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국방보다 중요한 공공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진행된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이같이 언급했다. 은행의 공적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현 정부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용자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은행이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은행은 엄연히 공공재는 아니다. 다만 대통령이 굳이 공공재라 일컬은 까닭은 국민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은행이 정부와 금융당국의 의도에 따라 금리와 수수료를 조정하고, 금융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 정책을 펼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노조가 30일 은행 영업시간 정상화에 대해 "사측의 일방적 영업시간 환원 시행은 명백한 노사합의 위반"이라는 입장을 냈다. 노조가 노사공동TF에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영업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9 TO 6) 점포 확대 ▲점포 입지에 따른 은행별·점포별 자율적인 영업시간 설정 등 대안을 제시했지만, 모든 제안이 거부되고 영업시간 정상화가 그대로 시행됐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이를 명백한 노사합의 위반이라 했다. 이에, "빠른 시일 내 경찰에 고소하고 권리침해 사실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되면 가처분을 신청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조의 주장은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우선 은행이 1년 반동안 영업시간을 단축한 채 운영하는 사이, 다른 영업장은 대부분 영업시간을 정상 수준으로 되돌린지 오래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됨에 따라 백화점, 영화관, 대형마트 등 여타 편의시설들은 단축했던 영업시간을 정상화했다.

무엇보다 줄어든 은행 영업시간에 따른 고객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직장인의 경우, 점심 시간을 이용하거나, 주요 업무의 경우 아예 연차나 반차를 써야하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은행은 퇴근하고 마음 편히 들를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최근 점포 수도 많이 줄어 혼잡시간대엔 대기 시간도 더 길어졌다.

한 직장인은 "오후 반차를 내고 갔더니 3시 30분이라 문을 닫아, 아예 한 번 더 연차를 내고 가야 했다"며 "영업시간을 늘리지는 못할망정, 코로나도 끝난 상황에 예전 영업시간을 고수하겠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고 호소한다.

아무리 디지털이 대세라지만 은행 점포를 이용해 업무를 봐야 하는 이들도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소외계층인 노년층은 동네 은행이 없으면 금융생활이 안된다. 지난해 통계청이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65살 이상 노년층이 온라인 거래만 이용하는 비율은 8%. 반대로 70% 이상이 지점 방문으로 은행업무를 봤다. 은행 영업시간 정상화가 절실한 이유다.

요즘 시중은행들은 이용자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그나마 남아있는 은행 오프라인 점포 운영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등 다양한 방법 마련을 위해 애쓴다. 최근 KB국민은행은 우수고객 일부에 제공하던 모바일 화상상담 서비스를 영업점 방문이 어려운 고객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직장인과 맞벌이 부부를 위한 영업시간 특화점포도 운영한다. 신한은행은 지난해부터 평일 저녁 8시까지,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화상상담 전용 창구를 통해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영업시간 1시간 되돌리는 것도 못하겠다는 노조의 생떼로 본의 아니게 손가락질을 받는 신세가 됐다.

금융노조는 국내 금융산업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금융의 ‘공공성’과 노동자의 권리를 바로 세우는 노동운동에 앞장 서는 곳"이라며 자신들의 정체성에도 공공성을 밝혀놓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뿐 아니라 무엇이 공공성을 챙기는 길일지, 한 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