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변화한다. 자연스레 우리 사회도 과거와는 상당히 바뀌었다. 예전에는 당연시 되던 것들은 이제 당연하지 않다. 구세대는 그렇게 신세대와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등장한 단어가 ‘요즘 애들’과 ‘꼰대’다. 그만큼 갈등은 커졌다. 하지만 옛 것을 존중하지 않고 새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갈등은 봉합할 수 없다. 서로를 이해하고 개선이 절실하다. 이에 IT조선은 계묘년을 맞아 변화하는 시대에 서로 공존할 수 있도록 ‘리멤버, 요즘 직장인’ 특집을 마련했다. 직장 내 세대별 특징과 갈등 상황, 원인분석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보다 나은 조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올바른 관리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30대 직장인 A는 최근 나이와 경력이 비슷한 직장 동료 B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B의 감정 기복 때문이다. B는 감정이 고스란히 태도로 표출된다. A는 B가 기분이 상하면 모두에게 자신의 ‘기분나쁨’을 알도록 만드는 ‘오피스 빌런’이라고 생각한다. A는 B와 거리를 두고 있다. 업무상 필요한 행동만 한다. 딱히 해결된 건 없지만 B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40대 직장인 C는 요즘들어 같이 일하는 선배, 동료, 후배 모두가 ‘오피스 빌런’이라고 느껴진다. C 생각에는 마치 나만 일하고 그들은 놀고만 있는 것 같다. 그는 특히 그들이 상급자에게는 잘 보이려 애쓰면서 C에게는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것 같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상급자에게 면담을 신청해봤지만 소용은 없었다. 일하는 동안 성장하기는 커녕 업무능력이 후퇴하는 기분이다. C는 자신이 이상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오피스 빌런(Office villain)은 다른 사람의 업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일삼으며 피해를 주는 사람을 비꼬는 신조어다. 유형은 다양하다. 요즘 직장인 10명 중 9명 이상은 이런 오피스 빌런을 겪고 있거나 겪어봤다고 느꼈다.

오피스 빌런은 한 명만 있어도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이들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빌런 행동’은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업무상 마주칠 일이 없다면 모른 척 무시할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IT조선은 20대부터 50대 이상 직장인 309명을 대상으로 오피스 빌런 관련 경험을 조사했다. 이번 조사는 종합 비즈니스 플랫폼 리멤버의 리서치 서비스를 활용했다. 리멤버 리서치 서비스는 정교한 타깃 설문이 가능한 설문 서비스다.

10명 중 9명 "경험했다"

IT조선이 리멤버 리서치 서비스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직장인 63%는 현재 오피스 빌런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아니지만 경험해본 적 있다는 사람도 31%에 달한다. 10명 중 9명이 오피스 빌런을 경험해본 셈이다. 현재 오피스 빌런과 일하고 있다는 사람의 63%가 2~3명의 빌런을 겪고 있다고 답변했다. 4명 이상이라고 답변한 사람도 12%에 달했다.

빌런은 대체로 상급자나 선배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집계됐다. 빌런과 관계를 묻는 질문에 ‘상급자 또는 선배’가 73%를 차지했다. 복수응답이 가능한 질문이었지만 ‘경력이 비슷한 동료’는 36%, ‘후배’는 27%였다.

빌런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났다. 3개까지 중복응답이 가능한 질문에도 ‘기분이 태도가 되는 감정조절불가형’이 39%로 가장 많았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표출해야만 하는 사람을 말한다. 기분이 상했을 때 남들이 알아봐주길 바라는 듯 여기저기 기분 나쁜 티를 내는 셈이다. 그 다음은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월급은 꼬박꼬박 챙겨가는 월급루팡형이 36%, 상급자에게만 잘보이고 부하직원은 막대하는 강약약강형이 34%였다. 감정조절불가형은 오피스 빌런을 겪어본 적 없는 사람까지 포함했을 때도 4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마땅치 않은 빌런 대응법…현상유지만 해도 다행

오피스 빌런을 개인이 대응할 방법은 딱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빌런 문제를 겪는 사람 절반(50%)이 업무상 필요한 행동만 하며 빌런과 거리두는 것을 선택했다. 두 번째로 많은 17%가 선택한 방법은 없는 사람인척 무시하는 것이었다. 빌런이나 내가 회사를 떠날 때까지 참는 사람이 8%,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8%였다.

