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동안 이어져온 소위 보툴리눔 톡신 균주 전쟁이 메디톡스 측의 일부승소로 마무리됐다. 대웅제약이 항소 의지를 보인 가운데 메디톡스는 자사 균주의 정당성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국내 보툴리눔 톡신 기업들과 대대적인 소송전을 준비할 것으로 관측된다.

대웅제약은 이번 민사 1심 공판이 지난해 결론난 형사재판 결과와 다르다는 점과 강제집행정지 신청을 통해 나보타 사업을 방어하는 전략을 내세우며 2심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웅제약(왼쪽)과 메디톡스 간 보툴리눔 톡신 균주 전쟁 여파가 업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 각 사 제공
대웅제약(왼쪽)과 메디톡스 간 보툴리눔 톡신 균주 전쟁 여파가 업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 각 사 제공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1부(부장판사 권오석)는 메디톡스가 대웅제약과 대웅을 상대로 낸 영업비밀 침해금지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하고, 대웅제약에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에 400억원을 지급하고, 대웅제약이 균주를 활용해 만든 완제품을 폐기하도록 했다. 또 대웅제약이 보툴리눔 균주 관련 제조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6년간 이어져온 공판…지난해 형사 재판과 다른 결론

이번 선고는 2017년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을 제소한 이후 6년만에 나오는 판결이다. 해당 소송은 메디톡스가 2017년 10월 서울중앙지법에 대웅제약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소송 주요 쟁점은 메디톡스의 전(前) 직원이 보툴리눔 균주와 제품 제조공정 기술문서를 훔쳐 대웅제약에 제공, 이를 통해 대웅제약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를 개발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2019년에는 싸움의 무대가 미국으로 넘어갔다. 메디톡스와 미국 파트너사 엘러간(현 애브비)은 대웅제약과 대웅 파트너사 에볼루스를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ITC는 2020년 12월 대웅제약의 제조공정 도용을 인정하면서 나보타의 미국 수입을 21개월 동안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지만, 메디톡스는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영업비밀성을 인정 받지 못했다.

이후 2021년 2월 메디톡스와 엘러간, 에볼루스가 ITC 소송 등 모든 지적 재산권 소송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합의 계약을 맺으면서 미국내 분쟁이 일단락 났다.

합의에 따라 대웅제약의 나보타는 아무런 제약 없이 미국 내 판매를 지속할 수 있게 됐으나, 나보타가 미국에 팔릴때 마다 메디톡스와 엘러간에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조건이 생겼다.

다시 국내로 전장을 옮긴 메디톡스는 2017년 당시 대웅제약이 업기술유출방지법 및 부정경쟁방지법을 위반했다며 형사 고소했으나, 검찰은 올해 2월 증거불충분으로 대웅제약에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

메디톡스, 업계 상대로 소송전 강화 가능성 높아…대웅 미래먹거리도 흔들

그러나 이번 민사재판부는 메디톡스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업계는 상당한 충격에 빠진 상태다. 당초 형사재판과 다르지 않은 결과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또한 메디톡스 측은 공식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을 토대로 정당한 권리보호 활동을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히며 국내 보툴리눔 톡신 업계 전체를 상대로한 소송전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이번 법원의 판결은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 등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과학적 증거로 내려진 명확한 판단이다"며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을 불법 취득해 상업화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법적 조치를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국내 대표 보툴리눔 톡신 생산 기업들은 자사 고유의 연구기술을 통해 독자적으로 제품을 개발해 왔다며, 이번 판결과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현재 메디톡스로부터 ITC 공방을 벌이고 있는 휴젤은 "2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독자적인 연구 및 개발과정을 인정받아 지금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왔다"며 "휴젤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개발시점과 경위, 제조공정 등이 문제가 없음이 분명하게 확인될 것이며, 메디톡스와 대웅제약간의 소송 결과는 미국에서 메디톡스와 진행 중인 당사 소송에 그 어떠한 장애도 될 수 없다"고 전했다.

국내용 리즈톡스와 수출용 휴톡스를 통해 보툴리눔 톡신 사업을 전개 중인 휴온스바이오파마 역시 메디톡스가 주장한 균주와 자사 균주는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알렸다.

휴온스 관계자는 "최근 보툴리눔 생산업체 간의 민사소송 관련, 휴온스바이오파마는 보유중인 균주의 전체 유전자서열 분석을 완료했다"며 "질병관리청은 전체 보툴리눔 균주 보유업체에 대한 조사시 균주 확보에 대한 경위, 균주 개발과정 및 보고서 등 모든 관련서류를 제출을 요구해 왔고, 그 결과 어떠한 이슈도 없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대웅, 강제집행정지 신청 통해 나보타 사수작전 돌입…형사판결 인용 2심 이끌 듯

대웅제약 입장은 다소 불리해졌다. 논쟁의 여지는 상당하지만 구체적인 배상 액수까지 명시된 재판을 뒤집기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 대웅제약이 생산한 보툴리눔 톡신에 대한 제조 금지 명령이 내려지면서 매출 전망에 큰 악영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나보타 매출은 1400억원으로 추정, 심지어 이익률이 50%에 육박하는 것에 달할 정도로 나보타는 대웅제약의 핵심 사업중 하나다. 지난해 대웅제약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 이상이 나보타에서 나왔다는 업계 추정도 존재한다.

게다가 나보타 연간 매출의 80% 가량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수출에서 창출됐다. 현재 나보타는 미국, 유럽을 비롯해 62개국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에 대웅제약은 이번 판결이 나보타 수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2심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선 대웅제약은 2021년 2월 미국 관계사 에볼루스가 메디톡스와 합의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한국 소송 결과와 관계없이 나보타 수출에는 지장이 없다는 주장이다.

대웅제약은 "합의 내용에 따르면 이번 민사 1심 결과와 상관없이 대웅제약이 나보타를 제조해 에볼루스에 수출할 수 있는 권리와 에볼루스가 제품을 계속 상업화할 수 있는 권리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대웅제약은 강제집행정지 신청으로 나보타 수출 전선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한편, 지난해 형사재판 당시 나온 결론을 토대로 2심 공판에 승부수를 던질 예정이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은 대웅제약 압수수색을 통해 메디톡스 고유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 기술이 대웅제약 측으로 유출됐다는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이번 민사 1심 판결문을 수령하는 즉시 강제집행정지 신청을 통해 나보타의 생산과 판매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한편 항소를 통해 상급심에서 1심의 명백한 오판을 바로잡겠다"며 "자체기술과 최고의 품질이 입증된 대한민국 대표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의 안정적인 성장을 통해 국익 창출과 동시에 K-바이오의 기술력을 지속적으로 전 세계에 알릴 것이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