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ICT 축제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이 4일 간의 일정을 끝으로 2일(현지시각) 막을 내린다. 200개국에서 온 2000개 이상 기업들은 인공지능(AI)과 5G, 로봇, 메타버스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더 선명해진 밑그림을 그리며 10만명에 육박하는 인파를 맞이했다.

'내일의 기술을 실현하는 오늘의 속도(Velocity)'를 주제로 열린 MWC 2023에서는 현장을 처음 찾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국내 경영진이 총출동했다. 1월 CES 2023에 대부분 불참한 중국 기업은 울분을 날리듯 전시장을 가득채웠고 모바일과 AI 분야에서 기술력을 과시했다. ‘망 이용대가’를 놓고 벌이는 유럽연합(EU)·이통사 측과 빅테크를 대표하는 넷플릭스의 논쟁도 화두가 됐다.

세계 최대 ICT 축제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이 4일 간의 일정을 끝으로 2일(현지시각) 막을 내린다. 사진은 삼성전자, SKT,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있는 3홀 모습. / 이광영 기자
세계 최대 ICT 축제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이 4일 간의 일정을 끝으로 2일(현지시각) 막을 내린다. 사진은 삼성전자, SKT,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있는 3홀 모습. / 이광영 기자
챗GPT가 부른 AI 열풍, MWC에서도 후끈

전시장에는 ‘챗GPT’ 열풍을 실감하듯 AI 기술을 강조한 기업이 많았다.

SKT는 ▲초거대 AI모델 에이닷 ▲AI의 두뇌 역할을 하는 AI 반도체 사피온 ▲로봇, 보안, 미디어, 의료 등 다양한 영역에 적용된 Vision AI ▲스마트 시티 및 교통 영역에 활용 가능한 위치 AI 솔루션 LITMUS ▲반려동물의 X-ray 진단을 돕는 메디컬 AI ‘엑스칼리버’ 등 사회를 진화시키고 있는 기술 등 총 10종의 AI 기술을 전시했다.

특히 과거에 입력된 정보를 기억해 대화하는 장기 기억 기술 및 멀티모달 AI를 탑재하게 될 ‘에이닷’과 사진, 영상 등의 화질을 개선하는 ‘슈퍼노바’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앱 ‘매직터치’를 선보인 사피온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SK텔레콤이 도심항공교통(UAM) 모형을 시연하는 모습 / 이광영 기자
SK텔레콤이 도심항공교통(UAM) 모형을 시연하는 모습 / 이광영 기자
KT는 초거대 AI ‘믿음’을 소개하고 KT와 AI 풀스택 전략을 함께 추진 중인 ‘리벨리온’의 AI 반도체 제작 기술과 ‘모레’의 AI 인프라 솔루션을 선보였다.

AI 기반 물류 솔루션 ‘리스포(LIS'FO)’와 ‘리스코(LIS'CO)’를 시연하는 한편 로봇 통합 플랫폼과 냉·온장 배송 로봇도 소개했다. K팝에 맞춰 춤을 추면 AI가 평가해주는 ‘메타댄스’에도 많은 관람객이 몰렸다.

오픈AI에 12조원을 투자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도 MWC에 자리를 잡았다. MS는 최근 자사 검색 포털 ‘빙’에 챗GPT를 적용했다. 또 음성 인식 AI ‘뉴언스’와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 이용 기업을 지원하는 데이터 분석 및 기업 운영 솔루션을 제시했다.

4년 만에 MWC에 복귀한 한컴은 한컴오피스에 적용한 AI 기반 OCR(이미지 문자 변환) 기술과 AI 기반 챗봇 등을 소개했다.

퀄컴과 스페인 이통사 텔레포니카, 글로벌 장비업체 에릭슨이 ‘MWC 2023’에서 함께 시연한 5G 초고주파 상용 서비스의 다운로드 속도가 최고 2.7Gbps를 기록했다. / 이광영 기자
퀄컴과 스페인 이통사 텔레포니카, 글로벌 장비업체 에릭슨이 ‘MWC 2023’에서 함께 시연한 5G 초고주파 상용 서비스의 다운로드 속도가 최고 2.7Gbps를 기록했다. / 이광영 기자
오늘의 5G와 내일의 6G

통신 기업들은 차세대 5G와 미래의 6G까지 아우르는 기술을 선보였다.

