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로봇을 많이 쓰기로 손꼽히는 나라다. 국제로봇연맹(IFR) 조사 결과 2021년 기준 노동자 1만명당 로봇 설치 대수가 1000대에 달한다. 2위인 싱가포르(670대), 3위인 일본( 399대)과 비교하면 2배쯤 차이가 난다.

주방용 조리 로봇 스타트업 에니아이는 이런 한국의 높은 로봇 사용률에 주목했다. 특히 조리용 로봇에 초점을 맞췄다.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는 "로봇이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분야가 고강도로 단순 노동이 반복되는 분야다"라며 "제조·물류 분야도 사람이 직접 하면 다칠 위험이 큰 분야나 고강도 단순 반복 노동 분야에 산업용 로봇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로봇 사용률은 주로 제조·물류 분야용 로봇이다"라며 "조리용 로봇은 미개척시장(블루오션)이다"라고 덧붙였다.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 / 변인호 기자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 / 변인호 기자
로봇으로 주방 생산성 올리고 비용 낮춘다

에니아이는 인공지능(AI), 로봇제어, 설계 등 기술을 가진 KAIST 출신 5명이 2020년 7월 공동창업한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외식·식음료(F&B) 업계에 전문 분야인 로봇을 도입했다. 주방에서 고강도의 단순 반복노동이 일어나 로봇 도입이 수월하다고 판단해서다.

황 대표는 주방의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인력난으로 인한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설명한다. 외식업계는 이미 인력난에 고물가 상황이 맞물려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가 성명을 내고 "식자재 가격 인상, 근로시간 단축, 구인난 등으로 휴·폐업해야 하는 막다른 상황에 놓였다"고 밝힐 정도다.

이중 로봇으로 해결 가능한 부분이 인력난으로 인한 악순환 문제다. 구조는 단순하다. 만약 5명이 운영해야 하는 매장에 4명만 일하는 식당을 가정해 보자. 5명이 할 일을 4명이 하면서 노동 과부하 상태에 놓인다. 결국 일이 힘들어 그만두려는 사람이 나타난다.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는 것을 아는 매장주는 그만두려는 직원의 인건비를 올려준다. 이 경우 매장의 수익이 준다. 수익이 줄어든 매장은 결국 휴·폐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황 대표는 또 인력난이 서비스와 음식 맛 품질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배경이라고 봤다. 특히 음식점이 유명해 지면 이런 상황이 불거진다. 유명세를 얻어 사람이 많이 몰리면 직원의 노동 과부하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는 맛과 서비스 품질이 알려지기 전보다 떨어지는 악순환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주방을 디지털 전환하면 조리에 필요한 인력을 서비스로 돌려 품질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로봇 단가다. 로봇이 인건비보다 비싸면 사람을 구하는 편이 비용효율적이다. 로봇을 도입할 이유가 없어진다. 에니아이는 로봇 제작 단가를 낮추기 위해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부품 설계부터 작동에 필요한 기술 개발, 조립까지 모두 직접한다.

그렇게 탄생한 첫 로봇이 ‘알파 그릴’이다. 햄버거 패티 조리 로봇 알파 그릴은 패티를 동시에 8개까지 조리할 수 있다. 알파 그릴의 잠재 고객은 햄버거를 만드는 매장 전부다. 이미 국내 수제버거 프랜차이즈 ‘크라이치즈버거’는 지난해 알파그릴을 도입했다.

황 대표는 "로봇 설계부터 기술 개발, 제조까지 직접하면서 조리에 필요하지 않은 산업용 로봇용 기능을 모두 제거해 비용을 절감했다"며 "국내 대형 급식·배식 관련 업체나 미국에서 직접 급식·배식을 하는 학교들과 협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민수 에니아이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패티 조리 로봇 ‘알파 그릴’을 소개하고 있다. / 변인호 기자
지민수 에니아이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패티 조리 로봇 ‘알파 그릴’을 소개하고 있다. / 변인호 기자
"햄버거는 로봇 조리 최적화 음식"

황 대표가 햄버거를 로봇으로 만드는 첫 음식으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조리방식 때문이다. 햄버거는 햄버거에 들어가는 식재료를 공장에서 이미 1차 가공이 끝난 상태로 식당에 공급한다. 조리에 노하우가 들어갈 여지가 적다는 의미다. 정해진 대로 있는 재료를 쌓기만 하면 된다.