사실상 대부분이 오피스 빌런 문제를 겪어도 적극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셈이다. 거기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자신의 대응법으로 빌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람은 81%에 달했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존재를 피할 수 없는데 해결방법도 딱히 없는 어려운 상황이다. 빌런을 마주한 사람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싶었다’, ‘꼴보기 싫다’, ‘퇴사하고 싶다’ 같은 부정적 감정을 주로 느꼈다. ‘뒤통수를 한 대 강하게 내려치고 싶다’거나 ‘존재만으로도 짜증이 난다’ 같이 분노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 외에는 ‘어딜가나 정도만 다를 뿐 누구나 저럴 수 있고 나도 누군가에게 오피스 빌런일 수 있다’, ‘새상엔 참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는구나하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된다’ 등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답변도 나왔다.

회사가 오피스 빌런을 조치해 주는 경우도 없었다.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사람은 62%에 달했다. 회사가 인사조치를 통해 오피스 빌런과 피해자를 격리했다는 답변이 16%, 빌런 행동 시 중징계를 했다는 답변은 4%에 그쳤다. 오히려 피해자를 탓한 기업이 8%로 조사됐다.

응답자 77% "빌런은 자신이 빌런인줄 모른다"

문제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업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직장인 5명 중 3명(77%)은 오피스 빌런이 스스로 자각하기 전까지 자신이 빌런인 줄 모르는 것 같다고 봤다. 빌런으로 여겨지는 것을 알 것 같다고 선택한 23%는 주위에서 여러 번 지적했거나 주변 반응을 보고 눈치챈 것 같다고 답변했다.

스스로를 빌런으로 여기지 않을 것 같다고 답변한 사람들은 주로 ‘내가 믿는 것이 곧 진실이다’ 같은 태도인 점을 이유로 꼽았다. 비중도 43%에 달한다. 이어 37%가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해 주위를 신경쓰지 않아서’를 선택했다. 두 답변을 종합하면 다른 사람과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일수록 오피스 빌런일 가능성이 큰 셈이다.

오피스 빌런이 왕성하게 활동하면 힘든 것은 나머지 직원들이다. 빌런이 분위기를 해치고 회사에 정이 떨어지니 ‘조용한 퇴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실제로 오피스 빌런 영향을 주관식으로 묻자 ‘6명이 세 달을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 ‘팀원 절반이 퇴사했다’ 등 퇴사자가 속출했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는 빌런이 다른 사람의 성과를 방해하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스트레스는 특히 빌런의 행동보다 그 행동으로 내가 처리할 일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인류애를 잃었다’, ‘인간을 냉소적으로 대하게 됐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됐다’ 같은 염세적인 답변도 나왔다. 반면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내공을 쌓아줬다’ 등 자아성찰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근로복지넷 등에서 근로자지원프로그램(EAP) 상담을 진행하는 최선애 구로 늘푸른심리상담센터 센터장은 "보통 ‘왜 나에게 이렇게 하나’ 생각하며 힘들어하는데 ‘그냥 그 사람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그 사람의 행동 원인을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영향을 덜 받는 방법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나는 왜 저 행동이 싫은지 이유를 생각해보면서 나를 성찰해볼 수도 있다"며 "그래도 신체적·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 정 못견디겠다면 도피가 아니라 ‘나를 위한 좋은 선택’이라는 마음으로 이직을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리멤버 리서치 서비스는 400만 현직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전문가 인터뷰'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즈니스 프로필을 바탕으로 산업·직무·직급·회사·소재지·기업규모 등 원하는 조건의 대상자를 정교하게 타깃팅 한 설문조사와 전문가 인터뷰 매칭이 가능하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