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AI 반도체 회사 ‘사피온’이 2024년 출시하는 신제품 생산을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맡긴다. 삼성전자가 사피온이 개발한 AI 반도체 생산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6일 사피온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사피온은 내년 출시하는 자율주행 전용 AI 반도체 ‘X340’을 삼성전자 파운드리 7나노 공정으로 생산한다.

류수정 사피온 대표 / 사피온
류수정 사피온 대표 / 사피온
사피온은 앞서 출시한 ‘X220’을 TSMC 28나노 공정으로 만들었다.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X330’도 TSMC의 7나노 공정으로 생산할 예정이다. 하지만 내년 내놓을 X340은 삼성전자에 맡긴다. 사피온의 AI 반도체를 대만 TSMC 공정 만으로 생산한다는 공식을 깼다.

사피온 고위 관계자는 "X340 위탁생산은 삼성전자가 확정적이다"라며 "파운드리 한 곳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 특성에 따라 파트너사를 달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사피온 공급선 합류는 반도체 ‘디자인하우스’ 파트너의 변화와도 관련이 깊다.

디자인하우스는 사피온과 같은 ‘팹리스(설계회사)’가 만든 설계도를 바탕으로 반도체를 제작하는 파운드리 공정에 맞춰 각종 기술을 지원하는 기업이다. 칩 설계와 칩 제조의 중간다리 역할이다.

사피온은 X340 출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TSMC와 함께하는 디자인하우스가 아닌 삼성전자와 협력 중인 디자인하우스와 손을 잡았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가 자연스레 X340 위탁생산을 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공급선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사피온의 판단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는 최근 자율주행 차량용 반도체 공정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며 사피온의 신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2월 미국 AI 반도체 기업 '암바렐라(Ambarella)'와 협력해 최신 SoC(System on Chip) 'CV3-AD685'를 5나노 공정에서 생산한다고 밝혔다. 암바렐라는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고성능 저전력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는 반도체 팹리스다.

사피온 AI 반도체 ‘X220’ / 사피온
사피온 AI 반도체 ‘X220’ / 사피온
반도체 업계에서는 사피온이 사실상 공급선 다변화를 선언하면서 후속 제품인 X350과 X430(2025년)에서도 삼성전자와 TSMC의 치열한 수주전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한다.

사피온은 SK텔레콤과 SK스퀘어, SK하이닉스 등 3개 회사가 투자해 설립한 팹리스다. 2021년 SK텔레콤에서 분사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가 있으며 판교에 사피온코리아를 뒀다.

‘국산 AI 반도체’ 고도화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정책 목표와 달리 사피온은 본사를 미국에 둔 동시에 위탁생산은 대만 TSMC에 맡겨 ‘무늬만 국산’이라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반도체 업계는 SK가 첫 AI 반도체 제품인 사피온에 사활을 건 만큼, 시장점유율 50%가 넘는 파운드리 1위 TSMC에 생산을 맡긴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