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소액투자자의 경우 장외거래 플랫폼 당 연 1000만원 한도로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 Offering) 투자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증권가에서는 STO 신사업 확대에 상당한 투자 비용이 투입되는 것을 감안, STO 한도를 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23년 1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개최된 제6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자본시장 분야 규제혁신 안건을 심의하고 있다./금융위원회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23년 1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개최된 제6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자본시장 분야 규제혁신 안건을 심의하고 있다./금융위원회
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 12일 STO 거래 한도를 1000만원까지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증권 토큰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 방안’을 마련했다.

금융위 산하인 금융규제위원회가 작성한 이 문건에는 STO 제도화 관련 내용이 총 20페이지 분량에 걸쳐 서술돼 있다. ▲공모규제 완화 ▲투자계약증권·수익증권 장외거래중개업자 운영방안(소액투자자, 거래한도, 대상증권, 플랫폼 책임) ▲디지털 증권 시장 상장요건 및 공시의무(발행인, 발행규모, 공시, 지정자문인) 등이 핵심이다.

금융위는 STO 뼈대를 잡은 후 지난 19일 STO 허용 취지를 밝혔다. 이날 금융위는 ▲증권형 판단원칙 제시 ▲토큰 증권을 전자증권법상 증권의 디지털화 방식으로 수용 ▲일정 요건 하에 증권 토큰 단독 발행 ▲투자계약증권·수익증권의 장외 유통플랫폼 제도화 등이다. 나아가 금융위는 이달 STO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가이드라인은 증권성 판단이 필요한 디지털자산에 대해 자본시장 법규 적용 가능성을 안내해 이해관계인 등이 규제 적용 여부를 자율적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법 적용의 예측가능성을 제고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한편, 증권 토큰의 발행·유통 규율 방안을 안내하여 금융 혁신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됐다"고 밝혔다.

규제위와 긴밀하게 소통하는 업계 관계자는 "STO 가이드라인의 굵직한 뼈대는 대부분 확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중적 해석의 소지가 있거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손보는 정도의 논의가 이뤄지는 것으로 관측된다"고 전했다.

규제위원으로 참석하는 국내 전문가는 "다양한 검토가 이뤄지고 있지만 특별한 변동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가이드라인 발표 후 업계 소통을 통해 보완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3년 1월 12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예탁결제원이 작성한 ‘증권토큰(Security Token)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 문건 중 일부 발췌

업계는 특히 STO 거래 한도에 주목하고 있다. 증권은 채무증권, 지분증권, 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파생결합증권, 증권예탁증권 등 6가지로 구분된다. 금융당국은 이 중 투자계약증권과 수익증권의 경우 STO 수요가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본시장법에 투자계약증권과 수익증권의 장외거래중개업을 신설할 방침이다. 장외시장 유통은 증권사가 관리한다.

지난 2023년 1월 12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예탁결제원이 작성한 ‘증권토큰(Security Token)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 문건 중 일부 발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소액투자자는 증권발행총수의 5% 미만을 한도로 투자할 수 있다. 거래한도는 매수금액 합계를 기준으로 유통플랫폼별 1인당 연 1000만원이다. 거래 대상 증권은 증권신고서등을 제출한 공모발행 수익증권과 투자계약증권에 한한다.

증권가에서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이하 온투법)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STO 거래 플랫폼을 마련하려면 상당한 초기 비용이 들어가지만, 투자 한도가 낮아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온투법 상 일반 개인투자자는 업권 전체에서 3000만원까지 투자할 수 있다. 온투업계는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며 5000만원까지 투자 한도를 늘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당국은 STO 장외거래 인가 조건으로 현행 채권 장외거래 투자중개업 수준을 감안해 최소 30억원 이상의 자기자본과 일정 수준의 인적·물적 요건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증권형 토큰의 특성을 감안해 보안 요건을 추가로 요구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 기업 임원은 "STO 발행과 유통 주체가 분리되면서 증권사는 유통 수수료만 취할 수 있다. 게다가 거래 한도가 낮으면 STO 사업 효과는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STO 핵심 기능을 개발한 KB증권과 SK C&C는 최대 60억원, STO 플랫폼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신한투자증권과 람다256은 최대 50억원의 자금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 규모로는 최소 100억원의 자금이 들어가는 자체 메인넷 구축은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시장은 가상자산 자회사 설립을 추진했던 미래에셋그룹 규모의 기업이 STO플랫폼 구축에 전방위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한다. 지난해 미래에셋은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가상자산 자회사 설립에 약 200~400억원 가량을 투자할 계획을 세웠었다.

증권사 관계자는 "STO는 시스템 자동화로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진위여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쪼개기 투자 자체도 새로운데 여기에 토큰까지 붙이면 혁신은 배가 된다"며 "STO는 금융업계에서 증권사가 헤게모니를 가져갈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테크기업처럼 플랫폼 사업자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투자 대비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워 적지 않은 기업들이 사업 추진을 망설이고 있다. 결국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언급한 규제위원은 "정부는 사업 시행에 큰 의미를 두고 투자자 보호 강화에 맞춰 점진적으로 STO 규제를 완화할 것"이라며 "지난해 가상자산 사건사고가 많은 만큼 정부는 조심스럽게 제도를 추진하는 게 합당하다"고 말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