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토큰증권(ST, Security Token) 제도 시행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이르면 내년, 관련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STO가 가시화되면서 증권사들도 분주해 졌다. S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토큰 형태로 발행한 증권. 비트코인 등 일반 가상자산과는 달리 부동산과 미술품, 저작권 등 실물 가치에 근거해 발행된다.

증권사들이 STO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무엇보다 플랫폼의 활성화다. 가상자산 거래소가 등장하면서 투자유인을 빼앗긴 증권사 입장에서는 고객을 다시 찾아오는 것이 급선무다. 만약 STO가 추가된다면 기존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의 활용도도 그만큼 높아진다.


신한·KB·NH證, STO 협의체 구축…"방향성 맞는 협업 상대방 찾기 돌입"

2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증권, NH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은 최근 관련 사업을 위해 협력사를 규합한 STO 협의체를 구성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신한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은 지난달 ‘STO 얼라이언스’를 꾸렸다. 토큰증권 산업의 성장에 맞춰 안전한 자산을 토큰화하고 다양한 기업이 협업하는 조직을 만든 것이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신한은 회원 기업들에게 발행 비용을 절감하면서 새로운 자금 모집 기회를 제공해 유통 솔루션, 블록체인 기술 컨설팅 및 연동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NH투자증권은 24일 ‘STO 비전그룹’이라는 이름의 협의체 출범식을 가졌다. 여기에는 NH투자증권을 비롯 ▲조각투자사업자(투게더아트, 트레저러, 그리너리) ▲비상장주식중개업자(서울거래비상장) ▲블록체인 기술기업(블록오디세이, 파라메타) ▲기초자산 실물평가사(한국기업평가) 등 8개사가 참여했다.

NH투자증권은 이들과 함께 실무 논의는 물론, 토큰증권 활용 확대를 위한 포괄적 사업기회를 함께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STO비전그룹을 출범시킨 NH투자증권.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맨 우측)와 협력사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진행했다. /NH투자증권
STO비전그룹을 출범시킨 NH투자증권.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맨 우측)와 협력사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진행했다. /NH투자증권
지난 8일에는 KB증권이 ST 관련 사업자 생태계를 확대하고 협업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ST 오너스’를 구성했다. 주요 사업자로 스탁키퍼(한우), 서울옥션블루(미술품), 펀더풀(공연·전시), 하이카이브(실물자산 기반 STO 발행유통 플랫폼), 웹툰올(웹툰), 알엔알(영화 콘텐츠 배급) 등이 참여한다. SK C&C·EQBR·하이파이브랩·웨이브릿지 등 네 곳의 기술 전문기업도 참여했다.

KB증권은 KB금융그룹이 운영하는 핀테크랩인 KB 이노베이션 허브와도 협업해 토큰 증권 관련 제휴사를 발굴하고 투자를 연계할 예정이다.

증권 업계 1위인 미래에셋증권은 별도의 협의체를 구성하진 않았지만 STO에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STO 관련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고 지난달 HJ중공업·한국토지신탁과 STO 비즈니스 활성화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또 음원 조각 투자 핀고를 운영하는 핀고컴퍼니와도 STO 서비스 확대를 위한 MOU를 맺은 바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인터넷 전문은행 카카오뱅크, 토스뱅크와 함께 토큰증권 협의체 ‘한국투자 ST 프렌즈’를 결성했다. 한투를 주축으로 카카오뱅크와 토스뱅크가 토큰증권을 기록할 분산원장(블록체인)의 금융기관 시범 운영 파트너로 참여한다. 또 한국은행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모의실험 사업을 수행한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분산원장 구축을 위한 기술 파트너로 합류한다.

이 외에도 키움증권, 대신증권, 하나증권 등 다른 대형증권사들도 조각투자 플랫폼 기업에 투자하고 업무협약, 인수 추진 등을 통해 STO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사실 증권사들은 예전부터 STO를 새로운 먹거리 사업으로 점찍고 일찌감치 사업 준비에 나선 바 있다. 한 동안 관망 분위기도 적지 않았지만, 올해 초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면서 작년과는 또 다른 분위기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한 증권사의 블록체인 담당자는 "이전에는 최소한의 그림도 없는 상황이라 생태계 확보 차원에서 조각투자 관련 기업 위주로 증권사가 MOU를 맺는 정도였지만,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각사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 정도의 밑그림은 그려진 상황"이라며 "증권사들이 지금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방향에 맞는 협업 상대방을 찾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은행 계열 증권사들은 전업 증권사와 달리 스타트업에 활발한 지분투자를 진행해 오는 등 다른 비즈니스와 연결이 돼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STO 생태계 구축에 유리한 측면이 있어 은행을 가진 금융지주 계열사를 중심으로 STO 협의체를 구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MOU 맺기 주력한 중소형사 "레퍼런스 구축 단계"

중소형 증권사들은 별도 협의체를 구축하는 대신 업무협약을 중심으로 STO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언제든 뛰어들 여건은 만들어 놓되, 신규 사업이라 리스크도 적지 않은만큼 대형사 중심으로 사업화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SK증권과 유진투자증권은 블록체인 기업 바른손랩스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바른손랩스는 영화 기생충 제작사인 바른손의 블록체인 부문 자회사다. 이들은 영화나 드라마, 웹툰 등 콘텐츠 수익권에 대한 ST 거래소 설립을 추진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SK증권은 부동산 조각투자사 펀블, 미술품 공동구매 플랫폼 아트앤가이드, 가상자산 지갑 업체 해치랩스 등과도 협약을 맺고 STO 사업을 협의 중이다. 한화투자증권도 블록체인 기업이자 두나무 자회사인 람다256에 2020년부터 투자를 진행하며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블록체인 사업을 준비해 오고 있다.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은 ST가 법제화가 안 된 상황이고 가이드라인에서도 혁신금융 샌드박스를 통해 심사한 후 허가를 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ST 사업을 위한 레퍼런스를 만들어가는 단계"라며 "여러 방향으로 준비를 하는 일환으로 업무협약을 맺어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형사들이 협의체를 구성하는 까닭은 기존에 사업이나 투자를 통해 관계를 맺었던 기업들과 내부 결속을 다지는 일환"이라며 "또 향후 금융당국이 STO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하기 위해 업계 의견을 수집할 경우 협의체를 통해 목소리를 더 강력하게 내 의견을 반영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증권사의 STO 참여에 대해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비즈니스 접근을 주문했다. 유망한 블록체인 전문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빠른 시간 안에 유의미한 수준의 유통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단이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STO 초기 성장을 주도할 주역은 조각투자 플랫폼으로 보이고, 이를 위해 증권사들이 다수 업체들과 선제적 제휴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 모호한 제도가 확정되기 전인 향후 2년간 시장 선점을 위한 합종연횡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지만 결국 STO 시장이 성숙될수록 새로운 수익원 창출 측면에서 증권사의 수혜가 점쳐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민아 기자 j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