퀄컴은 차세대 5G 기술인 ‘5G 어드밴스드’를 세계 최초로 지원하는 ‘스냅드래곤 X75’을 전시했다. 퀄컴은 특히 스페인 이통사 텔레포니카, 글로벌 장비업체 에릭슨과 5G 초고대역 주파수(밀리미터웨이브·㎜Wave) 상용 서비스를 시연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전시 기간 중 5G 초고주파 다운로드 속도는 최고 2.7Gbps를 기록했다.

화웨이는 MWC에서 10Gbps(초당 10기가비트) 속도를 내는 5.5G 서비스를 2025년부터 상용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테라헤르츠(㎔) 대역을 활용해 위성 네트워크로 영역을 확장하는 등 6G 비전의 방향성도 시연했다.

2월 27일(현지시각) 개막한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에서 화웨이 관계자가 5.5G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 이광영 기자
2월 27일(현지시각) 개막한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에서 화웨이 관계자가 5.5G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 이광영 기자
노키아는 안테나 장비를 부스에 직접 설치하고 6G 네트워크를 구현했다. NTT도코모도 6G 핵심 기술인 센싱결합 통신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MWC 현장에서 프라이빗 부스를 통해 기존보다 고도화한 5G 네트워크 기술을 공개했다. 신규 칩셋을 적용한 삼성전자의 5G 기지국은 기존 장비보다 데이터 처리 용량이 약 2배 늘어나면서도 전력은 40%쯤 절감할 수 있다.

6G 시대의 핵심 기술인 '오픈랜'(Open-RAN)도 통신기업 사이에 화두였다. 오픈랜은 서로 다른 제조사가 만든 통신 장비를 상호 연동할 수 있는 표준화 기술이다.

최태원 회장이 SK텔레콤의 AI반도체 ‘사피온 X220’을 들어보이고 있다. / SK텔레콤
최태원 회장이 SK텔레콤의 AI반도체 ‘사피온 X220’을 들어보이고 있다. / SK텔레콤
삼성·SK 등 국내 경영진 총출동…KT 구현모 ‘라스트댄스’

삼성·SK를 중심으로 최태원, 박정호, 한종희, 유영상, 경계현, 최주선 등 최고경영진도 대거 MWC를 찾았다.

최태원 SK 회장은 인류와 사회에 기여하는 AI를 지향하겠다는 철학도 공유했다. SK텔레콤과 함께 ‘K-AI 얼라이언스’에 참여 중인 7개 회사 대표들의 서비스 설명에도 귀 기울이며, 향후 AI 생태계 협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구현모 KT 대표가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 둘째 날인 2월 28일 오후(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 그란 비아 전시장에서 '협업(Co-Creation)을 위한 시간인가?'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뉴스1
구현모 KT 대표가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 둘째 날인 2월 28일 오후(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 그란 비아 전시장에서 '협업(Co-Creation)을 위한 시간인가?'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뉴스1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은 바르셀로나 현지에서 글로벌 투자회사 EQT에 SK쉴더스 지분 일부를 넘기며 SK쉴더스의 공동경영을 선언했다. 유영상 SKT 사장은 국내 및 한국계 AI 스타트업을 결집한 'K-AI 얼라이언스'를 구축을 알렸고, 에이닷을 앞세운 산업과 사회 전 영역의 ‘AI 대전환’을 선언했다.

KT 대표 연임 도전을 포기한 구현모 대표의 마지막 공식석상도 관심을 끌었다. 구 대표는 2월 28일(현지시각) '협업을 위한 시간인가'를 주제로 한 기조연설에서 '디지코'로 대표되는 디지털 전환 성과를 소개했다. 그는 취재진에게 "디지코 KT를 계속 응원해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2월 27일(현지시각) 개막한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 화웨이 부스 입구 전경 / 이광영 기자
2월 27일(현지시각) 개막한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 화웨이 부스 입구 전경 / 이광영 기자
中기업 MWC 총공세…갤럭시Z 따라잡기 나서

전시장을 꽉 채운 ‘대륙의 공세’도 매서웠다. 화웨이는 1번홀에서 삼성전자의 5배가 넘는 9000㎡ 규모의 부스를 마련하며 존재감을 뽐냈다.

중국 기업은 스마트폰에서 물량 공세를 펼쳤다. 삼성전자 ‘갤럭시Z’ 시리즈에 맞대응하는 다양한 폴더블폰을 선보인 것이 특징이다.

