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현 조폐공사 ICT사업이사

실물 화폐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신용카드, 모바일 결제는 전통시장까지 파고들었다.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해 종이지폐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종종 있어도 동전은 우리의 지갑에서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현금 없는 사회에서는 돈 만드는 일이 돈이 안된다. 이를 본업으로 하는 조폐공사에도 위기가 찾아온 것도 어쩔 수 없다. 화폐 제작 매출은 30% 밑으로 떨어졌다. 수익을 늘리고자 확대한 주민등록증과 여권 제작 사업 분야에는 엎친데 덮친격으로 코로나 위기가 찾아왔다. 조폐공사는 지난 2020년, 20여년만에 처음으로 140억원이라는 대규모 영업적자를 냈다.

변화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금을 쓰지 않는다면 ‘디지털 지갑’을 노리겠다는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 실물 신분증을 사용하지 않는다니 모바일 지갑에 들어갈 DID(분산신원인증)를 만들었다. 골드바, 메달 등 귀금속 수집이 줄어드니 디지털 수집 시장을 노려 NFT(대체불가능토큰) 시장에도 뛰어들겠다 한다.

조폐공사가 본격적으로 ICT 전환에 가속도를 붙인 건 지난 2021년이다. 지난 2019년부터 발행을 시작한 블록체인 기반 지역상품권 ‘착(Chak)’의 성과에 착안, 블록체인 기반의 보안・정품인증 기술을 중심으로 ICT 사업 부문을 개편했다. LG전자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 연구소 상무 출신인 임도현(사진) 조폐공사 ICT사업부문 이사가 합류한 것도 이때다. 인력과 사업 확대를 지속한 결과 2023년 기준 대전 조폐공사 직원 400여명중 ICT부문 인력만 80명이 넘는다.

신사업 확대의 효과는 금세 드러났다. 비상 경영 체제로 돌아서고 ICT 사업에 집중한지 1년 만인 지난해 조폐공사는 70억의 흑자를 냈다. 지역상품권 착은 가입자 200만명, 연간 발행금액 발행금액 2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발행을 시작한 ‘모바일 국가 신분증’은 반년만에 발행량 57만장을 달성했다.

임도현 이사는 "조폐공사라는 이름을 바꿔야 하나도 생각했다. 하지만 조폐공사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신뢰는 너무 강하다"며 "이제는 그 믿음을 발판으로 우리나라 디지털 세상에서의 신뢰를 구축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임 상무는 올해가 조폐공사 ICT 전환의 원년이 될 것이라 말했다. 수십년간 쌓아온 조폐공사의 기술과 노하우를 신뢰의 기술인 ‘블록체인’과 접목하는 것이 조폐공사의 디지털 전략이다. 제조업에서 ICT 사업으로의 변신을 꾀하며 저변을 넓혀가는 조폐공사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금이 ICT 전환의 적기라 강조했다. 이유가 무엇인가?

" ICT 전환은 시기가 정말 중요하다. LG전자 재직 시절 지금은 없어진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사업부에 있었다. 한때 LG 전자는 3G 폰 시장에서는 노키아를 제치기도 했다. 하지만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타이밍을 놓쳤다. 안드로이드 폰을 누가 선점하는지가 그렇게 중요했을 줄 누가 알았겠나. 이 때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조폐공사도 마찬가지다. 근간이 되는 사업, 화폐 제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체 매출의 25%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반면 모바일 신분증, 지역상품권은 다르다. 조폐공사의 새로운 매출이자 미래가 되고 있다. 지금 이 시기를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는 판단이 들었다."

― 조폐공사하면 화폐 만드는 곳이란 인식이 강하다. 본업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조폐공사의 기반은 제조업이었다. 주민등록증, 지역상품권, 우표, 각종 메달과 여권까지 조폐공사의 손을 거친다. ICT 전환의 핵심은 이러한 제조업 기반 산업들을 모두 디지털 기반로 바꾸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실물 신분증을 블록체인기반 DID로 발급하고 지류 상품권도 디지털화해 발행하고 있다."

― 사실 조폐공사가 디지털 전환을 한다 하면 CBDC(중앙은행발행디지털화폐) 발행이 먼저일 것이라 생각했다. CBDC 사업에는 참여하고 있나?

