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한시적 허용된 비대면 진료가 국가적 방역 대응 단계가 완화되면서 존폐위기에 놓인 가운데 갖가지 논란과 함께 제도화 정착 초읽기에 돌입했다.

보건복지부는 정부의 의지대로 제도 연착륙 속도를 내기위해 대한의사협회(의협)와 합의했으나, 환자의 초진을 불허한다는 입장에 업계는 반대하고 있으며, 약사단체는 의약품 배송과 관련한 제도화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갈등이 예상되고 있다.

정부가 비대면 진료 제도화 연착륙을 위한 세부적인 개정방안들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산업계를 비롯한 각 단체들의 불만사항이 속출하면서 입법 과정에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 아이클릭아트
정부가 비대면 진료 제도화 연착륙을 위한 세부적인 개정방안들을 마련하고 있는 가운데 산업계를 비롯한 각 단체들의 불만사항이 속출하면서 입법 과정에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 아이클릭아트
관련 업계와 국회에 따르면 보건복지위원회에서 21일 제1법안심사소위원회를 개최해 제한적 비대면 진료 허용을 담은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 3건을 포함, 모두 40개의 법률안건을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비대면 진료관련 법률안은 더불어민주당 강병원·최혜영 의원과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했다.

복지부·의협 합의 ‘원격의료법’ 구체화 작업 돌입

우선 강병원 의원은 만성질환자에 대해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과 환자가 재택 등 의료기관 외 장소에서 사용 가능한 의료기기를 활용해 원격으로 관찰·상담 등의 모니터링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원격모니터링의 경우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의원급 의료기관만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의사와 환자간 원격모니터링이 허용되는 환자는 재진환자로 제한했다.

최혜영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의원급 의료기관을 원칙으로 하되, 대리처방환자, 수술후 관리환자 및 중증·희귀난치질환자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병원급 의료기관도 비대면 진료를 사용가능게 하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개정안에는 비대면 진료과정에서 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발생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는 피해보상에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정부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하자는 면피 조항도 담겨졌다.

이종성 의원의 의료법 개정안 역시 비대면 진료를 대면 진료의 보조적인 역할을 하도록 명시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필요성을 인정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절차에 따라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도 포함했다.

이와 같은 개정안 논의는 이달 초 개최된 ‘의료현안협의체 2차 회의’에서 복지부가 의협의 제안 방안을 수용하기로 합의하면서 그 내용을 구체화 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합의된 내용은 국민 건강증진이라는 목적 아래서 ▲대면진료 원칙, 비대면 진료를 보조 수단으로 활용 ▲재진환자 중심으로 운영 ▲의원급 의료기관 위주로 실시 ▲비대면 진료 전담의료기관 금지 등이 담겨 있다.

산업계-의료계 ‘초진 VS 재진’ 갈등 심화

하지만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운영하는 업계는 이대로 개정안이 발의되면 산업 전체가 무너지며, 복지부는 업계와 제대로된 대화도 하지 않은 채 졸속 행정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격의료법에 초진 환자 진료가 금지되면서 산업계가 정부에 강한 비판을 하기위해 15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 원격의료상업협의회
원격의료법에 초진 환자 진료가 금지되면서 산업계가 정부에 강한 비판을 하기위해 15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 원격의료상업협의회
이들은 원격의료법이 정식 법제화될 경우 스타트업 30곳 중 24곳이 고사 위기에 직면할 것이며, 초진 환자를 허용하지 않을 시 대부분의 일반 환자들이 비대면 진료 앱을 사용할 이유를 못 느끼거나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시절 원격 비대면 진료는 피할 수 없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며, 차기 정부를 맡게 되면 첨단기술의 혜택을 국민 모두 누릴 수 있도록 시도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윤 대통령은 경제성장 주체는 정부가 아닌 민간이며 기업 활동을 제약해 온 규제를 즉시 폐지하고, 최소 규제 방식으로 규제 시스템을 개혁하겠다고 했으나 최근에 나온 ‘원격의료법’ 청사진은 온통 규제뿐이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산업계 주장에 의사단체가 즉각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는 19일 열린 춘계학술대회에서에 "초진 이전에 PCR이 있고 처방이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이뤄져 가능했던 것이다"며 "환자만 편하면 된다는 산업계 주장은 대단히 위험하다. 산업계는 사업의 영위를 위해 이 같은 주장을 하는데 국민 건강을 산업과 맞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강승진 가정의학과의사회장은 "비대면 진료의 도구라 할 수 있는 중개 플랫폼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없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며 "플랫폼 업체들이 사업 초기 경쟁을 펼칠 때는 문제가 없겠지만, 지배적 사업자가 나올 경우 의료 공급자와 의료 수익자 모두 지배적 사업자에 의해 좌지우지돼 적절한 대체 및 통제가 어렵게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더불어 의사단체는 비대면 진료를 계약에 따른 서비스 산업으로 인식하기보다 디지털을 이용한 치료제처럼 의사가 디지털 치료를 적용해 얻을 수 있는 이득과 손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환자에게 처방하는 체계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회장은 "환자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약제도 제약회사가 생산하지만 환자에게 공급되기 위해서는 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며 "중계 플랫폼 역시 디지털 서비스업체에 의해 생산되더라도 환자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의사가 여러 플랫폼의 효과성 및 위해성을 주체적으로 판단해 처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비대면 진료 통한 약 배송 논의는 난항…약사단체 반대 항의 움직임

복지부와 의협이 합의했지만 정작 비대면 진료 서비스의 핵심 요소로 손꼽히는 ‘약 배송’과 관련된 논의는 전혀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약사계는 복지부의 약 배달 제도화 졸속 추진을 강력히 비판하며 플랫폼 업체의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심층적인 검증과 논의도 없이 표면적인 통계 자료만으로 보건의료현장에 바로 도입하는 건 위험하며, 민간 플랫폼 말고는 비대면 진료에 필수적인 성분명 처방 의무화와 공적전자처방전 환경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약사회는 입장문을 통해 "보건의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달려 있는 공적인 영역로, 정해진 목적 달성을 위해 무조건 돌진할 제도도 아니고 시장논리의 입김이 작용할 수 없는 분야다"며 "그럼에도 보건의료현장의 전문가 단체와 어떤 교감도 없이 끼워 맞추기식 여론몰이에 앞장서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플랫폼 업체들은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여 편법적인 환자 알선, 무분별한 과대광고와 약물 오남용 조장, 약가와 배송비 할인 등 보건의료환경을 시장판으로 만든 장본인들이다"며 "보건의료시스템에 대한 민간자본의 진출과 장악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가속화되고, 종국에는 보건의료 영리화로 귀결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 복지부는 우선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한 뒤 약사회와의 대화를 거쳐 약사법 개정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원격의료법에 초진 환자와 병원급 의료기관도 포함해 달라는 요구는 수용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제도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비대면 진료를 제도권 안에 들여놓은 이후 약 배송 등의 논의를 하나씩 개선하는 방식으로 추진할 예정이다"며 "다만 의료계와 합의한 내용에서 몇몇 조항을 갑작스럽게 변경하는 일은 사실상 어렵고 제도화 추진 자체를 막을 수 있어 법 통과 후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