▲퀄컴과 스페인 이통사 텔레포니카, 글로벌 장비업체 에릭슨이 ‘MWC 2023’에서 함께 시연한 5G 초고주파 상용 서비스의 다운로드 속도가 최고 2.7Gbps를 기록했다. / 이광영 기자
화웨이는 바깥쪽으로 접는 ‘아웃폴딩’ 방식의 ‘메이트Xs2’를 전시했다. 화웨이 자회사 아너는 양옆으로 여닫는 갤럭시Z폴드 시리즈와 유사한 ‘매직Vs’를 출시했다. 샤오미는 바형 플래그십 모델 ‘샤오미13’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믹스폴드2’도 소개했다. 오포도 삼성 갤럭시Z플립 시리즈와 유사한 클램셀(조개껍데기 디자인) 방식의 폴더블폰 '파인드 N2 플립'을 선보였다. 레노버 자회사인 모토로라, 테크노 등도 폴더블폰을 선보였다.

중국 제조사들은 XR 기기 신제품도 잇따라 공개했다. 샤오미는 스냅드래곤 XR2 플랫폼을 장착한 무선 증강현실(AR) 글라스 디스커버리 에디션을 발표했다. 오포도 스냅드래곤8 2세대를 내장한 혼합현실(MR) 기기를 선보였다. ZTE는 누비아 네오비전 AR 글라스를 내놨다.

중국 오포의 폴더블폰 '파인드 N2 플립' / 이광영 기자
중국 오포의 폴더블폰 '파인드 N2 플립' / 이광영 기자
‘어퍼컷’ 기대했는데 ‘잽’ 던진 EU…"대가 NO" 목소리 높인 넷플릭스

망 이용대가를 놓고 통신사(ISP)와 콘텐츠 사업자(CP) 간 펼쳐질 논쟁도 MWC의 화두였다.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랐다. 이번 이슈는 전시 기간 중 민감한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빅테크에 망 이용 대가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유럽연합(EU) 측이 강경하거나 급진적인 태도 대신 통신 사업자와 콘텐츠 제공 사업자 간 양자택일에 신중해야 한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티에리 브르통 EU 내무시장 담당 집행위원은 2월 27일(기조연설)에서 "통신 인프라에 드는 막대한 투자를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한 자금 조달 모델을 찾아야 할 것이다"라면서도 "네트워크 제공자와 트래픽 공급자 사이에 이분법적인 선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퀄컴과 스페인 이통사 텔레포니카, 글로벌 장비업체 에릭슨이 ‘MWC 2023’에서 함께 시연한 5G 초고주파 상용 서비스의 다운로드 속도가 최고 2.7Gbps를 기록했다. / 이광영 기자
퀄컴과 스페인 이통사 텔레포니카, 글로벌 장비업체 에릭슨이 ‘MWC 2023’에서 함께 시연한 5G 초고주파 상용 서비스의 다운로드 속도가 최고 2.7Gbps를 기록했다. / 이광영 기자
로이터 통신은 이 발언을 두고 "EU 산업 수장이 거대 통신사를 빅테크보다 선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넷플릭스는 빅테크에 망 이용 대가를 부과해선 안 된다는 논리를 더욱 확산시켰다. 그레그 피터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2월 28일 기조연설에서 브르통 집행위원의 발언에 공감하며 "지난 5년간 매출 절반에 달하는 600억달러(79조원) 이상을 콘텐츠에 투자했고, 이는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인터넷 서비스를 원하게 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라는) 이중 과금 움직임은 콘텐츠에 대한 투자 감소, 창작 저하로 이어져 고가의 통신사 요금제가 가진 매력을 반감시킴과 동시에 소비자 피해를 초래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그렉 피터스(Greg Peters)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 책임자(CEO)가 2월 28일 오후(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 그란 비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 전시장에서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뉴스1
그렉 피터스(Greg Peters)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 책임자(CEO)가 2월 28일 오후(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 그란 비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3) 전시장에서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뉴스1
국내 통신 관련 CEO들은 빅테크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은 "팀 회트게스 도이치텔레콤 CEO와 미팅을 하며 유럽 통신사가 망 이용대가 논의에 진지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모든 CP가 망 이용대가를 내라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인터넷 생태계와 다른 CP를 위해서 초거대 CP들이 망 이용대가 분담을 같이하도록 유도하는 게 세계 통신사들의 목표다"라고 설명했다.

유영상 SKT 사장도 "CP와 ISP가 어떻게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지, 힘의 논리가 아닌 공정성(Fareness)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르셀로나=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