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이 중형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상장을 추진하면서 ‘스팩명가’로서의 입지를 굳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연말 시장 악화 분위기에도 아랑곳없이 올해 초 신규 스팩 상장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에서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증권은 오는 14~15일 삼성스팩8호의 수요예측을 진행한 후 20~21일 일반 청약을 받는다. 삼성스팩8호의 공모가는 1만원으로 총 공모금액은 400억원이다. 일반적으로 스팩의 공모가는 2000원, 공모금액은 100억원 미만에 그치는 것과 비교하면 4배나 많다.

삼성스팩8호는 삼성증권이 이제까지 상장했던 스팩 중 가장 큰 규모다. 삼성증권은 2009년 스팩 제도 도입 이듬해 300억원 규모의 히든챔피언제1호스팩을 상장시킨 바 있다. 당시 히든챔피언제1호스팩은 청약 경쟁률 0.66대 1을 기록하는 데 그쳤고 상장 이후에도 합병 대상 기업을 찾지 못해 청산됐다.

스팩은 작년 중순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의 각광을 받았다. 일반 IPO가 부진하면서 투자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기관 대상 수요예측 경쟁률이 1000대 1을 넘는 곳도 등장하고 따상(시초가가 공모가 2배로 형성된 뒤 상한가)에 성공한 스팩도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는 스팩 IPO도 침체기를 맞았다. 은행 예금 금리가 4~5%로 오르면서 2% 수준인 스팩 예치 이자율을 넘어서면서다. 작년 10~12월 중 공모를 진행한 스팩은 16개로 이들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68대 1에 그쳤다. 100대 1을 넘긴 스팩은 삼성스팩7호, 한국스팩11호(140.7대 1), NH스팩25호(139.8대 1) 등 3개에 불과했다.

청약 미달 사태도 벌어졌다. NH스팩27호, IBKS스팩21호, 비엔케이스팩1호, 신영스팩9호 등은 각각 청약 경쟁률 0.58대 1, 0.95대 1, 0.29대 1, 0.64대 1을 기록했다.이에 미래에셋비전스팩2호와 유안타12호스팩 등 두 곳은 스팩 상장을 철회하기도 했다. 두 회사는 기관 수요예측을 완료한 상태였지만, 청약 미달 가능성을 우려해 상장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삼성증권 스팩은 나홀로 흥행에 성공했다. 작년 10월 공모금액 300억원 규모의 중형 스팩인 삼성스팩7호는 1만원으로 공모, 일반청약 경쟁률 429.1대 1을 기록했고 3조원이 넘는 증거금을 끌어모았다. 비슷한 시기 같은 공모가(1만원)로 상장을 추진한 하나금융25호스팩이 18.3대 1의 경쟁률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성과가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하나금융25호스팩의 공모액은 400억원이었다.

삼성증권 스팩은 상장 이후로도 강세를 기록했다. 삼성스팩6호는 31일 종가 기준 3300원을 기록하며 공모가(2000원) 대비 65% 올랐다. 삼성스팩4호는 5070원에, 삼성스팩7호는 1만110원, 삼성머스트스팩5호는 3325원에 거래를 마치면서 공모가 위에서 거래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삼성증권이 상장시킨 스팩 대부분은 상장 직후 급등하는 추세다. 삼성스팩4호는 상장 2일 째부터 6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삼성머스트스팩2호도 상장 첫날 따상을 기록한 뒤 2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보였다. 지난해 상장한 삼성스팩6호 역시 따상을 기록한 후 3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삼성스팩8호 흥행 가능성도 높게 점치고 있다. 앞선 학습효과 여파로 따상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대거 몰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게다가 삼성스팩8호가 은행 예금 금리보다 높은 4%의 예치 이자율을 제시한 것도 투자 매력도를 높일 수 있다. 지난해 상장한 삼성스팩7호의 예치 이자율은 1.5%였다.

업계 관계자는 "IPO 시장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으면서 스팩은 여전히 대안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며 "또 5%가 넘던 은행 예금 금리가 하락세를 보이고 스팩 예치 이자율도 높아지고 있는 점도 스팩 IPO 매력도를 높이는 요소"라고 말했다.

다만 일반적인 스팩 대비 규모가 큰 만큼 합병 불발 시 부담해야 하는 리스크도 크다는 점은 우려 요소다. 스팩이 합병기일 내 합병대상 기업을 찾지 못하면 합병대상 물색·감사·법률 비용 등 초기 비용부터 청산 비용까지 발기인이 감당해야 한다.

스팩 청산을 위해서는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4%의 예치 이자율을 줘야 한다. 1주를 가진 투자자는 총 1만1249원을 돌려받는 셈이다. 삼성스팩8호의 발기인은 아이피파트너스(15.36%), 제이씨에셋자산운용(15.06%), 파로스자산운용(15.06%), 밸류시스템자산운용(15.06%), 유티씨인베스트먼트(15.06%), 라이프자산운용(15.06%), 에이스톤벤처스(9.04%), 삼성증권(0.3%) 등이다. 여기에 삼성증권은 전환사채 4억6800만원도 보유하고 있다. 합병 실패 시 상장 수수료 절반과 전환사채 시세차익으로 인한 수익은 받지 못한다.

김민아 기자 j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