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돈잔치로 국민의 위화감이 생겨서는 안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 한 마디에 금융권이 안절부절이다.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지난해 또 한 번의 사상최대 실적을 경신한 가운데, ‘금리장사로 돈 벌어 국민을 힘들게 한다’는 대통령의 인식에 은행들은 졸지에 공공의 적이 됐다. 대형은행을 안고 있는 금융지주들은 어떻게, 얼마나, 어디에서 그렇게 돈을 많이 번걸까? 작년 실적을 한 번 파헤쳐 봤다. [편집자주]

‘18조원’

작년 한 해 신한과 KB,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사가 1년 동안 벌어들인 순이익의 합이다. 역대급 실적이지만, 금리상승기 너무 손쉽게 돈 번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의 표적이 됐다.

하지만 4분기만 놓고 보면 마냥 웃을 수도, 그렇다고 울 수도 없다. 시장 예상치에 못미친 어닝쇼크라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4분기는 한 해를 마감하며, 다음해 실적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기. 그만큼 4분기 실적이 나쁘다는 건 실적호조가 계속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인위적인 어닝쇼크 아니냐는 진단도 있어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서울 시내의 시중은행 ATM기기의 모습. / 뉴스1
서울 시내의 시중은행 ATM기기의 모습. / 뉴스1
4분기 5대 금융지주, 순익 전년 대비 19.3% 줄어 ‘어닝쇼크’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5대 금융지주가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은 총 2조2558억원이다. 전년 같은 기간 2조7987억원 대비 19.3% 감소한 수치다. 시장 전망치를 하회한 어닝쇼크다.

지난 한 해 동안 4조4000억원대의 순익을 올린 KB금융지주는 4분기에는 3854억원에 그쳐 전년 같은 기간 6372억원보다 39.5%나 줄었다. 금액으로 봤을 때, 5대 지주 중 감소폭이 가장 크다. KB금융은 임직원의 희망퇴직 비용과 보수적 미래경기전망을 반영한 선제적 대손충당금 적립 등 일회성 비용 증가를 원인으로 꼽았다.

신한금융그룹은 같은 기간 순익 3269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4598억원 대비 28.9% 감소했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4조6423억원의 순익으로 업계 1위 KB를 누르고 리딩뱅크의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4분기만 놓고 보면 리딩뱅크에 걸맞는 수준은 아니다. 투자상품 관련 고객보상 비용인식과 경기 대응을 위한 선제적 충당금적립 등 역시 일회성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4분기 금융그룹 전체 연결 순익 7763억원으로, 전년 동기 8445억원 대비 8% 가량 감소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비용과 해외법인 등의 추가 충당금 전입액 규모가 2472억원으로 크게 늘어난데 따른 영향이다. NH농협금융은 같은 기간 순익 2592억원을 거둬 전년 동기 4672억원 대비 44.5% 감소했다.

반면 우리금융은 유일하게 4분기 개선된 실적을 냈다. 지난해 4분기 순익 5080억원을 달성, 전년 동기 3900억원 대비 30.2% 증가했다. 다른 금융지주사와 달리 보험이나 증권사가 없는 우리금융의 사업구조가 4분기 실적을 가른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과도한 충당금 설정 부담도 덜어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아해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명예퇴직비용이 1620억원이 발생했음에도 불구, 견조한 이자이익 증가세가 지속됐고, 사업구조 특성 상 상대적으로 적은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경쟁 금융지주 대비 비은행 자회사의 이익 기여도가 적다"며 "환평가이익이 반영돼 기타비이자 이익이 양호한 수준을 시현했다"고 설명했다.


5대 금융지주의 2022년 누적당기순이익과 2022년·2021년 4분기 당기순이익 비교. / 각 사
5대 금융지주의 2022년 누적당기순이익과 2022년·2021년 4분기 당기순이익 비교. / 각 사
"4분기, 경기악화 대비 위한 선제적 대손충당금 적립"

금융지주들은 지난해 4분기 실적이 부진했던 공통 요인으로 예상치를 웃도는 ‘대손충당금' 적립을 꼽았다. 대손충당금은 대출이 손실될 경우를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적립금이다. 많이 적립하면 지불 비용이 늘어 결국 실적 하락으로 이어진다.

특히 KB·신한은 지난해 4분기에만 전년 대비 약 2배에 가까운 금액을 대손충당금으로 적립했다.

KB금융은 1조603억원으로, 금융지주 중 최대 금액을 기록했다. 이 같이 적립액이 대폭 증가했음에도 불구, KB금융은 올해도 대손충당금 적립액을 늘릴 계획이다. KB금융 관계자는 "경기침체 지속에 따른 산업영향을 고려해 연간 약 8110억원 규모의 추가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겠다"고 했다.

신한금융의 지난해 4분기 대손충당금은 4533억원으로, 이 중 은행 대손충당금이 2174억원으로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차지했다.

금융지주가 지난해 대손충당금을 대폭 적립한 이유는 계속되는 고금리·고물가로 인한 자산건전성 악화 우려에 있다. 이에 선제적으로 대손충당금을 적립해 잠재적 리스크 증가에 대비한 손실흡수능력을 키우고자 한 것.

여기에 금융당국의 지적도 한몫했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금융권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대손충당금 적립 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꾸준히 말해왔다. 금리가 인상하면서 가계대출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상승할 것을 우려해 리스크에 대비하라는 압박이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