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아마존, MS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 플랫폼을 거머쥐고 있고,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해두고 있는 상황에서 동일한 전략을 추구하는 것은 명백한 비효율이다.

그보다는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보다 사업을 세계 최고로 만드는 기술이 중요하다"는 이현규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이하 IITP) 인공지능 PM(Program Manager)의 말에서 ‘다른 길’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즉, 특정 사업의 발전에 포커스를 맞춘 AI 기술이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이러한 방향대로 ‘인공지능 첨단 원천유망 기술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범용 AI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형 AI 연구개발을 통해 ‘한국만의 AI’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전세계가 AI 기술 발전에 몰두하고 이 시점에 ‘문제 해결형 AI’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이유에 대해 이현규 PM에게 자세히 들어봤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이하 IITP) 이현규 PM / 조상록 기자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이하 IITP) 이현규 PM / 조상록 기자
― 문제 해결형 AI와 범용 AI는 무엇이 다른가요.

"이제까지 AI 분야를 보면 언어지능, 시각지능, 학습지능 등 인간의 인지 기능과 연관된 AI에 개별적으로 접근하다가 최근에는 차세대 AI라 하는 범용 AI에 집중하고 있죠. 여기서 개발한 기술이 실제 원하는 결과를 보여주는지 실험하기 위해 연관 있는 산업 분야에 적용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R&D 형태였어요.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의 문제는 AI 기술을 해당 산업에 특화시키는 게 아니라 ‘한번 적용해봤다’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산업 전반적으로 디지털 전환이 추진되면서 AI 도입에 대한 니즈가 커지고 있는데, 앞서의 범용 AI로는 분명한 한계성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수한 AI 기술도 중요하지만 우리 기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AI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산업 분야에서의 트렌드는 일부러 범용성을 없애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범용 AI는 다양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우리 기업에 딱 맞는, 우리 기업만을 위한 AI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범용성 때문에 시스템도 커져야 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우리 기업의 딱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좁은 의미에서의 AI’를 선호합니다."

― 이제까지 범용 AI의 산업 적용이 잘 안 됐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AI 전문가와 산업 전문가가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AI 기술 개발자 관점에서는 산업에 적용시켜보려면 기업들의 실제 데이터가 필요한데, 기업은 데이터가 기밀이기 때문에 공개하지를 않습니다. 결국 데이터 없는 상황에서 AI 기술을 적용할 수 없으니 손놓게 되는 것이죠.

산업 관점에서는 AI를 도입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따라 애써 AI 전문가를 채용했는데 하는 일이 마땅히 없더라는 거에요. 알고보니 AI 전문가도 산업에 대해 너무 몰라 스스로 일을 찾지 못하고 산업 실무진도 AI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명확히 어떤 일을 지시해야 되는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정부에서도 기술을 우선 개발하자는 것보다 사용할 곳과 해결할 문제를 명확히 정해놓고 그것에 맞춰 기술을 개발하자는 방향을 더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 과기정통부에서도 지금 기술 패권 경쟁을 위해서 문제 해결에 접근했습니다.

보통은 산업에 AI를 적용한다고 하면 융합, 응용 이런 단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범용 AI 기술을 해당 산업에 융합하거나 응용하는 형태이기 때문일 겁니다. IITP에서 진행하려는사업도 산업에 특화된 AI 원천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문제 해결형 AI라고 볼 수 있는데요. 문제 해결형 AI의 장점은 적어도 해당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상용화 할 수 있고, 다른 산업 분야에서 비슷한 문제에 대해서도 변형을 통해 적용할 수 있다는 거에요. 설령 다른 데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 모델 구축부터 다시 해야되지만 분명한 건 이 전의 축적된 경험을 무시 못한다는 거죠."

― 말씀하신대로 산업 현장에서의 문제 해결에 목적을 두는 AI 원천기술 개발 사업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AI 기술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문제 해결형 AI’라고 하는 AI 원천기술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018년에 나온 알파고의 뒤를 잇는 인공지능 ‘알파폴드’는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AI 기술이죠. 이것도 AI 원천 기술이지 응용 기술이 아닙니다. 결국 AI 기술 발전의 배경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보는 겁니다. 우리는 산업체 적용만 들어가면 응용과 융합이라고 이름을 붙이다보니까 결국은 기술 발전의 기회가 부족해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깨는 걸 만들어보고자 했던 겁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질문에서 제기한 전세계의 AI 흐름인데요. 사실 인공지능 분야는 미국과 중국이 1, 2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한국, 영국, 일본, 독일 등 다른 국가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1, 2위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그 뒤로는 순위에 큰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결국 미국과 중국의 AI를 그대로 따라가는 전략보다는 한국만의 차별화 된 AI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는 데 있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한 한 분야에서라도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올라서자는 목표가 AI 원천기술 개발 사업의 추진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 다만 앞서 범용 AI의 한계성을 말씀한 것처럼 AI 원천기술 개발 사업도 AI 전문가와 산업 전문가의 시각 차이는 여전히 존재할 것 같습니다.

"성공 여부는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AI 전문가는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산업 전문가는 AI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결국 이 사업은 시작점이 산업에서 발생되는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두 집단의 적극적인 참여가 성공 여부를 결정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AI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산업 전문가까지도 R&D에 의무적으로 참석시키도록 했습니다. 산업 전문가는 자신의 기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노하우를 전수할 것입니다. 이런 형태로 문제 해결 솔루션이 만들어지면 굳이 정부가 나서서 상용화를 부추기지 않아도 해당 기업이 나서서 상용화 할 겁니다.

― 올해 추진하는 ‘문제 해결형 AI 원천기술 개발’ 사업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이번 ‘인공지능 첨단 원천유망 기술개발’ 사업은 공공 분야와 산업 분야로 나눠지는데요. 공공 분야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해 연구 성과 혁신 사례 발굴, 사회문제 해결, 공공서비스 개선 등을 추진하고, 산업 분야에서는 AI 기술을 활용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과제를 발굴 및 추진할 예정입니다.

공공 부문에서는 ▲개인 맞춤형 교육을 위한 과정중심평가 기술, 단백질 구조 예측을 위한 AI 개발과 응용이 선정됐고요. 산업 부분에서는 ▲이차전지 전해액 첨가제 성능 예측, 초격차 신품종 육종기간 단축 기술이 선정됐습니다. 그동안의 연구개발 과제들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라는 것이 주제에서부터 느껴지시죠.

이번 사업을 추진하면서 다양한 산업 관계자들을 만나봤는데 산업체의 80%가 실험시간을 단축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이번 사업에서 선정한 이차전지나 종자도 결국 더 좋은 배터리, 더 좋은 품종을 만들기 위한 실험 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죠."

― 끝으로 인공지능 분야 발전에 대해 조언하신다면.

"실제 적용할 수 있는 AI를 위한 산업 전문가와 AI 전문가의 협업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공지능 첨단 원천유망 기술개발’ 사업의 방향성이기도 합니다. 사실 단순히 산업 전문가와 AI 전문가의 협업이라는 환경 조성만으로는 추진되기 쉽지 않습니다.

산업 전문가라 할지라도 AI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정도 갖춰져 있어야 해당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데이터가 필요하고, AI를 통한 결과 도출이 어떤 형태인지를 그릴 수 있습니다. 물론 AI 전문가 또한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최근 기업들이 산업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빅데이터, AI 모델 등의 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미래형 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상록 기자 jsrok@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