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거래 은행의 4%대 후반 특판 예금금리 안내 문자를 받은 한 지인이 이를 까먹고 있다가 뒤늦게 생각이 나 은행을 찾았다. 불과 며칠 사이임에도 불구, 특판이라던 예금 상품은 이미 품절이 됐다. 뒤에 나온 예금 금리는 3.4%로 떨어져 있었다. "이자 더 올리면 큰일 난데요. 어쩔 수 없이 내리고 있습니다"라는 게 은행 창구 직원의 설명.

무섭게 올라가던 시중은행 금리가 다시 떨어지는 추세다. 은행연합회가 1월 발표한 지난해 12월 기준 코픽스(COFIX, 자금조달비용지수)는 신규 취급액 기준 4.29%로 전달대비 0.05%포인트 하락했다. 코픽스는 국내 주요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 코픽스 금리가 떨어진다는 얘기는 곧 예금이나 대출상품의 금리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달 초 8%를 넘겼던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6%로 떨어졌다. 현재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주담대 변동금리는 연 4.54~6.96% 수준. 연초와 비교하면 1%포인트 넘게 빠졌다. 지난해 9월말 수준이다. 금리하락 추세는 카카오뱅크를 비롯, 여타 인터넷은행으로 번지고 있다.

금리하락의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은행채 발행이 어렵게 되자,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올려 자금을 모았다. 이에 대출금리도 따라 올랐다. 금융당국이 금리 인상 자제를 요청하자 눈치를 보던 은행들이 슬금슬금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은행권 금리가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금융당국도 안도하는 모양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금리하락 움직임에 대해, "예금금리 인하에 따른 코픽스 적용, 대출금리 인하 등의 선순환 구조가 생긴 것으로 본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을 바라보는 관계자들은 내심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당장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기조와 시장이 거꾸로 가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3.5%를 결정했지만 금리인상이 무색하게 16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45%로 하락, 기준금리를 밑도는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현재는 3.27% 수준까지 내려온 상황이다.

금리인상 기조가 마무리됐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는 하나, 그러기에는 지금의 물가 상승 추세가 만만치 않다. 시장 금리만 보면 물가 우려보다는 다시 경기가 나빠져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가 강해졌다고 봐야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다. 금융당국과 시장의 어색한 동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선은 당국의 입에 모아질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신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에 기획재정부 출신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선임되면서 관치 논란이 적지 않다. 이석준 신임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영입한 첫번째 외부인사다. 우리금융 회장 후보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거론되는 것도, 이복현 금감원장이 우리금융 회장 인선을 놓고, "객관성이 부족하다"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은행권으로서는 여러모로 부담일 수 밖에 없다.

금융시장을 안정시켜 국민이 편안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금융당국의 역할일 것이다. 다만 시장에 혼선을 주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 윤석열 정부는 김진태 강원도 지사의 레고랜드 사태로 이미 자금시장에 ‘아마추어 아니냐’는 우려를 남긴 바 있다.

지금의 금리하락이 금감원장의 표현대로 선순환 과정의 일부인건지, 아니면 과도한 압박에 따른 부작용인지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만약 당국과 시장의 엇박자의 결과라면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될 것이라는 점만 기억하면 된다.

손희동 디지털파이낸스부장 sonny@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