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2022년 말 경기침체 여파로 50조원이 넘는 재고 자산을 보유하게 됐지만, ‘초격차’ 기술력을 위한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 역대 가장 많은 연구개발(R&D) 비용을 투입하며 다가오는 업황 반등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재고와 상관없이 미래성장 동력을 발굴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했다. /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전략을 점검했다. / 삼성전자
17일 삼성전자가 공시한 연결감사보고서를 보면, 삼성전자의 재고 자산은 2022년 말 기준 52조 1878억원으로 나타났다. 전년(41조 3844억원) 대비 20.7% 증가한 수준으로, 역대 최고치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가전제품과 반도체 수요 등이 감소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종류별로 보면 완성품(제품 및 상품) 재고가 16조 322억원으로 1년 전보다 4조원 정도 늘었다. 제조과정 중에 있는 제품인 반제품 및 재공품은 20조 775억원이다. 전년보다 7조원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원재료 및 저장품은 전년보다 7944억원 늘어난 14조 9792억원을 기록했다.

반도체 불황이 산업 전방위로 확산하면서 글로벌 기업들은 감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안정적인 재고 관리를 위해 일정 부분 감산이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관련해 삼성전자는 1월 말 실적발표 당시 생산라인 최적화를 통한 자연적 감산을 시사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작년 말 원자재 구매 비용도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공급망 불안 등으로 원재료와 물류비 등이 오른 탓이다. 2022년 말 삼성전자의 원재료 등 사용액 및 상품 매입액은 112조 5919억원으로 전년(95조 6254억원) 대비 16조 9665억원 증가했다.

전방위 산업 악화에도 삼성전자는 R&D 비용을 대폭 늘렸다. 작년 말 삼성전자가 R&D에 쓴 돈은 24조 9191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다. 전년보다 2조 3237억원 늘었다. 업황이 어려울수록 미래 기술에 투자를 늘려 다가올 업황 반등을 대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반도체 ‘초격차’ 확보를 지속적으로 주문한다. 그는 17일 방문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재 양성과 미래 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2025년 중순 가동 예정인 반도체 R&D 전용 라인을 포함해 2028년까지 연구단지 조성에 2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최근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서 20조원을 단기 차입하기로 한 것도 반도체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외에도 삼성전자는 판매비와 관리비를 포함한 급여, 복리후생비, 광고선전비, 운반비 등이 모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순매출액에서 중국 비중이 줄어든 점도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2021년 말 중국 순매출액이 45조 5714억원이었지만, 1년만에 10조원 가까이 줄어들며 35조 6257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미주 순매출액은 118조 9745억원으로 전년(97조 9038억원)보다 21.5% 늘었다. 작년 순매출액의 지역별 비중은 미주(39.37%), 유럽(16.64%), 아시아 및 아프리카 (16.11%), 국내(16.10%), 중국(11.79%) 순으로 나타났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