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디즈니컴퍼니 마블스튜디오가 OTT 디즈니 플러스에 공개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속도 조절에 나섰다. 밥 아이거 디즈니 CEO가 추진하는 수익성 개선을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서울 용산구 체험형 문화공간 ‘마블 : 더 리플렉션(MARVEL : the Reflection)’ 팝업 전시회 전경. / 뉴스1
지난해 서울 용산구 체험형 문화공간 ‘마블 : 더 리플렉션(MARVEL : the Reflection)’ 팝업 전시회 전경. / 뉴스1
17일 외신에 따르면 디즈니 플러스는 올해 공개 예정인 ‘왓 이프’ 시즌2, ‘아이언하트’, ‘에코’, ‘애거사: 코븐 오브 카오스’ 등의 드라마 공개 시점을 내년 이후로 미뤘다. 이에 올해 디즈니 플러스에는 ‘로키’ 시즌2, ‘시크릿 인베이전’만 공개될 전망이다.

케빈 파이기 마블스튜디오 사장은 "디즈니 플러스에서 MCU 작품 진행 속도를 늦춰 다양한 작품이 빛을 발할 기회를 주려고 한다"며 "작품 공개 간격을 늘리고 1년에 공개하는 작품 수를 줄이겠다"고 말했다.

업계는 케빈 파이기 사장의 설명은 핑계일 뿐 실상은 디즈니 플러스가 본격적인 수익성 개선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배우 몸값뿐 아니라 장르 특성상 다양한 시각효과(VFX)와 컴퓨터그래픽(CG) 작업 등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 공개를 늦춰 제작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디즈니 실적 개선이라는 임무를 맡고 CEO로 복귀한 밥 아이거 CEO가 여전히 외부세력으로 실적에 압박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배경이다.

실제 디즈니 플러스는 아이거 CEO 임명 전인 지난해 3분기 14억7000만달러(약 2조원)의 적자를 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배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4분기에는 손실을 10억5000만달러(약 1조3629억원)로 3분기보다 손실 폭을 줄였지만 여전히 10억달러(약 1조2991억원)가 넘는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적자가 큰 상황에서 디즈니가 무한정 투자하기는 어렵다"며 "디즈니뿐 아니라 다른 글로벌 OTT도 수익성 개선을 위해 콘텐츠 투자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입자가 급격하게 늘어날 가능성이 적어 콘텐츠 확보·공개를 통한 가입자 확대보다 기존 가입자 이탈 방지에 집중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반면 MCU 작품의 공개 속도 조절이 디즈니에 자충수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MCU 작품 공개 간격 증가가 디즈니 플러스 이용자 이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MCU는 디즈니, 픽사, 스타워즈 등과 함께 디즈니 플러스 내 핵심 콘텐츠 브랜드로 꼽힌다.

다만 디즈니 역시 이런 점을 알기 때문에 디즈니가 다소 무리임에도 수익성 개선 실험을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디즈니가 속도 조절로 이탈할 이용자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아낄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디즈니 플러스가 글로벌 가입자를 넷플릭스 급으로 확보했기 때문에 콘텐츠 공개 속도를 조절해도 실제로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다"라며 "만약 디즈니 생각보다 많은 가입자가 이탈하면 공개 속도를 빠르게 바꾸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적자를 감수하는 투자는 성장한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며 "국내 OTT는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넷플릭스 국내 MAU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 확장 여지가 많으니 적자를 보면서도 투자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