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 웹소설 작가는 자신의 몸을 갈아 일하고 있습니다. 플랫폼과 작가 간 권력 구조가 플랫폼 쪽으로 기울며 불균형이 발생해서 그렇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줘야 합니다."(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위원장)

"작가 10명이 모이면 9명이 암 환자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옵니다. 작가의 육체적·정신적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말입니다. 정부와 업계 양쪽에서 모두 작가를 보호해줘야 합니다. 한 작가는 제작사(CP사)에 내년에 결혼한다고 했더니 연재하는 동안 임신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육아휴가처럼 육아휴재를 하면 장기휴재를 보장할 수 없다거나 작가를 교체하겠다는 말까지 듣고 있습니다."(이수경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지회장)

웹툰작가 노동환경 실태와 건강문제 관련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변인호 기자
웹툰작가 노동환경 실태와 건강문제 관련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변인호 기자
이는 창작자 노동조합과 전문가,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가 7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간담회실에서 ‘웹툰작가 노동환경 실태와 건강문제’ 관련 연구를 발표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한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토론회는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웹툰작가노동조합이 공동 주최했다.

이날 토론회가 열린 이유는 고강도 장시간 노동으로 건강을 잃는 작가가 많은데 이를 법·제도가 예방하지 못해서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 웹툰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웹툰작가 82.5%가 창작 활동을 하면서 정신·육체 건강이 악화됐다고 답변했다. 웹툰작가가 평균적으로 창작을 위해 일하는 시간은 주 평균 5.8일, 일평균 10.5시간이다. 이는 주 60.9시간이다. 웹툰작가는 일반 직장인이 현재 최대로 일할 수 있는 주 52시간보다 8시간 이상 더 일하는 셈이다.

건강 잃는 장시간 고강도 노동에도 나쁜 지갑사정

문제는 작가들이 건강만 나빠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 대부분은 작업·휴식 시간은 부족한데(83.6%) 경제적 어려움(82.7%)도 겪는다고 호소했다.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으면서까지 열심히 일하지만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는 실정이다. 창작자 노조는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이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신아 웹툰작가노조 위원장은 "작가는 아직 노동자(근로자)인지 아닌지 법적으로 모호한 상태여서 그림을 그리는 메인작가뿐 아니라 채색 등을 담당하는 직원들, 정말 근로계약을 하고 아르바이트하는 노동자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며 "보조작가를 고용하거나 법인을 설립해서 일하는 작가는 사용자의 입장도 있어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제 과로사로 추정되는 분들은 다 법인을 차려서 일하고 있다"며 "정부 역할은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원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수경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장은 웹툰·웹소설 플랫폼이 악성 댓글 문제를 방치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휴재한다고 공지사항을 올리면 댓글로 ‘내 시간을 보상하라’는 식의 이해할 수 없는 댓글이 많다고 지적했다. 단순 악플뿐 아니라 성희롱 댓글도 문제다. 댓글로 응원과 지지를 받아 힘을 내는 작가도 있지만 댓글 때문에 우울증 등 정신건강이 나빠진 작가도 많다는 것이다.

이 지회장은 "저도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여서 이런 자리에 나와서 발언한다는 것이 두렵고 무섭다"며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에게 작가라는 이유로 비난받고 공격당하는 상황을 직접 겪는 작가가 얼마나 힘들지 짐작도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정부는 아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며 "플랫폼도 과도하고 불필요한 악성 댓글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서 작가 정신건강을 보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웹툰작가 84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창작 시 애로사항 체감 비율. / 2022 웹툰작가 실태조사
웹툰작가 84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창작 시 애로사항 체감 비율. / 2022 웹툰작가 실태조사
법 사각지대에 놓인 웹툰작가

창작자 단체의 이 같은 요구는 좀처럼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일반 직장인과 달리 작가는 고용보험, 산재보험 같은 제도의 보장도 받기 어렵다. 작가의 법적 지위가 여전히 모호한 ‘예술인’이기때문이다.

작가가 노조를 결성해 대응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지난해 9월 시행된 예술인권리보장법에 따라 2명 이상의 예술인은 예술인조합(노조)를 결성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예술인조합은 노동3권 중 파업권(단체행동권)이 없다. 예술인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3권도 일부만 행사할 수 있는 셈이다. 노동3권은 단체를 결성할 권리, 교섭할 권리, 교섭이 결렬되면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안명희 문화예술노동연대 집행위원은 "웹툰작가 같은 문화예술 노동자는 2020년 예술인 고용보험이 마련되면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지만 산재보험법상 노무제공자와는 구별되는 예술인이 됐다"며 "메인작가와 보조작가로 구성된 팀이 플랫폼·제작사(CP사)와 하도급 방식의 팀 단위 계약을 맺으면 메인작가가 산재 책임을 지게 되는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범유경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은 "예술인 고용보험은 ‘다른 사람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할 것’을 요구한다"며 "70컷이 넘는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웹툰작가는 도저히 혼자 할 수 없어 CP사나 보조작가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러면 고용보험 가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재 부분도 이번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만화진흥법 통합안에서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발의안에 있던 업무상 재해 보호 조항이 빠졌다"며 "만화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화 사업자와 국가가 적절한 조치를 마련하도록 하는 의무 조항을 시급히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현장과 소통하겠다"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제도 개선을 위해 현장과 긴밀하게 소통하기로 약속했다. 이들은 또 플랫폼 등 사업자와 협의가 필요한 쟁점을 내부적으로 정리하는 한편 정부가 직접 나서서 사업자와 창작자가 대화할 수 있는 논의의 장도 마련하기로 했다.

안미란 문체부 대중문화산업과 과장은 "문체부는 작가 건강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플랫폼, CP사, 창작자, 전문가가 모여 소통하는 창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반영해 콘텐츠 진흥위원회를 통해 1년에 최소 2번 이상 회의를 열고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조오현 고용부 산재보상정책과 과장도 "산재 등 일하다 다친 예술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부분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며 "예술인에게도 산재보험 임의가입 제도를 통해 보험을 적용할 수 있지만 자부담 100% 임의가입 방식이어서 실제 가입은 저조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도 관련 부분은 지난해 현장 노동자, 사업자와 소통하면서 검토한 쟁점들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고용부는 쟁점 정리 후 노사 의견을 듣고 같이 논의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