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에 다수 지분을 넘긴, 고팍스 창업자 이준행(사진) 대표가 스트리미(고팍스)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다. 2015년 스트리미 창업 이후 8년만이다.

이 대표는 대표 직함을 유지한채 당분간 경영활동에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번 이사직 사임으로 입지가 예전같지는 않을 거란 관측이다.

9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이준행 고팍스 대표는 지난 3일 스트리미(고팍스)의 등기이사에서 사임, 미등기임원 신분으로 고팍스의 전문경영인(CEO)을 맡을 예정이다.

고팍스는 지난해 자사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인 고파이의 운용사 제네시스 글로벌 캐피탈이 원리금 지급을 중단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고파이에 묶인 자금은 원금 기준 약 700억원 가량. 이에 바이낸스가 이달 초 고팍스와 바이낸스산업기금회복(IRI) 투자 계약을 맺고, 고파이 원리금을 상환해 주기로 했다.

매각가 약 1300억 추정…이준행 대표 지분가액 1천억 수준될 듯

고팍스 지분 과반을 확보한 바이낸스는 이 대표의 지분에 더해 다른 주주들의 지분을 일부 추가 취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2월 기준 고팍스 발행주식은 보통주와 우선주를 더해 총 83만3344주, 이중 이준행 대표 지분은 32만8346주로 전체의 39.4% 가량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지분만으로는 경영권을 가져갈 수 없어 다른 주주들의 지분 확보가 필수였을 것으로 보여진다.

고팍스(스트리미) 지분 구조 *2022년 12월 31일 기준
고팍스(스트리미) 지분 구조 *2022년 12월 31일 기준
최대주주인 이 대표 다음으로 높은 지분을 가진 것은 공동창업자인 공윤진 CTO와 박준상 CBO다. 그러나 지속적인 투자 유치로 창업자들의 지분은 크게 희석됐다. 지난해 고팍스에 자금을 투입한 KB인베스트먼트, JB우리캐피탈, Z벤처캐피탈등 또한 과반 지분을 확보하려는 바이낸스의 설득 대상이 됐을 거란 관측이다.

과반 지분 인수에 필요한 자금은 약 1300억원 가량, 이 대표의 지분가치는 1000억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고팍스는 지난해 5월, "기업가치 3700억원을 인정 받았다"고 밝혔으나, 지난해 말 2600억원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전북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취득한 지난해 중순 장부가 기준 주당 가격이 33만원대였지만, 지난해 말 공시에 따르면 블루포인트파트너스가 보유한 스트리미 지분 7453주의 장부가액은 23억3651만원 정도로 주당 31만3500원 정도다.

다만 바이낸스가 평가한 고팍스의 실제 시장가치는 장부가치와 다소 괴리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FTX 사태로 고파이 원리금 700억원이라는 부채가 더해졌으며, 전반적인 가상자산 시장의 불황으로 영업실적 또한 악화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에 바이낸스가 투입한 투자금은 실제 기업가치보다 밑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영권 보장, 언제까지 가능할까

바이낸스는 이 대표의 직위와 고팍스의 독립 경영을 당분간 보장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규제당국이 가상자산 시장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만큼, 경영안정화와 투자자 민심 회복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것으로 비춰진다.

고팍스 관계자는 "이 대표는 운영과 경영권을 내려놓는 것은 아니며, 등기이사직에서만 사임한 것"이라며 "이 이상은 아직은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1대 주주 오너에서, 전문경영인으로 후퇴한 상황에서 독립적 경영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지난달 기준 고팍스의 등기이사는 이 대표와 공동창업자인 박준상 CBO, KB인베스트먼트 이사인 박덕규 비상무이사 등 3명이다. 이달 초 임시주주총회 이후 바이낸스는 이 대표를 포함한 일부 이사진을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낸스가 고팍스를 발판으로 한국 진출을 노리는 만큼, 내부 인력으로 물갈이를 진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서 바이낸스는 지난해 일본 가상자산 거래소 사쿠라익스체인지(SEBC), 인도 토코크립토를 연이어 인수했다. 바이낸스는 인수 이후 기존 대표이사와 내부 직원을 바이낸스측 인사로 일부 교체한바 있다.

한편 고팍스는 지난 7일 고파이 예치 자산의 1차 출금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바이낸스는 이달 3일 바이낸스산업기금회복(IRI)을 통해 고팍스에 약 187억원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양사는 오는 3월까지 모든 행정 절차와 고파이 원리금 상환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