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규모의 이자이익에 비해 5대 금융지주의 비이자이익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금액으로 따지면 비록 10조원에 육박하는 규모지만 총 영업이익의 15% 수준에 그쳐 수익다각화는 공염불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금융사들은 증권시장 부진과 금리상승에 따른 저조한 운용수익, 그리고 규제완화 수혜를 받고 있는 빅테크 금융과의 불공정한 경쟁 구도 등을 탓한다. 하지만 소비자가 만족할만한 금융상품이 아직 부족하고, 폭넓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고품질의 자산관리 서비스 등을 충분히 내놓고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 정부와 금융당국은 이들 금융사에 "이자장사를 멈추고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올해 금융지주사들이 대출이자를 낮추는 대신, 수수료 이익을 늘리고 비은행 사업 확장에도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서울 시내 한 건물에 설치된 은행의 현금인출기(ATM)에서 시민들이 입출금을 하는 모습. / 뉴스1
서울 시내 한 건물에 설치된 은행의 현금인출기(ATM)에서 시민들이 입출금을 하는 모습. / 뉴스1
줄어든 비이자이익…3분의 1토막 난 NH농협·우리금융 선방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5대 금융지주(신한·KB·하나·우리·NH농협)의 비이자이익은 9조3876억원으로 총 영업이익 57조8364억원의 16.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지주 중에서는 KB금융의 비이자이익이 3조6312억원으로 규모면에서 가장 많았다. 영업이익 대비 비중을 봐도 금융지주사중 유일하게 20%대를 기록했다. 허나 이 역시 전년 4조9106억원보다는 26.1% 감소한 수준. 기타영업손익이 2021년 1조2850억원에서 지난해 3096억원으로 75.9%나 줄어든데 따른 것이다.

수수료 장사도 안됐다. 지난해 수수료 수익은 3조3216억원으로 전년 대비 8.4% 감소했다. 신탁이익(20.3%)·펀드판매 등 증권대행수수료(28.6%)·증권업수입수수료(28.7%)가 감소한 이유가 크다. 실제 그룹 수수료이익 추이에서 2위를 차지하는 KB증권의 수수료이익이 전년 1조150억원 대비 22.6% 감소한 7850억원이 됐다.

지난해 가장 많은 순이익을 올려 리딩뱅크로 우뚝 선 신한금융도 비이자이익이 감소세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비이자이익은 2조5315억원으로 전년 3조6382억원 대비 30.4% 줄었다.

사유는 KB와 대동소이하다. 수수료이익의 경우 2조5256억원으로 전년 2조6750억원 대비 5.6% 감소했다. 증권수탁 수수료가 44.6%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감소 원인은 주식 거래대금이 큰폭으로 감소한 데 있다. 신한금융은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유가증권 손익 감소와 더불어, 자본시장 및 부동산 시장 악화에 따른 관련 수수료 감소 등의 영향"이라고 밝혔다.

하나금융의 비이자이익도 1조4182억원으로 전년 1조7770억원 대비 20.2% 감소했다. 매매평가익이 27.8% 감소했고, 기타 영업이익이 2021년에 이어 적자를 기록한 데 따른 결과다. 수수료이익은 1조7445억원으로 전년 대비 6.4% 감소했다. 수수료이익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산관리 관련 수수료가 감소한 원인이 가장 큰데, 해당 수수료 중 증권중개수수료가 2021년 2315억원에서 지난해 1310억원으로 43.4%나 줄었다.

우리금융은 그나마 선방한 축에 속한다. 지난해 비이자이익이 1조1490억원으로 전년보다 2000억원 정도 줄어드는데 그쳤다. 내용도 나쁘지 않다. 수수료이익이 5대 금융지주 중 유일하게 증가했다. 지난해 1조7100억원을 수수료로 벌어 전년보다 16.2% 늘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유가증권 관련익 감소에도, 신탁, 리스(캐피탈) 관련 영업부문이 호조였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외환·파생 이익 또한 증가했는데, 7750억원으로 전년 4400억원 대비 껑충 뛰었다.

NH농협금융은 이자장사 외에는 사실상 공쳤다고 봐도 무방하다. NH농협금융의 비이자이익은 6577억원으로 전년 1조7314억원의 3분의 1수준이다. 수수료 수익은 20% 넘게 줄었다. 특히 증권업 수수료이익이 지난해 9850억원으로 전년 1조3673억원 대비 27.9% 감소했다. 여기에 기타영업이익에서 7810억원 손실을 낸 부분은 뼈아프다. 전체 영업이익에서 이자이익을 빼면 결국 사실상 적자이기 때문이다.

NH농협금융도 이러한 부분을 인식, 실적발표 당일 "경기둔화에 따른 잠재적 부실자산에 대한 리스크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업권별 핵심사업 집중 추진을 통한 시장경쟁력 제고와 신 사업을 발굴해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그룹 수익성과 성장성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으로 자산관리(WM), 디지털, 글로벌 부문 강화를 통해 수익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5대 금융지주의 2022년 총 영업이익에서 비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 / 각 사
5대 금융지주의 2022년 총 영업이익에서 비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 / 각 사
금융당국도 "비이자이익 늘려라"…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금융당국도 이런 상황을 가만히 보아 넘길 뜻이 없다. 대형 금융사의 이자이익 중심의 경영을 꼬집으며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를 재촉하고 나섰다. 당국은 은행권의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출범, 주요 과제 중 하나로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를 내세웠다. 비이자이익은 크게 ▲수수료이익 ▲유가증권이익 ▲외환파생이익 ▲기타이익 정도로 구성된다.

하지만 금융지주사가 대형은행을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는 현 구조 상에서 비이자이익을 늘리기엔 구조적으로 여러 한계점이 존재한다. 수수료 수익이 우선 손쉽게 꼽히지만, 눈치봐야 할 것이 많아 당장 올리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이자이익에서 ATM 수수료 등을 포함한 수수료이익 비중은 20%도 되지 않을 뿐더러 늘리기도 힘들다"며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국민 정서나 시각 자체가 수수료 이익 증대를 용인하는 문화가 아니다"라고 했다.

유가증권이익의 경우 변동성이 심해 안정적 수입원이라 할 수 없으므로, 글로벌 은행들도 힘을 쏟지 않는다. 외환파생이익은 최근 핀테크 기업의 약진으로 경쟁에 뛰어들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PF, 부동산 등을 포함한 기타 수수료에 집중해야 하지만, 여기엔 정책당국의 제약이 따른다.

앞서 금융권은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을 통해 비은행을 중심의 수익구조 확보 방책을 검토하고 있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당국에 금산분리 완화 기조에 따라 통신·배달·유통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신사업을 펼칠 전망이다.

김우진 연구위원은 "지주사가 중심이 돼 비은행 자회사의 역량을 강화해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수단으로 비이자이익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현재 지주사들의 운영 방식을 보면 비은행 부문을 다 갖춰 놓은 상태지만 사이즈가 작고, 영업이익도 크지 않다"며 "증권, 보험, 핀테크 등을 자회사로 둬서 생기는 이익을 늘리는 게 좋다고 본다"고 했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