그중 로봇이 패티를 조리하는 이유는 패티 조리가 디지털 전환으로 얻을 이익이 커서다. 패티는 기계적으로 만드는 햄버거 조리 재료 가운데 가장 높은 숙련도를 요구한다. 이를 로봇으로 대체하면 인건비의 50%쯤을 절감할 수 있다.

그는 "패티는 햄버거 조리 중 가장 어렵고 힘들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다 조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문제가 많은 부분이다"라며 "알파 그릴을 쓰면 누구든 다른 일을 하면서 중간중간 조리된 패티를 빼고 새 패티 재료만 추가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햄버거 시장의 성장세도 패티 조리 로봇의 탄생에 영향을 줬다. 황 대표는 햄버거가 1인 음식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시대 맞춤형 음식이라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든램지버거, 파이브가이즈 등 글로벌 프랜차이즈 햄버거 기업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매장을 낼 만큼 매력적인 시장이다.

햄버거 조리 완전 무인 자동화도 가능

에니아이의 다음 목표는 완전 무인 자동화 조리 구현이다. 현재 에니아이는 햄버거 전체를 무인 자동화 해 조리하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로봇 이름은 ‘알파 키친’이다. 알파 키친은 재료 저장고에서 빵, 패티, 채소 등을 꺼내 제조부터 포장까지 자동으로 진행한다.

황 대표는 "키오스크나 배달 앱과 로봇을 연동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며 "가능해지면 주문을 접수한 순간부터 포장까지 로봇이 알아서 자동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주방의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면 사람이 조리를 위해 할 일이 줄면서 서비스 품질이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로봇을 쓰면 조리 인력을 줄여도 되니 인건비도 절감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객 응대를 제외하면 주방은 식재료를 채우고 매장을 마감하면서 로봇을 청소해주는 인력만 있어도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식당의 경쟁력으로도 이어진다. 직원이 조리보다 고객 응대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청소에 드는 노동력이 증가한다. 청결을 위해 패티를 조리하는 동안 로봇에 튄 기름을 닦아내야 해서다. 사람이 직접 로봇을 닦아내면 이전보다 30%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에니아이는 청소 편의성을 개선했다. 로봇을 방수가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 청소에 필요한 시간을 로봇 도입 전과 비슷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는 "조리 로봇은 자동화 기능 때문에 청소해야 하는 부분이 기존 그릴보다 많다"며 "그래서 로봇을 방수가 가능한 구조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매장을 마감하고 나면 자동차 세차하듯이 기름때 제거용 주방세제를 로봇에 뿌리고 물로 씻어내면 다 씻겨내려간다"며 "세제는 더 사용하겠지만 청소 시간도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황 대표는 또 로봇을 이용할 때 레시피 보안 같은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했다. 에니아이가 재료 배합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니아이는 패티를 어떻게 구워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몇 초를 구워야 원하는 굽기가 되는지만 확인한다. 패티에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어느 비율로 넣을지, 고기 양념을 어떤 재료로 만드는지는 로봇 조리에 필요하지 않은 정보라서다. 로봇 조리 설정도 고객(사업장)이 로봇 디스플레이 화면에서 직접 설정한다.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변인호 기자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변인호 기자
에니아이는 햄버거 조리를 완전 자동화 한 후 비슷한 음식군으로 조리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첫 도전은 샐러드와 샌드위치다. 햄버거와 제조 방식이 비슷해서다. 제조 방식이 비슷하면 로봇 기능을 조금만 수정해도 된다.

햄버거 제조 알고리즘에서 빵, 패티를 빼면 샐러드다. 햄버거 빵 대신 다른 빵을 넣으면 샌드위치가 된다. 에니아이는 이런 방식으로 햄버거와 비슷한 음식군 제조 로봇을 만들 예정이다. 이후 국밥류, 면류 등 다른 음식군으로도 영역을 점차 넓힐 예정이다.

황 대표는 "에니아이는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든 기대한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하려 한다"며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음식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