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해외로 여름휴가를 가기 위해 목돈을 마련해야 겠다고 결심했다. 주거래 은행 모바일 뱅킹 앱을 열어 챗봇 상담을 클릭했다. A씨가 "여행자금이 필요한데, 금리가 가장 높은 순으로 정렬해서 1금융권 6개월 단기 대출상품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해줘"라고 말하자 챗봇은 수집한 정보를 표로 정리해 보여줬다. 여기에 더해 A씨에게 여행국가를 묻고 환율우대와 카드 혜택 등 여행에 도움이 될만한 금융상품까지 추천했다.

초거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금융생활 가상도다. 이미 챗GPT가 일상 생활에 쓰이고 있는 만큼,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금융 생활도 이처럼 편리하게 바뀐다. 5대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도 AI 전담 조직 구성에 나서는 등, 기술력을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초거대 AI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요약해줄 뿐만 아니라 창작 소설을 쓰는 등 새로운 정보를 스스로 생성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하면 앞선 사례처럼 보다 다양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길이 열릴 전망이다.

금융당국도 이에 기반이 되는 데이터 규제를 정립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해외 곳곳에서는 이미 초거대 AI를 위한 규정이나 법률 제정에 착수한 상태다. 업계는 당국이 제대로된 관리 기준을 제시해야 초거대 AI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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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는 14일 ‘초거대 AI시대, 데이터 기반의 지속적인 혁신과 경쟁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열고 초거대AI를 구축할 때 기반이 되는 데이터 규제를 완화하고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금융 AI·빅데이터 생태계 협의체 운영 ▲빅테크·의료 등 비금융정보 개방 ▲금융상품 비교·추천 범위 대폭 확대 등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업계 전반에서 이런 완화 정책만으로는 아직 초거대 AI를 적극 활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AI 시장규모는 2019년 1조5000억원에서 2021년 2조2000억원으로 46.6% 성장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수준에 맞는 정책 수립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중국과 유럽연합(EU) 등 글로벌 주요 국가들은 챗GPT 출시 이후 초거대AI에 대한 규제 기준을 발빠르게 마련했다. AI 윤리와 위험까지 고려해 초거대AI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AI 챗봇 규정을, EU는 EU AI 법(Act)을 공표할 예정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현재 당국이 내놓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는 챗GPT 같은 대화형 AI를 당장 활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예를 들어 상담 챗봇에 활용한다고 가정하면, 금융 소비자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데, 필연적으로 이 데이터가 대화형 AI 개발사에 들어가게 된다"며 "결국 데이터 주권이 어디에 있냐는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수립에 앞서,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어떤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키고, AI 모델 검증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리스크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조재박 삼정KPMG 부대표는 "금융권이 아직 사용을 꺼리는 이유로 정보의 오류보다는 유출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며 "AI 도입과 활성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므로 규제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거버넌스 수립이 우선"이라고 했다.

JP모건은 보안 이슈로 외부 소프트웨어 사용은 물론, 챗GPT 사용까지도 막고 있다. 골드만삭스 역시 임직원의 AI 소프트웨어 사용을 차단, 특히 트레이딩 부서의 챗GPT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고객정보나 기업 자료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