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을 살려 자신의 그림을 오픈씨(OpenSea)에 올렸고 그것이 다다즈 프로젝트 시작의 불씨가 됐다"

NFT로 핫한 다다즈 작가를 인터뷰했을 때 그가 던진 말이다. 우연히 NFT를 접한 그의 기발한 작품들이 멋진 커뮤니티로 세상과 이어지도록 한 도구가 바로 오픈씨였던 것이다. 2017년 문을 열어 NFT 마켓플레이스로 잔뼈가 굵은 오픈씨지만 요즘은 블러(Blur)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적잖이 마음 고생을 하는 모습이다.

오픈씨를 넘어보려는 경쟁자들의 시도는 지난해부터 이어졌다. 2022년 1월 룩스래어(Looksrare)가, 2월엔 X2Y2가 등장했다. 4월 문을 연 NFT 애그리게이터 젬(gem)은 오픈씨가 바로 인수를 결정했지만 곧바로 5월 솔라나 기반의 매직 에덴(Magic Eden)이 나오면서 한 때 24시간 기준 오픈씨 거래량을 뛰어넘기도 했다. 6월 등장한 지니(genie)는 유니스왑에 인수됐다.

대항마가 꾸준히 등장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오픈씨의 아성을 넘보는 플랫폼은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런 오픈씨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건 것이 지난해 10월 등장한 블러다. 블러는 출시 두 달만에 오픈씨 거래량을 뛰어 넘은 후, 필자가 이 글을 적는 이 시점까지 오픈씨를 앞지르고 있다. 바이낸스리서치는 최근 3월 보고서를 통해 블러가 오픈씨를 앞선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 블러는 단순히 NFT를 사고 파는 걸 넘어 거래량 등을 집계하는 애그리게이터 기능까지 겸한 하이브리드 플랫폼이다. 두번째는 자체 토큰을 출시, NFT 리스팅을 하면 $BLUR를 에어드랍 해주는 등 유동성을 늘리는 방식을 설계했다는 점이다. 세번째, 출시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1100만달러 투자금을 유치한 팀의 면면을 꼽았다. 오픈씨와 매직 에덴에 투자한 패러다임에게서도 투자를 받았다.

이밖에 너무 당연해서인지 보고서에 기재되진 않았지만 블러의 가장 큰 강점은 수수료다.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는 법이다. 시장에선 블러가 오픈씨를 따라잡았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지만 살펴봐야 할 대목도 있다. 먼저 로열티다. 거래 수수료 ‘0’을 선언하면서 창작자 수수료, 로열티도 깎았다. 오픈씨가 7.5% 정도의 창작자 로열티를 주는 반면, 블러는 0.5%를 준다. 작가 입장에서 열심히 쓴 책의 인세가 7.5%라면 그나마 위안이 되겠지만 0.5% 수준이라면 책을 쓸 지 말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NFT 크리에이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픈씨도 한시적이라고는 했지만 로열티를 0.5%로 깎아버렸으니 이것이야말로 출혈 경쟁으로 인해 크리에이터들만 새우등 터지는 꼴이다.

'블러가 찐 NFT 마켓플레이스로 성장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물음표가 묻는다. 바이낸스 리서치 자료를 보면 활성지갑 수 기준으로는 오픈씨가 아직 1위다. 실제 보고서 작성 시점을 기준으로 블러의 활성 지갑 수는 한 달 간 40% 이상 감소했다.

보고서는 또 '블러에선 상위 15명의 사용자가 전체 구매량의 15%를 차지하는 반면, 오픈씨에서는 상위 250명의 사용자가 전체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에 불과하다'는 점도 짚었다. 물론 블러가 내세운 것이 ‘프로 트레이더들’을 위한 플랫폼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 해도 블러가 오픈씨를 넘었다고 말하긴 힘든 상황이다.

보고서는 "토큰 인센티브가 플랫폼의 초기 시장 안착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해결책은 아니다"라고도 짚었다. 또, "블러의 상위 거래자들에게 워시 트레이드(가상 매매를 통한 거래량 부풀리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도 주의해야 할 점"이라고 꼽았다. 억만장자 투자자 마크 쿠반은 "NFT 시장에서의 워시 트레이드가 크립토 시장의 다음 충격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얏 시우(Yat Siu) 애니모카브랜즈 CEO의 트윗 내용을 공유하고 싶다. 그는 "오픈씨와 블러 간 점유율 싸움의 패자는 크리에이터와 전체 생태계"라고 지적했다. 로열티는 장기적 가치 창출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고 이 생태계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준다는 것.

반대로 말하면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웹3의 정신에 반한다는 것이다. ‘싸게 싸게’를 외치는 바닥을 향한 경쟁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시장 점유율을 끌어오기 위해 거대 플랫폼들의 경쟁이 생태계의 생명줄을 끊지 않기를 바란다. 침체된 듯 보이는 NFT 시장이지만 시장 분위기와는 별개로 국내에서도 NFT 마켓 플레이스를 만들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이런 해외 사례들을 잘 참고해 생태계를 풍성하게 하려는 고민을 해나간다면 한국 대표 아니 글로벌 대표 NFT 플레이스가 한국에서 탄생할 지도 모를 일이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 IT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지은 작가 sjesje1004@gmail.com
서강대 경영학 학사, 국제통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0년 이상 경제 방송 진행자 및 기자로 활동했다. 유튜브 ‘신지은의 경제백과’를 운영 중이며 저서로 ‘누워서 과학 먹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