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삼성SDI 정기주주총회와 인터배터리 2023이 열렸다. 국내 배터리 업계의 중요 행사가 동시에 열린 날이지만, 묘하게도 중국산 배터리가 떠오른 하루였다. 삼성SDI 대표가 중국산으로 대표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준비에 대해 입을 뗐고, SK온은 전시장 부스 중심에 LFP 모형을 선보이며 상용화 의지를 확실히 내비쳤다.

LFP 배터리는 CATL, BYD(비야디) 등 중국 기업의 주력 제품이다. 양극재로 리튬과 인산철을 배합해 쓴다. 겨울철 등 저온에서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코발트와 니켈 등이 들어가지 않아 양산이 쉽고 안전성이 높다. 소재 특성상 상대적으로 가격도 싸다. LFP 배터리 가격은 니켈·코발트·망간 등을 원료로 한 ‘삼원계’ 배터리 대비 30%쯤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CATL은 LFP 배터리를 앞세워 세계 전기차 시장을 손아귀에 넣는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은 2022년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37%로 1위에 올랐다. 오랜 기간 삼원계 배터리에 집중했던 한국 기업이 중국의 저가 굴기에 자존심을 내려놓은 이유다.

SK온 LFP 배터리 시제품 / 이광영 기자
SK온 LFP 배터리 시제품 / 이광영 기자
배터리 3사 중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SK온이다. SK온은 2021년 하반기에 주행거리가 길고 충전 시간이 짧은 삼원계(NCM) 배터리와, 비용이 저렴하면서 화재 위험은 낮은 LFP 배터리로 생산을 이원화 해 글로벌 배터리 시장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의중을 밝혔다.

이후 1년 반만에 인터배터리 2023을 통해 LFP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했다. 전고체 배터리가 아닌 LFP 배터리가 자사 대표 삼원계 배터리인 NCM9플러스(+)와 함께 부스 중심을 장식했다. 불확실한 미래의 제품 보다는 당장 수요가 있는 제품을 내세운 것이다.

SK온은 LFP 배터리가 저온(영하 20도)에서 주행 거리가 50~70%로 급감하지만, 자사 LFP 배터리의 경우 주행거리를 70~80%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강조했다. 하이니켈 배터리를 통해 축적한 소재 및 전극 기술을 LFP 배터리에도 적용하는 데 성공하면서다. 기술과 가격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는 자평이다.

SK온 관계자는 "LFP 배터리는 기술 개발 과정이 그리 어렵지 않아 양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이 15일 오전 9시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제53기 정기주주총회가 끝난 후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이광영 기자
최윤호 삼성SDI 사장이 15일 오전 9시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제53기 정기주주총회가 끝난 후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이광영 기자
삼성SDI도 이날 LFP 배터리 시장 진출을 시사해 주목을 받았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15일 주주총회 후 취재진과 질의응답에서 LFP 배터리에 대해 "(LFP는) 중요 플랫폼 중 하나로 생각한다"며 "향후 사업에서 고객의 다양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LFP 배터리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미카엘 삼성SDI 중대형전지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 역시 비슷한 견해를 드러냈다.

손 부사장은 "저희는 기본적으로 여러 타입의 연구개발을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며 "그런 수준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산 단계까지 고려하고 있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에너지저장장치(ESS)용 LFP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이를 시작으로 전기차용 LFP 배터리까지 나아가겠다는 목표다.

CATL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모형 / CATL
CATL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모형 / CATL
LFP 배터리는 값싼 전기차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된 세계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잇따라 ‘러브콜’을 받고 있다.

테슬라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모델3와 모델Y 차량에 LFP 배터리를 적용 중이다. 포드도 2023년부터 마하-E에 CATL의 LFP 배터리 팩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포드가 중국산 배터리와 소재·부품의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는 인플레감축법(IRA)을 교묘히 피해가는 꼼수를 쓸 정도로 저렴한 LFP 배터리에 대한 수요는 높다.

장기적으로 LFP 배터리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국내 배터리 기업이 LFP 배터리를 본격 상용화 할 시점에는 배터리 공급 부족이 어느 정도 해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기업이 LFP 배터리를 양산하게 될 수년 후에는 배터리 공급이 지금보다 부족하지 않은 시점일 가능성이 크다"며 "반면 K배터리가 강점을 보이는 하이니켈 삼원계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은 점차 높아지는 추이로, 향후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