도 활발히 펼쳐지고 있으며, 자동차 업체와 K배터리 기업 간 협상이 결렬돼도 오히려 여유가 보인다. K배터리는 이미 대규모 양산 체제를 구축했고, 향후 7~8년치 일감도 쌓아두고 있다. 급할 것이 없는 입장이다. 배터리 기업들의 협상력이 높아진만큼 향후 합작공장 설립은 K배터리 기업의 수익성을 중심으로 검토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22년 7월 6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0회 국제 나노기술심포지엄 및 융합전시회 '2022 나노 코리아' 에서 참석자들이 나노소재가 적용된 전기자동차 배터리 셀을 살펴보고 있다. / 뉴스1
2022년 7월 6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0회 국제 나노기술심포지엄 및 융합전시회 '2022 나노 코리아' 에서 참석자들이 나노소재가 적용된 전기자동차 배터리 셀을 살펴보고 있다. / 뉴스1
27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이 추진했던 미국 내 네 번째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계획이 무기한 보류됐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다양한 완성차 업체와 투자를 발표한만큼 ‘선택과 집중’을 위해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섰다는 평가다.

LG에너지솔루션은 그동안 다수의 합작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GM과 함께 오하이오주와 테네시주에 총 3개의 합작공장을 짓고 있다. 스텔란티스와 혼다, 현대차 등과 합작공장을 설립할 것이라는 계획도 발표했다. 테슬라 전용 배터리 공장도 국내에 건설 중이다. GM과 포드의 합작공장 협력 업체는 각각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K배터리 기업이 느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미 확보해 둔 수주잔고가 상당 규모인 영향이 크다. 배터리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K배터리 3사의 수주 잔고는 10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추가 계약 없이 2030년까지 생산 라인을 가동할 수 있는 물량이다.

2022년 9월 말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의 수주잔고는 370조원 수준이며, SK온은 같은해 10월 기준 220조원 규모다. 삼성SDI는 공식적으로 수주잔고를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업계는 11월 기준 120조원 수준의 계약을 확보한 것으로 추산한다.

K배터리 업체들이 다양한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이유는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덕이다. 안정적으로 배터리를 납품할 수 있는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고, 파우치형과 원통형 등 다변화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춰 고객 요구에 적시 대응할 수 있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교수(자동차학과)는 "(완성차 업체들이) 우리나라 배터리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며 "국내 기업들은 안정적으로 제품을 납품 받을 수 있는 제조사로 꼽힌다. 우리나라와 함께 배터리 강국으로 꼽히는 일본은 파우치형 배터리 부분에서 기술 경쟁력이 낮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