"CBDC는 한국은행의 연구 단계에 맞춰 준비 중이다. 조폐공사는 CBDC를 보관하는 카드형 콜드월렛(온라인에 연결되지 않는 디지털자산지갑)을 만들고 있다. 콜드월렛에는 현재 여권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COS(Cheap Operated System) 보안칩, 지문인식 기술이 들어갈 예정이다"

― 디지털 전환의 시작점이던 블록체인 기반 지역상품권 ‘착’은 10%라는 큰 할인율 덕에 호응이 대단하다. 사용하는 지자체도 늘고, 발행금액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발행은 지자체 예산으로 한다. 이제는 지자체에서 나서서 적극적으로 예산을 늘리고 있다. 작은 곳은 몇백억부터 수천억원을 책정한 곳도 있다. 현재 80여개 지자체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지방 소도시에서 특히 인기가 좋다. ‘착’은 공공기관이 진행하는 사업인 만큼, 모든 국민들에게 보편적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전국의 작은 섬 하나 하나까지 모든 플랫폼을 제공했다. "

― 모바일상품권, DID신분증 다음으로는 어떤 분야의 디지털 전환을 준비하나?

"NFT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KISA(인터넷진흥원) 과제로 ‘디지털자산 신뢰검증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NFT 부정 거래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조폐공사의 위변조방지 기술을 활용, NFT 마켓플레이스에서 거래되는 NFT의 진본성을 검증해 인증 도장을 찍어준다. 해당 사업을 하며 NFT 시장에서도 ‘신뢰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감했다. 이에 지난해 직접 공공기관이 발행한 검증된 NFT 마켓 구축을 구상했다."

― 어떤 NFT 사업을 진행하고 있나?

" 조폐공사는 지난해 라온화이트햇과 ‘옴니원 NFT 금 거래소'를 열었다. 실물 금과 가치 연동이 되는 NFT로, 조폐공사가 품질을 보증한다. 아직은 사이트 내 구매만 가능하나 연중 이용자들끼리 거래 가능한 2차 마켓도 열 예정이다.

이를 기반으로 민간기업과의 협업도 진행했다. 지난해 디지털아트 기업 ‘스마스월드’와 골드바 머지드(merged) NFT를 발행했다. 디지털아트에 골드바를 결합, NFT의 가치가 실물자산으로 보장되는 형태다. 또한 조폐공사가 발행하는 각종 기념 주화, 메달, 훈장도 NFT화를 준비하고 있다. "

옴니원 NFT 거래소 / 조폐공사
옴니원 NFT 거래소 / 조폐공사
― ‘옴니원 NFT’거래소에서 금 NFT를 구매하면 장점이 뭔가?

"보통 사람들은 투자, 보관 용도로 금을 산다고 하면 청계천에 가거나 동네 금은방에 가서 구매하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금을 구매하게 되면 금의 품질을 보증받기 힘들다. 매입할때는 잘 몰라도 이를 재판매 하게 되면 금의 품질을 속인 경우도 종종 있다.

조폐공사에서 판매하는 골드바는 품질이 인증된 순도 99.9%의 금이다. 금 NFT는 이를 디지털 소유권으로 만든 것이다. 품질이나 보안 측면에서 공공기관의 보증을 받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다."

― 일반적으로 투자 목적으로 금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높은 연령층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사람들에 NFT는 생소하고, 구매시 장벽도 어느정도 느껴질 것으로 보이는데?

"투자자산으로 실물 금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금융자산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은 분들이 많다. 이러한 분들도 공공기관이 발행한 금 NFT라고 하면 믿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구매 방식도 단순화했다. 복잡하게 가상자산 지갑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원화 계좌 이체 방식으로 NFT 구입이 가능해 일반 이용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 실물 금과 가격이 실시간으로 연동이 되나?

"기본적으로 현물 금 가격과 같은 가격으로 판매된다. 다만 시간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조폐공사의 금 현물거래는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3시 30분에 끝난다. 반면 NFT 거래소에서는 실물시장 마감 이후에도 매매가 가능해 이 때는 가격 반영이 되지 않는다. 장 마감과 개장 사이 시간에 NFT를 사게 되면 손해를 보거나 이득을 보는 등 가격차이가 다소 있을 수 있다."

― NFT를 사면 실제 금도 직접 받을 수 있나?

"받을 수 있다. 구매자가 NFT를 구매하면 조폐공사에서 해당 양 만큼의 금을 매입해 보관한다. 방문해 NFT로 구매한 수량만큼 수령할 수 있다. 하지만 금을 집에 두면 불안하지 않겠나? 조폐공사가 매입한 금은 화폐를 제조하는 경산 조폐창 금고에 보관하고 있으며 총 든 청원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조폐공사가 안전하게 관리해 드린다."


☞ 임도현 ICT 사업이사

부산대학교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1985년 삼성전자 IC Card팀으로 시작해 한솔PCS, 에릭슨코리아를 거쳤다. 2002년 LG전자 MC연구소 상무, 2014년 LG이노텍 상근자문을 역임했으며 지난 2021년 8월 조폐공사에 합류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