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을 경험하며 글로벌 제약바이오산업이 자국내 공급망 강화 방침으로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제약주권 없이는 대한민국은 제약강국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원희목 제약바이오협회장은 30일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제약바이오협회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이같이 밝혔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이 30일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제약바이오협회에서 협회의 올해 사업 추진 방향 및 대정부 건의사항 등을 발표하는 신년기자간담회를 개최해 산업계에 필요한 요구사항들을 설명하고 있다. / 김동명 기자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이 30일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제약바이오협회에서 협회의 올해 사업 추진 방향 및 대정부 건의사항 등을 발표하는 신년기자간담회를 개최해 산업계에 필요한 요구사항들을 설명하고 있다. / 김동명 기자
원 회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세계 각국의 보건의료체계 붕괴와 필수 의약품 부족사태 등 대혼란을 목도하며 보건안보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며 "한 국가가 백신과 필수의약품 등을 자력으로 개발 생산 공급하는 역량을 갖추지 못할 때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건강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세계 의약품 시장은 2022년 1630조에서 2028년 2307조원으로 연평균 6%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반도체 시장(740조)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 산업 규모는 상당히 미비한 실정이다. 한국 의약품 시장은 25조원으로 세계시장의 1.5%에 불과하다. R&D 투자규모도 글로벌 10대 빅파마가 82조를 쏟은 것에 비해 국내 10대 제약기업은 1조4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원 회장은 "원료의약품·백신 등 낮은 자급률에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블록버스터와 글로벌 빅파마 탄생 등 제약강국이 되겠노라 말하는 것은 모래위의 성을 짓겠다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정부의 확실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실제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초고속작전’에 예산 14조원을 지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바이오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을 통해 필수의약품 생산역량 강화를 주문했고, 의약품 공급망 다변화 등에 2조7000억원을 투입할 것을 약속했다.

중국도 ‘건강중국 2030’과 ‘중국제조 2025’를 통해 2030년까지 국내 바이오산업 규모 1800조원 달성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바이오전략 2030’ 수립 및 범정부 연구개발 컨트롤타워 ‘AMED(의료연구개발기구)’를 설치, 최근 5년간 제약바이오 R&D에 8조원을 투입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국내 보건의료 총 예산은 2022년 4조5000억원으로 미국 NIH(미국 국립보건원)가 책정한 56조의 1/12 수준이다. 2년여간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한국 정부가 백신·치료제 개발에 투입한 금액도 4127억원에 불과하다. 완제의약품 비율은 2011년 80.3%에서 2021년 60.1% 수준으로 오히려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역시 2025년까지 블록버스터 신약 창출 목표를 비롯해 제3차 제약바이오 육성지원 5개년 계획 등을 수립하며 육성지원 의지를 드러냈지만, 협회 측은 산업계가 직접 체감할만한 정책은 실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원 회장은 "정부는 당초 ‘제약바이오를 국가 핵심전략산업으로 육성해 바이오헬스 글로벌 중심국가로 도약하겠다’는 약속대로 제약주권 확립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정해야 한다"며 "그간 정부가 제시한 산업 육성방안이 현장에서 전혀 체감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과감하고 신속한 육성지원 방안이 실행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에 협회는 ▲원료·필수의약품·백신의 국내 개발·생산 기반 강화 ▲의약품 품질 제고 및 제조공정 혁신 필요 ▲허가·약가제도 등 불합리 규제 혁신 등을 제안했다. 또한 협회는 블록버스터 신약 창출을 위해 민·관·학·연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협회는 ▲상용화 가능한 임상 2·3상 정부 투자 증대 ▲보험의약품 가격제도 개선 ▲제약바이오혁신위 설치 ▲메가펀드 지원규모 확대 등도 정부에 건의했다.

특히 협회는 R&D 투자비 회수가 힘든 보상체계 아래서 신약개발을 위한 동기부여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국내 등재 신약 가격을 글로벌 신약의 70~120%로 결정하고, 신약 가격 결정시 기준이 되는 대체약제는 특허중인 신약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원 회장은 "국민 생명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제약주권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야 말로 대한민국이 당당하게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해 국부를 창출하는 출발점이라고 확신한다"며 "보건안보가 최우선시되는 현실에서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제약바이오산업의 압도적 경쟁력이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