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야 제도를 바꾸는 관행이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고 낱낱이 따져보면 대개 막을 수 있던 일들입니다. 이번 고 이우영 작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류호정 정의당 의원)

"문화예술계에는 창작자가 언론에 나오려면 큰 상을 받거나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 전 저작권법 개정안 간담회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모든 창작자에게 일어나는 고통입니다. 이것이 문화강국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인과 제작사의 계약 관계는 불공정 종합세트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버젓이 요즘에도 이뤄지는 사태를 보며 참담한 심경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모두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등 만화계와 예술계가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나온 연대 발언이다. 대책위는 사업자 측에 검정고무신 관련 권한 일체를 유족에게 돌려주고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고(故) 이우영 작가 동생 이우진 작가가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이우영작가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변인호 기자
고(故) 이우영 작가 동생 이우진 작가가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이우영작가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변인호 기자
만화계는 앞서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와 비슷한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3월 20일 대책위를 구성하고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번 기자회견은 그 일환이다. 기자회견에는 이우진 검정고무신 공동작가(유족 대표), 신일숙 만화가협회 회장, 류호정 정의당 의원,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 김은정 참여연대 사무처장, 강욱천 한국민족예술총연합회 사무총장, 이씬정석 문화예술노동연대 대표 등이 참석했다.

대책위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형설출판사와 그 대표자가 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악 행위를 유족과 만화인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할 것 ▲형설출판사와 그 대표자가 검정고무신 관련 권한 일체를 유족에게 돌려주고 모든 검정고무신 사업에서 물러날 것 ▲형설출판사와 그 대표자가 원작자 이우영 작가, 이우진 작가를 대상으로 제기한 2건의 민사소송을 모두 취하할 것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번 사건을 엄중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 등 4가지를 요구했다.

고인의 동생인 이우진 작가는 이날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동안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울먹이면서 "형의 부고를 숨긴 채 부모님을 모시고 형에게 가던 그 억겁 같던 시간에 불안한 마음을 이겨보려 기도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생생하다"며 "형이 마지막으로 걸었지만 받지 못했던 부재중 전화는 형이 마무리하지 못한 이 분쟁을 해결하고 후배와 제자들의 창작활동을 보호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국회의원들과 만화·문화계 단체들이 연대 발언을 통해 ‘제2의 검정고무신 비극’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예술가의 권리를 헌법에서 보장하며 문화예술 분야에 80여개 표준계약서가 있지만 창작자의 열악한 현실과 불공정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검정고무신 사태 재발을 막으면서 검정고무신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불공정 관행을 획기적으로 뿌리 뽑을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검정고무신의 비극’으로 불리는 이번 사건은 출판사가 이우영, 이우진 작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창작에 기여하지 않은 사업자가 계약을 이유로 저작권 지분을 얻어 공동 저작권자로 이름을 올리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대책위 관계자는 "작가가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사업자 측에서 자신을 통하지 않고 창작활동을 했다며 소송을 걸었다"며 "그러면서 사업자는 검정고무신 캐릭터 사업을 하며 15년 동안 고 이우영 작가에게 1200만원쯤을 지급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작가는 소송이 걸려 작품활동을 계속해도 되는지 모르는데다 사업자가 추가로 법적 대응을 할까봐 사실상 창작을 중단해야 했다"며 "반면 사업자는 원작자에게 알리지 않고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채 검정고무신 극장판을 만들거나 대형마트에서 캐릭터 상품을 판매했다"고 덧붙였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